금연일지

너가 있다 없으니깐

by 창문밖일요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흡연을 시작하고 계획적으로 금연에 임한다면, 나는 분명 반대의 케이스다.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 꽤 계획적으로 흡연을 시작했고, '여자 친구가 생겨 이제 담배를 끊겠다'는 아는 형의 말에 자극받아 비록 애인은 없었지만 충동적으로 담배를 끊었다. 얼마 가지 못했던 이전의 계획적인 금연과 달리, 충동적인 금연은 1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니 나름 순항 중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안심할 수는 없다. 침착맨이 말한 것처럼 가만히만 있어도 성공할 수 있는 도전이 금연이라지만, 흡연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만히 있기 무척이나 어려운 순간이 우리 삶에는 많다.


i15040807884.jpg 개인적으로 이 문구를 보고 감탄했다.


어쨌든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금연을 수행하고 있는 현재,
중간 점검의 시간을 가져본다.


코로나로 인해 급격하게 줄어든 술자리가 큰 몫을 했다. 이전의 금연이 실패한 순간은 모두 술자리였다. 흡연자로 살았던 지난날의 시간은 술자리와 담배를 파블로프의 개와 종소리마냥 결합시키는 조건 형성의 단계였던 셈이다. 나는 술집의 조명만 봐도, 왁자지껄한 대학가의 소리만 들어도, 소주 몇 잔만 마셔도 담배를 찾게 되는 동물이 되었다.

(*실제로 흡연자일 때, 나는 술자리에서 일상생활의 몇 배로 담배를 더 많이 태웠다.)


술자리 중간중간의 담배타임도 꽤 소중한 시간이었다. 답답한 실내에서 명분 있게 빠져나왔을 때 느껴지는 상쾌함, 친구/후배/선배들과의 스몰토크, 그로 인해 조금씩 쌓여가는 유대감 같은 것은 전형적으로 없었어도 큰 문제가 없는 베네핏이다. 하지만 있다 없으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뭐 어쨌든 술자리가 줄어들다 보니, 그런 불안감을 느껴 담배를 찾게 되는 경우가 사라졌다. 금연은 있다 없는 상황을 얼마나 잘 대처하는지의 싸움이다. 따라서 있다 없는 상황에 최대한 적게 노출되는 것이 좋다.


어째서인지 담배를 피우면, 그 순간을 조금 더 잘 음미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가면 정말 쉬지 않고 불을 붙이고는 했었는데, 여행의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기억하고자 했던 나만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멋진 경치를 보고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도, 그냥 경치만을 바라보는 비흡연자도 그 순간을 충분히 똑같이 음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연자는 과거에 비슷한 경치를 보면서 피웠던 담배를 떠올리느라 온전히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 오히려 불만족하다.

(*이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심리학 서적인 다니엘 길버트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의 등장한 예시임을 밝힌다. 담배가 부재한 상황에 흡연자는 눈앞에 펼쳐진 멋진 경치를 보고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IMG_7694.JPG 최근 속초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파도를 보니 참...


실컷 떠들었지만, 이 이상으로 내가 금연에 관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 주제넘게 금연 방법이나 노하우를 공유할 정도로 오래되지도 않았고, 선천적으로 나는 담배에 대한 의존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 (유전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 없는 듯하다. 이전에 상담을 받았을 때, 니코틴 중독 수준은 사실상 0이었다). 그러나 큰 마음을 먹고 시작하지 않은 레이스임에도 어찌저찌 가고 있는 나 자신을 계속해서 관찰할 뿐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성공하는 도전이다.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가만히 있으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나의 20대 초반을 돌아본다. 그 기억은 사실 꽤 아름답고, 그 기억을 담배 없이도 아름답게 돌아볼 수 있는 나 자신이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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