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술을 못 마셨다.
사랑니가 났다. 왼쪽 아래 잇몸이 욱신거렸다. 급하게 치과에 전화를 걸었지만, 토요일에는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욱신거리는 잇몸과 유난히 덩치가 큰 사랑니를 데리고 일주일을 출퇴근하다 보니, 못 버틸 것 같은 일주일이 지났다. 사랑니를 뽑는 토요일, 숙취가 없는 주말의 시작이 영 달갑지 않았지만 상쾌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에는 타려는 버스의 도착시간이 '3분 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3분 후'라는 글자를 10분 정도 바라보다가 결국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정말 빠르게 왔고, 빠르게 데려다줬다. 이해할 수 없는 버스 정보 시스템에 대한 분노와 카카오 택시의 존재에 대한 감사함이 교차했다. 결국에는 사랑니를 탓했다. 얼른 뽑아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약기운을 빌려 찐한 낮잠을 자겠다는 마음으로, 택시비를 아까워하지 않으며 차에서 내려 치과로 향했다. 2시간 후, 나는 딱 입이 마취가 된 만큼 곤두 세워진 신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욱신거린다.
이전까지, 윗 사랑니 2개를 뺏었다. 그중 한 번은 지하철에서 공익 근무를 하고 있었을 때인데, 하필이면 야간 근무 중 사랑니가 아파왔다. 밤새 타이레놀로 통증을 참다가, 아침에 퇴근하자마자 치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팠던 만큼, 뽑고 나서는 개운함이 들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을 제거하면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꽤나 단순한 논리이자 믿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팠던 만큼 더 아프다. 급기야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는 오한이 동반했다. 살면서 몸을 이렇게 떨어본 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몸이 덜덜 떨렸다. 그 모습이 꽤나 우습기도 했고, 이빨 하나가 빠지면서 발생하는 신체의 연쇄반응에 이상하게 감격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물론 무섭기도 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색창에 '사랑니 오한'을 검색했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출근이 3시간도 안 남았다는 점이었다. 화장실까지 가기도 벅찼지만, 뭔가 어찌저찌 현관문을 내딛기만 한다면 문제없이 도착하고, 문제없이 하루를 보내고, 문제없이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항상 그래 왔으니깐. 일단은 약을 먹어야겠어서, 그 와중에 빈속에 먹을 수는 없어서. 빵 한 조각을 오른쪽 이빨들로 열심히 씹었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됐다. 내 몸은 그냥 알아서 맞춰졌다. 사랑니 하나 빠지면 온 몸이 정신없이 반응하는 것처럼, 바깥 공기만 살에 닿아도 내 몸은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듯하다. 그날 바깥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가을비가 내렸다.
공기가 차다. 춥지는 않지만 차다. 내 입속은 여전히 뜨겁다. 지하철은 평소보다 더 붐비는 느낌이다. 어디선가 지독한 냄새가 났다. 젖은 내 발에서 나는 냄새만 아니기를 바라며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출렁거렸다. 지하철 안에 공기는 덥다. 출근길의 지하철은 언제나처럼 뜨겁지는 않았지만 더웠다.
가을비는 퇴근 때까지 이어졌다. 몇 시간의 초과근무 후 회사를 나섰을 때는 가을비도, 사랑니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잊게 되는 것이 있다. 빠진 사랑니도, 끊임없이 내리는 가을비도 신경 쓸 여유 없는 하루였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한 가지 좋은 점은, 퇴근길에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