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와 우정 다지기

by 창문밖일요일

소주는 부럽다. 내가 매주 궁합이 잘 맞는 친구를 소개시켜 주니깐.


물론 그것은 첫인상은 날카로운 듯하면서 알고 보면 둥글둥글하고, 낯가림 없이 누구와도 무리 없이 잘 어울리는 소주의 성격 덕이 크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난 소주에게 이 친구를 소개해 주고 싶은 강렬한 마음이 든다. 그것은 새롭게 사귄 애인을 가장 친한 친구한테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특히 그 만남이 나의 주도 하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어제 나는 소주에게 냉면을 소개해줬다. 첫 만남은 아니면서도, 만날 때마다 다소 어색해하다가 금세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모습이 흐뭇하다. 그 둘의 대화는 멈출 생각이 없어서 내 입이 바쁘다.


내 입이 바쁘다. 간혹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소주를 나눠 마시면 이렇게 구구절절해진다. 최근에는 좀처럼 구구절절해질 일이 없었다. 나는 자기 얘기만 구구절절하게 늘어놓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에 내가 구구절절하게 할 얘기조차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두려웠다. 친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묻자, 비로소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나는 항상 “별거 없지 뭐”나 “그냥 똑같지 뭐”로 대답하지만, 그것은 내가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기 위한 말버릇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내 삶이 얼마나 별거 없었는지 열변을 토해가며 설명하고는 했다. 한참을 얘기하다 친구와 의미심장하게 눈을 마주치면 우리가 그렇게 별거 없이 살지는 않았구나 하고 공감하게 된다. 다만, 그냥 그 모든 별일에 너무 빠르게 적응해 버리고, 새로운 별일이 찾아오면 금세 잊어버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소주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여느 술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행위를 능숙하게 지휘한다는 것인데, 그 빈도 수가 다른 어떤 술보다 많다는 것이다. “자주” 서로의 잔에 따르게 만들고, “자주” 건배를 하게 만든다. 어떤 행위가 “가끔”을 넘어 “자주”에 도달했을 때, 그 행위에는 리듬감이 생긴다. 그 리듬이 맞는 사람과 술을 마시는 일은 즐겁다. 그래서 나는 오랜 친구와 소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마시는 것은 더 좋아한다. 우리 간만에 리듬 좀 맞춰보자. 내 반가운 마음을 잔에 따르고 짠을 하는 지극히 사회 규범적이고 문화적인 행동으로 표현해 본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빨라진다. 어- 어- 잠깐만 너무 빠른데? 야야 이 리듬이 아니야 멈춰봐.


아니다. 항상 이 리듬이었다. 1병을 비우고, 2병까지 비운 후 잠깐의 인터미션이 끝난 뒤에는 항상 이렇게 장르가 달라졌다. 이제는 그 사실을 그 순간에 알아차릴 뿐이다. 지휘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는 동시에, 연주하는 그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아주 좋은 일이면서 동시에 조금은 슬픈 일이기도 하다.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는 의도적으로 막차를 놓치고, 첫차를 기다렸다. 기숙사에 살 때는 폐문 시간을 핑계로 개문 시간을 기다렸다. 리듬은 사라지고 자연의 소리가 크게 들리는 새벽이 오면, 그제야 나는 그렇게 무대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무사히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 침대 위에 누웠다. 못다 마신 술과, 못다 나눈 이야기가 떠올라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건 내일 숙취가 찾아오면 금방 사라질 터라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매번 이렇게 적당히 취하고, 적당히 아쉽고, 적당히 슬프고, 다음날 적당히 속이 아프면 좋으련만. 이런 날이 흔치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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