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태어날 때부터 귓바퀴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었다. 이 구멍은 이루공이라고 불리며, 의학적 명칭은 전이개누공인 듯하다. 이 작고 귀여운 구멍은 보기와 다르게 그 밑으로 어마어마한 고름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빙산의 일각 혹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나도 내 귓바퀴 위 구멍이 이런 깊이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그 구멍이 감염의 채널로 기능하여 내 귀 인근 지역을 땡땡 붓게 만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 깊이감을 이해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20대가 된 이후부터 내 귀는 이루공으로 인해 도합 4번 부어올랐다(기억하는 게 4번이지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난 매번 다른 이비인후과에 방문했는데, 어디를 가든 의사 선생님들은 초반에는 강한 항생제를 처방해서 붓기를 가라앉히고자 했지만 내 귀는 그런 식의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듣지 않았다. 결국 땡땡 부어오른 피부를 가르고, 처음에는 의심을 불렀지만 곧 이어 자비를 부르게 되는 선생님들의 악력으로 있는 힘껏 고름을 짜내는 다소 고어한 엔딩이 매번 반복되었다. 한바탕 귀를 착즙 하는 대소동이 끝나고 나면, 의사 선생님들은 항상 똑같이 말했다.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조건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마치 이비인후과 전공의가 되기 위해서는 그 문장을 외우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선생님들은 큰 오차 없이 거의 똑같이 그 문장을 내게 전했다. 그것은 팩트이면서 또 클리셰였다. 그것은 이별 클리셰인 "나를 떠나 더 나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와 같이 서운하고 어려운 일처럼 들렸다.
염증을 째고 나면 귀 전체에 붕대를 감게 된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에어팟 속 음악밖에 없는데, 야속하게도 이 붕대는 에어팟 속 음악만 뺏어간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뺏어 간다면 그것 참 나쁘지 않은 거래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잠시 세상과 소통을 중단할 수 있는 이유 있는 핑계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당연히 술도 마실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위협적이지 않았던 술의 유해함에 대한 경고가 염증으로 시각화되고 나니 차마 손을 댈 수 없었다. 또 매일 약을 먹어야 했기에, 나는 그냥 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술을 절대 먹지 말라는 약사 선생님의 엄중한 경고에서 난 이것이 그냥 지나가듯이 말하는, 의례상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캐치했다. 점심 약은 저녁 약과 구성이 다르다거나, 식후에 먹어야 한다거나 등의 안내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 달이 넘게 술을 마시지 못했다.
염증이 가라앉고, 나는 이루공과 영원한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나의 이루공을 영원히 없애버리실 큰 병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는 ‘의사’ 특유의 권위 의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러한 태도에서 왜인지 여유가 느껴져 더욱 신뢰가 갔다. 신뢰가 크게 안 갔어도 다른 옵션을 찾았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분에게 내 귀를 맡기기로 결심했다.
수술 직전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수술실에 들어가면서부터 압도적인 긴장감이 온몸에 돌기 시작했다. 마취 주사가 사정없이 귀 주위를 찌르기 시작하자, 귀는 그 긴장감에서 먼저 자유로워졌다. 그러자 다른 부위의 긴장감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귀 수술의 재밌는 점은 수술 소리를 생생하게 다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 귀가 ASMR 녹음기가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마취로 인해 거의 아무 촉감도 느낄 수 없었음에도 수술 중 이따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름이 가면 갈수록 빠른 주기로 나타나자 이것은 몸이 보내는 어떤 신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작은 구멍이 없어지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일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함께 해온 구멍이 없어지는 해프닝으로 인해 내 삶이 크게 변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만약 내 귓바퀴의 이 구멍이 나와 세상과의 영감을 교류하는 통로였다면 어쩌지. 이 구멍 밑에 고름 주머니가 내 몸에 자리 잡은 지 너무 오래된 나머지, 제거하고 나서 내 몸의 밸런스가 무너지면은 어쩌지. 이와 같은 비과학적인 가정을 하면 할수록. 이루공과 이별하고 나면 내 귀 주변에 염증은 이제 재발하지 않을 것이며 음악과 술의 장기간 공백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과학적인 전망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잘 가라 이루공. 항상 내 몸과 마음의 염증의 근원이었던 이루공. 몸에 있는 대부분의 구멍과 달리 어떠한 긍정적 기능도 담당할 수 없었던 이루공. 그래서 존재하지만 존재감은 크게 없었던 너. 너의 존재를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평생 함께 했을지도 모르는데. 모르는 채 함께 했을 텐데. 너를 몰랐다면 이렇게 헤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너를 너무 잘 알게 되어 이렇게 이별하게 되는구나. 하루 종일 내 입가에는 검정치마의 <Plain Jane> 멜로디가 머물렀다.
goodbye, goodbye, goodbye
she's a mistake I wanted to make
goodbye, goodbye, goodbye
no candles burning on our cake
I was in love with a plain Jane
I don't think I will ever do it again
- 검정치마 <Plain J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