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불빛마저 뜨거운 밤 산책

by 창문밖일요일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을 방어하는 방법은 없다. 소식에 대한 판단은 소식을 듣고 나서야 이뤄지는 것이고, 모든 소식을 원천 차단하기에는 자칫 무료하게 끝나버릴지도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아쉽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점점 더 상실감이나 질투심 같은 감정들이 귀중해진다. 그런 감정들은 나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내 마음속에 상시로 상주하고 있는 만성적 불안에게는 악착같은 힘이 있지만 압도하는 힘은 없다. 그래서 나는 불안에게 잠시 한 눈을 팔 수는 있지만 벗어날 수는 없다. 반면 나를 압도하는 감정들은 내게 당당히 아이컨택을 요구한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지 못하게 하고, 해가 져도 30도가 넘는 요즘 같은 밤에도 나를 걷게 한다. 걷다 보면 나를 압도하는 감정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을 느낀다.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내가 참 좋아하는 종류의 행복이다. 그러나 보통 그것을 만끽할 틈도 없이 새로운 고통이 밀려 들어온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녹아내린 내 몸을 발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줄줄 흐르는 땀에 스스로가 잠기기라도 한 듯 걸음이 무거워진다.


가로등 불빛마저 뜨거운 계절이다. 겨울에 이 불빛이 따뜻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뜨거울 수가 있나. 하지만 지나치게 여름인 지금 겨울을 왜곡 없이 기억해 내는 것은 옳지 않다. 오해일 수도 있으니 겨울에 두고 보기로 하고, 겨울에는 여름을 또 한 번 헷갈리지 않도록 오늘 이 가로등이 명백하게 뜨거웠음을 기록해 두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일상에서 어떠한 변수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 변수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너무나 여름휴가를 가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 무더위의 어느 날, 병원에 진단서를 받으러 주말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야탑역을 가게 된다면. 나는 이것이 당장 버스를 타고 바다로 떠나라는 계시처럼 느껴진다. 더 단순한(어쩌면 더 억지스러운) 경우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 날에 지하철 역을 잘못 내리면, 이 역에 내리게 된 운명적 배경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계획을 바꾸기도 한다. 사실 진실로 믿는다기 보다, 그런 끊임없는 변수로 이뤄진 내 삶에서 내가 그것을 어떤 식으로도 즐겼으면 하는 소망이 담겨있는 사고방식인가 보다.


동네 산책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일 수도 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갈림길의 연속이고 선택의 연속이다. 걷던 중 연락이 뜸했던 친구가 내 폰을 울린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 자주 걸었던 그때 그 거리로 살짝 방향을 꺾는다.



이 더위에 꾸준히 러닝을 하다니. 너 참 대단하구나. 나도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뜀박질했는데. 요즘 날씨에는 도통 엄두가 안 나더라.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어차피 땀 뚝뚝 떨어질 다짐으로 뛰니깐.


가로등 불빛마저 뜨거운 여름밤에 밖에 나온다면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아니었던가. 땀으로 젖을 준비가 되었다면, 이 땀에 내 감정의 불순물이 담겨 있다고 상상하며 밤 산책을 다음 계절로 미룰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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