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모니터 속 빈 페이지에 쓸 말이 없으면 일단 ‘감사합니다.'라고 적는 습관이 생겼다. 아마 메일을 작성할 때 말미에 ‘감사합니다. 000 드림’부터 먼저 적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생긴 습관인 것 같다. 이렇게 반자동적으로 상시 감사함을 표현하는 나는 그 횟수가 너무 과한가 싶다. 그러면서도 내게 일어난 감사한 일들을 따져보면, 몇 번을 해도 모자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뒤늦게 오늘 하루 영혼 없이 뱉었던 감사 표현에 진심을 부여해 보지만 별 소용은 없다. 쓸 말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하고, 감사한 일들에 대해 생각이 난다. 삶이 빈 페이지 같은 상황에 있어야 그제야 감사합니다…. 어쩌면 내 마음속 분노나 우울 같은 감정들이 이 페이지에 가득 채워지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에 감사합니다….
그는 과묵한 사람이다. 그는 해도 되지 않을 말은 굳이 하지 않는 게 어렵지 않은 사람이고,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지만서도 굳이 굳이 해내는 사람이다. 나는 최대한 말을 아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그에 비하면은 가벼운 수다쟁이다. 나도 모르게 말수가 적은 그가 적게 느끼고, 덜 예민하고, 그래서 마음속에서 꺼내두고 싶은 말이 없는 거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그가 종종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놀랐다. 마치 글을 쓰는 사람은 그 내용을 그대로 입으로 낭독이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의아해하면서 놀랐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 내 반응이 의아하고 놀랍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인물과 글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그에게 글쓰기는 감정을 정리하는 수단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한 자 한 자 종이에 적다 보면 그 감정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을 몇 개월 뒤에 다시 읽으면, ‘정말 별 일이 아니었구나’ 하면서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자신이 쓴 글을 누군가 봐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누군가를 보여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글이기 때문에. 반면에 모든 글을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쓸 때만큼은 항상 ‘세상에 공개한다’라는 마음가짐인 나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래서 ‘글을 써서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한다’는 그의 말에서 ‘부정적인 감정만 있다면 또 하나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로 혼자 해석해 보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한 부담뿐만 아니라 ‘글을 써야 한다’라는 의무감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내가 보였다. 적어도 그런 의무감으로부터는 자유로운 그의 글쓰기에 살짝 부러움을 느꼈다.
공교롭게도 이 대화가 이뤄진 시점에 그도 나도 삶의 빈페이지를 채울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빼곡하게 채우면서 사회초년생활을 하다 보니 우리에게도 안정과 비슷한 상태가 잠깐이지만 찾아왔구나 싶었다.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안정이라는 상태만 바라보며 살게 되고, 안정이 찾아오면 잔인하게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한다. 그런 꿈을 꾸다 보면 금방 다시 혼란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그런 혼란을. 우리는 삶이 원래 그렇고, 인간이 원래 그렇다는 편한 소리로 이 현상을 퉁치고. 이 지루하고 안정적인 기분을 잠깐이라도 만끽하고 감사해하며 새로운 도전해 보자고 한다. 연말연시 시즌은 항상 이렇게 교묘한 방식으로 사람을 고양시킨다.
빈 페이지와 마주치면 막막하지만, 그냥 감사해하며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것을 자세히 바라봐볼까. 과묵한 내 친구가 은밀하게 글을 쓴다는 사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