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받이가 없는 의자, 애매한 높이의 책상. 이 카페의 좌석은 지금 당장 나가라고 나에게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써내려 간다. 최근에는 한 줄을 쓰기도 어려운 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내 마음을 글로 옮길 수 있는 표현이 자꾸만 떠올라서 가장 적절한 표현을 고르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표현을 고르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작업이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표현들을 버리지 못하고 빠짐없이 그대로 옮기면 문장은 길어지고, 이 문장처럼 쉼표가 늘어나고, 결국 내가 처음에 들어했던 그 마음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그래서 가슴이 아파도 어떤 표현은 덜어낸다. 개중에 최대한 가슴이 덜 아픈 표현으로.
후암동은 주말을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회사 동료 분이 2주 정도의 장기 휴가를 떠나게 되면서 그 기간 동안 그의 후암동 자취방을 나에게 내어주었다. 그 집에는 사람을 좋아하는 미모의 미묘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어 평생을 “고양아”로 불렸을 초록 눈의 러시안 블루에게 나는 “완두”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단기 집사 알바가 시작되었다. 퇴근 후 완두의 꾹꾹이를 이겨내며 잠에 들고, 완두의 꾹꾹이에 굴복하며 잠에 깨서 출근하는 일주일을 보내자 찾아온 주말이다.
일어나서 완두의 화장실을 치워주고 자동 급식이 잘 나오는지 확인한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밖으로 나서자 나를 반겨주는 풍경에서는 사람 냄새가 찐하게 난다. 거리에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비스듬한 경사 위 빼곡하게 줄 지은 주택들이, 그 주택들이 이 화사한 햇빛을 받는 방식이, 그 주택들이 낮밤 가리지 않고 분주하게 만들어낸 곳곳의 쓰레기 더미가 모두 사람 냄새의 이유다.
이런 거리 사이사이에 숨겨진 감각적인 책방과 카페를 찾는 것이 이번 주말의 메인이벤트다. 친구의 추천으로 가게 된 한 카페는 밖에서 보기보다 자리가 넓었고, 사람도 많았다. 안에 들어가 자리를 찾다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이 불친절한 좌석에 앉게 되었다. 크지는 않지만 적당히 해가 들어오는 구석 자리라는 점에서 책을 읽기도, 표현을 버리고 고르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내 자리에서 사선으로 보이는 자리의 손님이 두 번 정도 바뀌었을 때, 나는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내용으로 페이지를 채울 수 있었다. 열심히 소리를 지르던 의자와 책상도 지쳐 조용해질 때쯤, 나지막이 인사를 건네고 일어날 수 있었다.
적당히 낯선 감각에 머무르는 시간을 좋아한다. 낯선 감각은 매일 조금씩 스쳐가지만, 너무 찰나여서 그게 낯설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낯선 감각이 내 앞에 있을 때 찰나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후암동과 익숙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다. 후암동 곳곳에 위치한 책방에서는, 후암동과 사랑에 빠진 작가들이 사진과 글의 흔적으로 남긴 책들이 있다. 세탁소, 빵집, 카페, 높은 언덕. 그들에게는 익숙한 동네의 풍경일 수 있지만, 그 풍경을 찰나의 프레임으로 담아 이야기할 때, 그 공간은 낯설게 감각된다. 풍경은 풍경이어서 그냥 지나치는 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찰나를 놓치지 않는 예술가들이 있고, 영원함도 찰나로 간직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우리 동네에 돌아가면, 매 주말마다 찾아서 너무 지겨운 그 카페에 가면 나는 낯설게 볼 수 있을까.
집에 들어가자 완두가 나를 반기며 내 발에 머리를 부빈다. 나는 살면서 이런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너는 내가 얼마나 낯설겠니.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는 네가 원래 집사가 얼마나 보고 싶겠니. 그래도 먼저 이렇게 다가워줘서 고마워. 나는 원래 고양이 집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조금씩 너가 익숙해지고 있어.
그르렁- 그르렁-
이 미심쩍은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는 불안하기만 했는데, 친구를 통해 이게 말로만 골골송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안정된다. 나에게 영혼을 불어넣듯이 온 힘을 다해 내 가슴을 누르며 입에서 나는 골골 소리가 누적될수록 나와 완두가 가까워지는 것 같다. 밤새도록 골골대며 꾹꾹해. 나는 또 그걸 이겨내며 잠에 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