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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P가 보여준 무대 위의 조명과 그림자

커피 산업, 그리고 우리 세대의 비이성

by Changsu Siris Woo

사진소스: Neumann Kaffee Gruppe


커피라는 무대, 그리고 그 위의 사람들


커피 산업은 늘 이야기와 이미지로 포장된다. 커피 한 잔에는 기후, 토양, 사람, 그리고 시장의 복잡한 흐름이 녹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산업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이 복잡한 밸류체인 전체가 아니라 무대 위에 서 있는 몇몇 사람과 화려한 조명 아래서만 반짝이는 한정된 순간이다.


Best of Panama, Cup of Excellence와 같은 경연대회는 그 무대의 상징이다. 하지만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특정 대회 자체의 비판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넓게, 우리 세대가 커피를 포함한 여러 산업에서 반복하는 ‘비이성적이고 자기기만적인 행태’를 짚고 싶다.


지난주 Best of Panama 경매에서 또다시 기록이 깨졌다. 20kg의 Hacienda La Esmeralda 워시드 게이샤가 98점이라는 역대 최고 점수와 함께 킬로당 30,204달러(총 604,080달러)에 낙찰됐다. 화려한 헤드라인과 박수 속에서, 주최 측은 이를 “품질과 농부의 승리”라고 포장한다.


나는 이런 대회를 솔직히 혐오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 이 무대는 더 이상 어려운 농부의 것이 아니며, 그들의 삶과는 거의 무관한 허세의 쇼이기 때문이다.


1. 비이성의 시대: 허세와 자기기만


오늘날 우리는 ‘가치’라는 단어를 매우 자주 사용한다. 품질의 가치, 윤리의 가치, 브랜드의 가치. 그러나 그 가치가 어떻게 측정되고 있는지, 그 측정이 정말 합리적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물론 합리성의 척도가 과연 있겠지마는. 그래도 우리가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합리성은 그래도 있다고 생각하는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이다.


대회의 최고 낙찰가가 발표되면, 그것이 곧 ‘세계 최고의 커피’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시장은 굳이 이 등식을 의심하지 않는다. 언론은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고, 소비자는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중간에 있는 커머셜 참여자들도 대부분은 대개 무비판적으로 그냥 하나의 놀랄만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커피의 실제 품질이나 생산자의 삶보다 그 가격이 만들어내는 상징이다. 그리고 그 상징은 종종, 가격을 지불한 이의 허세와 시장의 허영을 반영한다. 문제는 그 허영이 단순히 개인의 소비 습관을 넘어, 산업의 구조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2. 무대와 관객: 권력의 이동과 착시


과거에는 이런 무대가 서구의 문화적, 경제적 권위에 의해 움직였다. 심사위원, 수출업자, 미디어, 그리고 구매자까지, 모두 서구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권력의 무게중심이 달라졌다. 아랍권, 동아시아, 특히 중국계 자본이 시장을 주도하는 장면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권력이 이동했다고 해서 구조가 변한 것은 아니다. 무대는 여전히 소수의 ‘초대받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다. 차이가 있다면, 초대장을 쓰는 손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관객은 여전히 박수를 친다. 우리는 권력의 얼굴이 바뀌면 마치 구조 자체가 바뀐 것처럼 착각하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3. 산업과 허세의 불편한 공생


이 비이성의 구조가 지속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산업 전체가 이 구조에서 단기적인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대회 주최자는 주목과 수익을 얻고, 낙찰자는 마케팅 자산을 확보하며, 언론은 화젯거리를 얻는다. 심지어 대회에 비판적인 이들조차, 기회가 주어지면 그 무대에 오르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 무대가 주는 ‘인정’과 ‘정당성’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기기만의 본질이다. 비판자마저 언젠가 그 게임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구조. 그 순간, 우리는 비판의 힘을 잃고, 구조의 일부가 된다.


4. 보이지 않는 다수, 이름 없는 커피


그러나 무대 아래에는 훨씬 더 많은 커피와 사람들이 있다. 이름 없이, 얼굴 없이, 그저 매일의 거래를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커피들. 그들의 품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들은 무대에 오를 자본이나 네트워크가 없어서 spotlight를 받지 못한다.


이 ‘얼굴 없는 커피’들이야말로 산업의 근간이다. 그들이 매일 생산하고, 거래하고, 소비되는 덕분에 커피 산업은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가치를 논하지 않는다. 그들의 거래에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언론을 장식할 낙찰가도 없기 때문이다.


5. 우리 세대의 문제: 인지하지 못하는 비이성


더 큰 문제는, 이런 구조가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는 고가 낙찰 뉴스나 화려한 브랜드 스토리를 보면서, 그것이 산업 전체의 발전을 의미한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 착각 속에서, 산업의 다른 중요한 부분—업계 내 부패척결, 생산자의 생활 안정, 밸류체인의 효율성 개선, 거래의 정직성—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우리 세대는 ‘멋져 보이는 것’과 ‘실질적으로 유익한 것’을 구분하는 훈련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것은 단지 커피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산업과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6. 지속 가능한 산업의 조건: 신뢰와 전문성


커피 산업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화려한 무대보다, 밸류체인의 각 단계가 전문성과 효과성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생산, 가공, 수출입, 로스팅, 유통, 소비까지—모든 단계가 제 역할을 정직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파트너십이다. 거래 상대방을 단순히 가격 흥정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신뢰를 쌓는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 단기적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숨통을 조이는 협상은 결국 자신이 속한 산업의 숨통을 조이는 일이다. 이 파트너십의 개념은 정말 모든 밸류체인 내의 당사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7. 이름보다 관계, 관계보다 구조


우리가 강화해야 할 것은 ‘누가’가 아니라 ‘어떻게’다. 유명 생산자, 유명 로스터, 유명 바이어가 아니라, 관계의 구조와 거래의 방식이 산업의 질을 결정한다.

이름 있는 몇몇 사람의 성공 스토리보다, 이름 없는 다수의 안정적인 생계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한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생태계다.


나아가며.. 조명 너머를 보는 눈


무대 위의 화려함에 매몰되면, 조명 너머의 그림자를 보지 못한다. 산업을 지탱하는 힘은 늘 무대 뒤,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온다. 커피인들인 우리가 굳이 감사를 해야한다면, 이름 없이도 매일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는 밸류체인 내의 모든 참여자들이며 우리가 진정으로 강화해야할 것은 그들과의 정직하고 지속적인 파트너쉽이다.


나는 절대 시장 논리를 부정하거나 시장의 기능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친시장적이다.

다만 산업에 낀 비이성을 직시하고 조금 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에 솔직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 세대가 이 비이성을 직시하고, 허세와 자기기만의 무대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을 때, 커피 산업은 비로소 진짜 건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무대에 서 있는 몇 명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묵묵히 움직이는 다수의 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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