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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결 Nov 04. 2024

비건축

非건축, Be 건축,vegan축

짓지 않는 건축, 비건축

 <000 교수님께.

교수님, 설계 하나의 프로젝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썩지 않는 것들이 저를 너무 아프게 만듭니다. 현실화 되지 않는 저의 설계를 위해 쓰이고 또 버려지는 썩지 않는 재료들과 부산물들이 많습니다. 건축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가면 얼마나 많은 폐기물들을 제 삶에서 만들어 낼지 너무나 두렵고 무섭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건축을 공부한 첫 해, 지도교수님께 한 통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가지 않아 인수공통감염병의 전세계적 유행이 찾아왔습니다. 세상에는 -마스크, 일회용컵, 비닐장갑…- 순환하지 못하는 물건들의 최전성기가 도래했습니다. 방에는 폼보드(폴리스틸렌 시트 양면에 종이를 붙여 만든 보드)로 만들어진 건축 모델들의 번성기가 찾아왔습니다. 위생과 편의라는 이름으로, 설계의 질을 향상이라는 이유로, 마음의 저릿함을 묵인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끊임없는 개발과 새로운 기술의 탄생, 빠른 변화와 적용만이 인류가 나아갈 길이라는 것처럼 달려왔습니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 인간 서식지가 확장하면서 자연의 경계를 파괴했으니, 비인간 동물, 바이러스, 균과 인간의 접촉이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과 인간. 우리는 언제부터 이분법적 경계를 만들며 이 격리된 서식지를 건축이라 부른걸까요.

 태초의 건축은 살기 위한 안식처였습니다. 자연에서 살아가고자 발화한 문화이자 기술, 건축.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보이는 것을 다루는 예술, 건축. 몇 천년이 지난 건축은 보이지 않는 공간을 위해, 보이지 않는 마음을 위해, 보이지 않는 느낌을 위했던 건축은 ‘보여지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지금까지 왔습니다. 썩지 않는 집합체, 우리는 썩지 못하는 도시 속에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굴레일까요? 현재의 자재들과 무수한 부재들은 쉬이 땅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건물은 죽음을 선고받으면 포크레인으로 조각조각나 매립지에 던져집니다. 건설업은 산업별 폐기물 전체 퍼센트 중 46.5%를 차지합니다. (통계청,2016) 사람을 담는 그릇이 순환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우리네 문명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자연의 고리가 무너진 인간들을요. 비거니즘을 건축에서 외칠 때, 바로 이 지점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건축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하는 이유이자 이를 비非건축이라 명명합니다.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축. 채우기 보다 비우는 건축. 짓지 않는 건축, 비건축.


 몸과 건축의 연결, 비건축

 본디 흙 한 줌에도 우주가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미생물들의 또 다른 세계. 우리와 함께 살지만 그들의 우주가 흙 한 줌에 존재합니다. 지구 상의 인간들의 수보다 훨씬 많은 미생물. 우리는 거대한 우주들을 없애며 서식지를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주로 건축이 시작되는 순간은 땅에 거대한 기기를 들이대고 깊은 곳까지의 흙을 파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를 붓습니다.

 고개를 숙여 지금 있는 공간 주변의 흙을 만져보아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상상해보아요, 산 속의 흙을. 사람과 차가 많이 다닌 흙은 버석버석히 생명력이 다해 먼지처럼 날아갑니다. 공사장의 분진처럼, 사막의 모래처럼요. 그에 반해 초록빛 아래의 흙은 다른 생명들을 풍부히 품어 촉촉하고 부드럽습니다. 이제 건축가는 이 촉촉함으로 인간을 돌려보낼 수 있게 고민해야 합니다. 사람을 품는 공간의 설계자이듯, 공간과 생명이 자연 속에서 순환하도록 지어야 합니다.

 비거니즘 운동이 건축에서 필요한 이유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다시 느끼는 회복으로써요. 몸의 감각을 깨워, 자연을 우리의 공간과 이어야 합니다.  이는 몸으로  이뤄지는 단련입니다. 몸, 육체, 감각. 자연과 대화가 일어나는 장소이자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우하는 공간.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말합니다. ‘심장이 유기체 안에 있듯, 몸은 세계 안에 있다’고. 현재 인간의 주거에는 몸과 상상력, 그리고 자연 간의 연결이 희미합니다. 분리와 단절로 점철된 서식지 밖의 세상을 꿈꿔야합니다. 우리의 몸은 눈에 보이는 광경을 끊임없이 살아있게 하고, 그 광경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마음 속에서 살아가도록 합니다. 몸을 통해 세계가 지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공간에서 스스로를 경험하고, 공간은 우리 안에서 체화된 경험을 통해 존재합니다. 세계와 내 몸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서로를 있게 합니다. 우리는 건축 안에, 건축은 우리 안에 살아갑니다.

 시간을 초월한 건축의 역할은 체화되고 생명력 있는 자연의 은유들을 피부로 느끼게 해, 생명이 안녕히 세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축을 통해 삶의 이미지와 생각들을 공간화하여, 세상을 지어냅니다. 몸과 세계를 잇는 행위, 흙 한 줌 속 우주와 우리네 우주를 잇고자 하는 ‘비건축’, 손끝으로 소리 높여 외칩니다.


2022. 소소기록 희망의 숲 학교

청년비건 작품집 수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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