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전의 자연과 신도시의 새로운 그리드는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각 지점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어떻게 이용해서 도시의 장점으로 만들어 낼 것인지 관건입니다. 산본의 경우에서 ‘공원’의 부분은 옛 수리산 기슭을 남기고 현 주거지역과 만나도록 했습니다. 반듯하게 딱 맞지 않지만 이 시대에 도시와 자연이 만나는 방식인 셈으로 읽혔습니다. 산본과 가까운 1기 신도시인 평촌에서 반년간 살았던 경험을 반추한다면, 사람도 많고, 아파트도 많고. 신도시 치고는 정겨운 시간의 때가 묻은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편했던 것은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 블록이 형성되어 있음에도 보행이 편했다는 것입니다. 보행 육교가 있거나 신호등이 블록 한 거리를 걷고 나면 다시 타이밍 좋게 바뀌는 식으로 참 신경썼구나가 느껴지는 동네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남악신도시의 경우, 2000년대 후반에 막 형성되기 시작해서 지금 한창 새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아직 보행이 뚝뚝 끊기고 자연과 연결되기에 큰 도로가 막고 있지만, 산본의 경우처럼 처음에 완벽한 설계가 아니더라도 서서히 바뀌어 나가면서 오래된 신도시로 변하는 지점이 오리라 기대합니다.
도시 스케일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잘 느껴지지 않을 큰 기하학을 다듬는데 시간을 쏟고 그에 많은 것들을 자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행’이라는 개념은 다시 나를 휴먼스케일로 데려가 보행과 도시 프로그램, 경관과 큰 스케일로만 보면 놓치기 쉬운 사람냄새 나게 하는 요소들을 고민케 합니다. ‘사람 사는 도시’라는 워딩은 복지와 정책이 탄탄한 측면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사람이 살기 좋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 보행과 블록 스케일, 프로그램 등의 배치가 설계자들이 원하는 장소성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는 것을 새삼 되새깁니다.
2023. 12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