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록 늙어서, 잘.
"어떻게 죽고 싶나?"
"늙어서"
며칠 전에 재밌게 본 영화의 악당과 주인공의 대화다. 오늘 밤 널 죽일 거라는 협박에 겁먹기는커녕 유머로 대응하는 주인공이 전형적이었지만 그래도 퍽 매력적이었다. 영화관을 나와서 집에 돌아온 후 잠깐 생각해 보았다. 난 과연 어떻게 죽을까? 영화 주인공의 바람처럼 늙어서 죽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되도록이면 병 없이 죽고 싶다. 사고로 죽게 된다면 고통 없이 즉사했으면 좋겠다. 내 죽음이 누군가에게 슬픔으로 남지 않고 죽는 순간 가족들 포함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내가 지워질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상관없겠다.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적당한 시점에서 그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이런저런 방법들을 생각해 봤었지만, 난 내 죽음이 누군가를 감정적으로 금전적으로 소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결론으로 고통스러웠던 20대에 가졌던 자살에 대한 탐색은 금방 정리되었다. 어쩌면 그 정도로 고통스럽지 않았는데 엄살을 부린 것 일지도 모르겠다.
40대가 몇 년 안 남은 시점에 작년 말부터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상실이 반복되다 보니 다시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대로 바스러지며 소멸하고 싶다', '내일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들. 식욕은 없고 하늘은 잿빛이며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내 삶의 소명인지는 다시 모르겠다. 사람을 잃은 것인지 세계를 잃어버린 지 구분이 가지 않는 상태로 걸어 다니는 시체 마냥(요즘은 좀비도 다 들 뛰어다닌다) 쳇바퀴를 돌고 있는데, 아무도 내가 이런 상태인 것을 못 알아채고 있을 때 사라져 버리는 게 깔끔하지 않을까? 인생의 리셋 버튼이 있다면 아마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 바로 눌러버렸을 것이다.
내 작가명은 MeMo, Memento Mori의 약자이다. 본래 유래는 로마시대의 개선식에서 개선장군과 같이 탑승하는 노예가 옆에서 외치는 경고의 말로, 너는 결국 죽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나는 이런 유래에서 비롯된 겸손함을 떠올리기보다는 단어 그대로의 '죽음'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동안 보내온 타인들, 가족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나의 죽음도 잊지 말자는 의미인데, 자꾸 잊고 살아서 이 말을 아예 팔목에 새길까 고민 중이다.
현대 기술로도 손 쓸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고 죽음은 평소보다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요즘 정말 아무 의욕이 없고 모든 걸 때려치우고 골방에 틀여 박히고 싶은 심정일 때 죽음을 바라본다. 죽음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느 곳에나 있어서 언제 내 손은 잡을지 모른다. 그는 내 삶의 적이면서 동반자이고 스승이다. 네가 옆에 있기 때문에 나는 오늘 무언가를 한다. 귀찮고 수고스러워도 죽는 그 순간에 '아 그때 그 일을 해볼 걸", '아 그때 내 마음을 전해볼 걸' 같은 후회를 더는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진부한 말과 마음이지만 어쩌랴 이것이 나의 진심인 것을.
삶의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릴 때 다시금 떠올린다. 나는 내일 여기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무런 준비 없이. 그래서 나중에 하려던 것을 지금 당장 하고, 전하고 싶은 마음은 지질하고 궁상맞게 보일지라도 전해 본다. 상대방이 폭력적이거나 강제적으로 느끼지 않는 선에서. 언제 죽을지는 정말 가늠이 안 되지만 그때까지는 매 순간의 선택만을 집중하려 노력한다. 우울과 슬픔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려 애쓰고 가진 물건을 줄여나간다. 인간만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은 상기하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종이 함께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돕는다. 가장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죽음이 찾아오길 바란다. 되도록 잘 늙어갈 생각이다.
일단 코로나로 죽진 않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