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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 MeMo Jul 22. 2020

거리두기

사람 - 나 - '나'

 코로나의 창궐로 인해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서로가 권장하고 때로는 강제하는 룰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거리두기로 인한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고 어제는 영국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조롱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나라는 이제 좀 그 분위기가 많이 죽었지만 아직 내 주위에는 아이나 노약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탓에 긴장을 늦추지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내 어머니는 아직 현직에서 일하시는 간호사시다 보니 평일에 외출을 삼가시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고독감은 무서운 것이라고. 외톨이라는 소외감. 내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그 비참함들은 모두 고독감에서 비롯된다.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그대로 '독'이 되어서 이 세상에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리라. '고독을 받아들이고 인생의 친구로서 한께 걸어가라'는 유명한 누군가의 말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손 닿지 않는 강물 위를 떠 흘러가는 한낯 연꽃송이와 같은 것이다. 향기조차 맡을 수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펜더믹 전보다 늘어가기는 커녕 더 줄어든 것 같은 요즘에 나는 나와 '나'의 거리감에 대해서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현재의 나와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의 '나'. 질병이 창궐하기 훨씬 전부터 나와 나 자신은 꽤 먼 거리를 떨어져 지낸 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좁혀졌다 생각하면 멀어져 있고, 밀어냈다 생각하고 눈 떠보면 바로 뒤통수 숨이 닿을 데에서 서있는. 그 사실이 나를 엄청나게 괴롭히지는 않지만 뭔가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은 있다. 그래서 가끔 크게 숨을 쉬어야 한다. 아무 이유 없는 한숨도 이 녀석 때문인 것 같고.


 답답함이 담담함으로 순화되고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나 자신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 자신을 타자화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거쳐서 내면부터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는, 내 인생에서 가장 고되고 수고스러우면서 긴 호흡의 그런 대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나이가 아닐까? 나의 외형, 경제력, 사상, 근력, 창의력, 행동력과 판단력이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질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의 나를 보면은 '글쎄? 너 할 수 있겠냐?'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지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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