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올해 두 번째 자수 작업을 마감 지었다. 처음 바늘을 잡은 지부터 벌써 5년이 지났다. 내 실력은 일취월장이라고 표현은 못하겠지만 독학으로 더듬거리며 한 것 치고는 꽤 봐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단계까지는 아직 한참 멀어서 죽기 전에 닿을지는 의문이지만, 천천히 공들여 정진하기에는 캘리그래피와 더불어 알맞은 분야라고 느껴진다.
「팔색조 : 숲의 요정」
8살 어렸던 여자 친구가 독일로 인턴을 떠나기 전에 장난처럼 던진 말 때문에 시작한 자수였다. 간단해 보이던 것이 실제로 해보니 며칠 밤을 새도 완성이 되지 않았다. 바늘 때문에 손 끝에 물집이 생겼다. 그 뒤에도 희한하게 자수를 할 일이 종종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는 더 잘할 방법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해외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책을 구입하고, 번역본이 없으니 직접 번역하고. 핀터레스트는 어느새 자수 이미지로 꽉 차든지 오래다. 색 표현력이 부족하다 싶어서 그림 수업을 들었다. 도안을 오일 색연필로 전에 직접 그렸다가 실에 색이 묻어 나와서 요즘은 연필 드로잉을 그리고 색은 상상하며 고르고 다시 작업 전에 선별한다. 3~4색 실만 쓰다가 이제는 20색 이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작업에 쓰인 도구와 나의 바이블
나는 환경적으로 '노임팩트 라이프를 지향'하고 동물권을 지지한다. 지금 내 작업을 소식지에 싣고 있는 '생명다양성재단'은 제인 구달 박사님의 범지구적인 풀뿌리 환경 소모임 운동인 '뿌리와 새싹'의 한국 본부를 겸하고 있다. 개인으로서 교육이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다른 소모임들의 활동을 보고 나고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활동들을 찾다가 간간히 하던 자수 작업을 떠올렸다.
자수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공예 활동이다. 현재 가장 오래된 자수 작품은 2000년이 넘은 것도 있다. 실과 바늘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은 무궁무진하지만, 개인적으로 털이난 동물과 깃털이 달린 새를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사실적인 재료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장 오래 전해져 온 방식과 앞으로 오래 남을 수 있는 재료로써 지금 사라져 가는 생명들을 남기고 기록하는 것을 내 활동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재단 측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뭔가 활동의 이름을 붙이고 싶어서 '생록(生錄) 프로젝트'라고 지었다(짓고 나니 너무 거창해서 바꾸고 싶었지만 지금은 늦었다).
첫 작업 「수달」
주제를 멸종위기 동물로 정하고 나니 작업의 리스트는 많다 못해 점점 늘어만 간다. 몇 년 전부터 내 안에 의문이던 '이걸로 먹고살 수 있는가'에 대해 '아직은 힘들다'라는 결론은 내고 나니 뭔가 마음 편하게 작업이 된다. 어딘가의 매체에 소개가 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다. 누군가 내 작업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그 생명들이 사라지고 있음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면 나는 그 순간부터 작가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점과 점을 실로 이어가는 이 오래된 예술에서'남자가 자수를 한다'라는 사회적인 특이함을 넘어서 진정한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캘리그래피나 설치 작업과의 결합을 꿈꾼다. 옷 작업에도 결합시키고 싶다. 패턴화 해서 상품화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다. 모든 수입금을 동물 보존활동에 돌리는 사업을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내 작업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한 땀 한 땀 신중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너무 당기지 않고 적당한 긴장에서 매듭을 짓고 다음 색의 실로 넘어가야 한다. 모든 일을 잘 된 자수처럼 하면 느리고 고되더라고 그르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