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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 MeMo Jan 05. 2022

물을 마신다

어떻게 마시고 계신가요? 혹시 사서?

 인간은 물 없이는 살 수 없다.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수분을 제대로 보충하지 않으면 생명이 다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우리가 섭취하는 모든 음식에는 모두 일정량의 수분이 함유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갈증을 느낄 때 대부분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물을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보리차, 결명자차, 옥수수수염차, 뭐 이것저것 대용할 차와 같은 음료들도 많지만 당장 목이 탈 때 생각나는 것은 무색무취 무향의 물 말고는 없다.    


 거의 지난 20여 년 동안 정치가들은 깨끗한 '아리수'를 마셔보라고 시민들을 회유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기생충 관련 사건 사고를 떠나서 건물의 수도 배관이 깨끗할지를 장담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을까? 내가 어릴 적에 살던 아파트는 지은 지 10년이 좀 넘었는데도 가끔 녹물이 콸콸 나왔다. 그런데도 누가 우리 집 안팎의 수도배관을 고치는 걸 본 기억은 전혀 없다. 기본적으로 가정용 수도배관의 수명은 20~30년이기 때문에 내가 사는 서울 시내만 조사하더라도 교체를 당장 해야 하는 가구가 30만이 넘는다.

 

 여하튼 노후주택의 재개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은 수돗물을 그대로 먹지 않는다는 거다. 나의 유년기에는 보통 수돗물을 끓인 다음 식혀먹었다. 현재와 같이 아무리 정부에서 안전하다고 떠들어도 수돗물에 대한 불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다. 큰 주전자에 물을 가득 끓여놔도 2~3일이면 금방 동이 났기 때문에 나의 사랑하는 양옥남 여사께서는 귀찮다고 투덜투덜 대시면서도 가족들을 위해 그 번거로운 일을 주저 없이 하셨다.


 88년 올림픽 이후로 금지되고 있던 물장사, '생수사업'이 허가되면서 이를 사다가 먹는 가구가 점차 늘어나고, 25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생수 시장의 규모가 1조 원에 다다를 정도로 커졌다. 정수기도 소형화되고 무동력화 되면서 사용하는 집도 꽤 있지만, 많은 가정에서 장을 보러 가면 돌아올 때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하는 건 대부분 몇 주간의 식수를 감당할 생수 묶음이다.


 대형마트를 굳이 찾지 않아도 우리가 투명한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접할 수 있는 곳은 굉장히 흔하다. 동네 슈퍼, 편의점, 피시방, 패스트푸드점... 종류도 엄청 많아졌다. 어떤 물은 제주도에서, 어떤 물은 울릉도에서, 어떤 건 머나먼 알프스에서. 국내 유통되는 생수 브랜드는 2022 현재 20여 종에 이른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한 때 '물 소믈리에'가 각광받는 직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전도유망한 직업이라는데 아직 살면서 직접 만난 적은 없다.    


 나는 사람들이 포장된 생수를 사 먹는 것이 깨끗한 물을 먹고자 하는 건강과 생존의 욕구보다 물통을 들고 다니지 않고 그때그때 목이 마를 때마다 사 먹고 바로 버릴 수 있는 편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이라 생각한다. 이 편리한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사람을 받으며 우리는 한국에서만 연간 49억 개의 생수병 쓰레기를 쏟아내고 있다.


 49억 개.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는데 그린피스의 자료에 따르면 그냥 땅에 수직으로 세워서 죽 일직선으로 나란히 붙여 이으면 지구를 10바퀴는 너끈하게 돌고, 수직으로 탑을 쌓으면 달에 닿는다고 한다. 이를 전 세계로 생각하면 다시 전혀 감이 안 온다.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일인가?


 내가 속해있는 창작집단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에서는 2019년에 "쓰레기와 동물과 시"라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코에 빨대가 꽂힌 거북이 분장을 하고 서울 도심 속을 누비며 직장인들에게 일회용 잔이 아닌 텀블러 사용을 독려하는 퍼포먼스를 벌였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생수를 사 먹지 말자는 메시지도 전달했어야 했다. 커피가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에서만 49억 개라니까? 세계가 아니라고!


 사람들이 생수를 거리낌 없이 사 먹는 데에는 한국인의 종특인 '철저한 분리수거 의식'도 한 몫한다. 생수병은 투명한 PET이기 때문에 자원의 순환이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생수병의 거의 80%가 잘 분리되어 배출되지만 이 중에 재활용이 되는 비율은 45%를 밑돈다. 70%는 그냥 버려진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무리 분리수거를 잘해도 생수병 릴레이가 매년 지구를 7바퀴를 돈다. 여기에 음료수, 테이크아웃 잔, 배달음식 포장음식, 물티슈(물티슈도 거의 다 플라스틱이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매일 버려지는 마스크까지 보태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쓰레기가 매일 우리의 소비로 인해 생산되고 있다. 생명이 아직 지구 상에 살아남아 있는 게 새신기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필터 교체용 정수기를 쓰든지 아니면 물을 끓여 마시든지, '녹물 정도야 철분 보충용으로 좋지!'라며 수돗물을 마시든지 생수를 사서 마시지 않고 수분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해보면 많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완벽한 답은 되지 못할 것이다. 필터 정수기는 필터라는 쓰레기를 주기적으로 만든다끓여 먹는 물은 화석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현대의 인간 무언가를 행동하면 부산물로 많든 적든 무조건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기술의 발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하지만 해당 기술의 상용화보다 쓰레기 배출량 증가의 가속도가 훨씬 빠르다. 택도 없는 소리다.


 나는 지금 생수병 쓰레기만을 문제 삼고 싶어서 이야기 꺼낸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의 흐름이 무조건 편리함으로만 흘러가고 가장 빠르고 가볍고 간편한 것들이 좋은 것이라고 치켜세우는 무비판 성에 대한 반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예전처럼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천리길을 말을 타거나 봇짐을 지고 걸어갈 수도 없고 책을 만들 때 목판 인쇄를 하자는 말도 아니다. 다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가 매일 자신의 작은 선택들이 쌓이고 모여서 전 지구적으로 어떤 결과를 만드는 지를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성숙되고 깨어있는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의식을 경계하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주변의 다른 생명들의 삶에도 눈을 돌리는 진정한 만물의 영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애쓰는 그런 삶을 사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지금 이대로는 인간은 지구에서 억제되지 못하고 있는 암세포와 다름이 없다. 백신은 단 하나, 우리 인간의 환경에 대한 철학과 생태 감수성에 대한 의식의 고양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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