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도 짧지도 않은 손편지를 계획 중이다.
언젠가부터 글을 쓰는 것이 힘겨워졌다. 지금 이 문장도 쓰기가 힘들다. 뇌의 연상능력과 연산능력 모두 멈춘 것 같은 착각에 사로 잡혀있다. 그 동안은 바쁜 와중에 내 자신까지 괴롭히고 싶지 않겠다는 핑계를 대며 빠져나오기를 미뤘다. 지금 이 글은 7개월만의 첫 타이핑이다.
편지를 쓰고 싶다. 이것 역시 미뤄왔던 일이다. 답장을 해야하는 손편지가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반드시 같은 형식의 답을 돌려줘야 한다. 늦은 만큼 더 솔직하고 정성스러운 편지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편지를 주고 받는 행위가 어색해져 버린 시대에 같이 뭍혀서 살고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펜을 드는게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별하게 느껴지게 하고 싶어서 우표까지 사놓았는데 몇 장을 붙여야 하는지 까먹어서 우체국에 다시 문의를 해야한다. 다행인건 답장을 받을 상대가 늦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준 거지만 이제는 내가 괜찮지 않다.
여느 때보다 바쁘게 살고 있다. 물론 내 일정의 반 이상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머리가 지칠 때 가끔은 현타가 씨게 오기도 한다. 당장 내년에 대한 걱정도 많이 되고. 다만 조금 달라진 건 그 걱정에 너무 깊이 빠지지는 않는다는 것. 눈 앞에 할 일들을 그냥 생각하지 않고 처리하는 것에 집중하려 애쓴다. 7월부터 좀 쉬려했는데 10월은 되어야 쉴 수 있겠지. 이제부터 들어오는 모든 일정들은 거절할 마음을 먹었다. 지난 8개월동안의 경험들을 정리하고 되새김질해서 내 안에 체화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3개월은 쉬어야겠다.
편지는 쉬기 전에 쓰려한다. 예전 워드프로세서가 쓰이기 전 방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펜과 종이로만 쓸 생각이다. 이건 업무 메일이나 보고서가 아니니까. 갈무리되고 다듬어지지 않은 글씨와 생각의 나열일지라도 그렇게 편지를 받는 이에게 내 생각과 마음을 보내고 싶다. 보낼 때 받는 게 오래 걸리는 일반우편으로. 서울 어딘가에 남아 있을 우체통을 찾아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