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비전공자에서 그림작가가 되기까지

by 찬H



고3 무렵,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미대 진학을 준비한 적이 있다.

당시 다니던 입시 미술 학원에서 나는 ‘쩔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묘사를 아주 ‘쩔게’ 한다는 뜻이었지만, 꼭 칭찬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주어진 4시간 안에 그림을 ‘완성’하는 게 중요한 입시에서, 나는 디테일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작업을 끝내지 못하는 일이 잦았고, 그 별명엔 그런 나를 은근히 비꼬는 뉘앙스도 담겨 있었다.

묘사에 대한 집착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지금까지도 그림 곳곳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미대 입시에 실패한 뒤, 재수 끝에 들어간 대학교에서는 스페인어를 전공했다.

전혀 다른 길을 택했지만, 창작에 대한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학과 로고를 만들고 과잠 프린팅을 디자인하는 일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대학생 시절 작업했던 학과 로고 디자인



매 강의마다 앞에 나가 스페인어로 암기한 글을 외워 발표하고, 토론해야 했던 통번역학과의 수업은 소심한 나와 맞지 않았다. 모든 커리큘럼이 내게는 트라우마로 느껴질 만큼 버거웠고, 밥 먹듯 자체 휴강을 하며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을 더 자주 들락거렸다.


결국 2년을 휴학했다.

처음 1년은 남들도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대외활동을 하고 봉사도 다녀봤지만, 돌이켜보면 마음에 남는 건 거의 없었다. 이후의 시간은 방에 틀어박혀 히키코모리처럼 지내며, 온전히 그림을 공부하는 데 쏟았다. 아빠는 그런 내 모습을 못마땅해하셨지만, 엄마는 언제나 내 편에 서서 조용히 지켜봐주셨다. 그래서 그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었다.


포트폴리오 사이트에 작업물들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양한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개인 사업자를 내고 수익이 생긴 이후부터는 부모님 앞에서도 조금씩 당당해졌다.



(↑ 방 안에만 있던 시절 그렸던 그림들)



나는 여전히 혼자 그림을 그린다.

매우 내성적인 성격 탓에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으니, 일러스트레이터 중에서도 꽤나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 나서서 영업을 하거나, 일러스트 페어 같은 행사에 참여해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아직도 쉽지 않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부담스럽고, 내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12년을 일하며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 그 성실함을 좋게 봐주신 클라이언트들이 꾸준히 일을 맡겨주신 덕분에, 나는 지금도 무리 없이, 내가 원하는 속도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의뢰가 들어오면 며칠, 혹은 몇 주간 잠을 줄여가며 작업에 몰두하고, 일이 없을 땐 개인 작업에 집중하며 포트폴리오를 채운다. 수입은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지만 크게 불안하지 않다. 지금의 일상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말이 서툰 나에게, 그림은 나를 대신해 주는 언어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들을 그림으로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다행스럽다. 함께 나누고 싶은 온기, 다 전하지 못한 고마움, 그리고 조심스러운 속마음까지, 모든 게 그림 안에 담겨 있다. 그림은 나의 이야기이자, 타인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요즘은 예전보다 조금 더 차분하게, 더 다정하게 그리려 한다. 서두르지 않고, 한 겹 한 겹 색을 얹는 과정을 소중히 여긴다. 내가 그린 작은 순간들이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건네고,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하루의 한 구석에 잠시 머물다 가기를 바란다. 이 일을 좋아하는 마음만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그렇게 하루를 쌓아가며 나만의 속도로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