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현재의 그림과 2012년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사람이 그렸다고는 쉽게 믿기 어려울 것 같다.
처음 그림을 연습하던 무렵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작업했다.
익숙한 캐릭터에 유머를 살짝 더한 그림이 대부분이었고, 당시에는 그게 내 색이라고 여겼다.
그림은 블로그에만 가볍게 올리는 정도였는데, 2013년 여름, 뜻밖에도 그룹 전시 참여 제안을 받게 된다.
주제는 [반려동물] 그리고 [동행].
생각지도 못한 기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나는 아마추어 티를 제대로 벗지 못한 초짜였고, ‘내가 거기 껴도 되나...?’ 싶어 잠깐 망설였지만, 20대의 패기란 참 대단한 법이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넙죽 “하겠다”고 해버렸다.
그리고 그 전시는 내 그림체가 바뀌는 첫 번째 전환점이 됐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내가 처음으로 완성한 '배경이 있는' 그림이다.
고작 30x30cm짜리 작은 캔버스를 채우는 데 두 달 가까이 걸렸고, 그리는 것보다 지우는 일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림의 배경까지 작업한다는 건 예상보다도 훨씬 복잡한 일이었다.
주인공과 강아지가 어디에 있고, 어떤 시간을 보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그 모든 요소를 어떤 구도로 담아낼지까지 꼼꼼히 계산해야 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캐릭터만 그리는 데 그쳤다면, 이 그림을 계기로 '장면'과 '공간'을 구성하고, '이야기 전체'를 상상하게 됐다.
그림을 안고 전시장에 들어섰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벽에는 이미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림이 하나둘 전시될 때마다 카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신기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쪼그라들었다.
다른 그림들은 모두 완성도도 높고 멋져 보였다. 내 그림이 초라하게 느껴질까 봐 불안했지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벽에 걸리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비로소 내가 진짜 ‘그림작가’가 된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나를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이끌어준 이 작품은
2015년 네이버 그라폴리오 공모전에서 1등을 했고, 2017년에는 책 표지로 사용되었으며, 지금까지 엽서로 8,000장 넘게 판매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림에 대한 감상이나 각자의 해석이 담긴 후기를 읽을 때마다, 한 장의 그림이 누군가의 하루를, 기분을, 기억을 살짝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여전히 내게 특별하고 애틋한, ‘처음의 감정’을 붙잡아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다.
작업을 하다가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나는 이 그림을 꺼내 본다. 그러면 그때의 마음가짐과, 애썼던 시간들이 다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