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그린델발트는 초코나무숲
01
루체른을 떠나기 전, 숙소 뒤편의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어제 비가 오는 바람에 눈이 다 녹아 있었다. 나는 길가에 남은 슬러시 같은 눈더미를 서벅서벅 밟으며 산책을 했다.
내가 묵은 호스텔은 조식이 따로 없어서 밖에서 먹을 곳을 찾아야 했다. 나는 로이스 강이 굽어 보이는 스타벅스에 들러 샌드위치 하나와 핫초코 한 잔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다. 간만에 먹어본 따뜻한 음식이었다. 항상 마트에서 대충 빵이나 냉장식품으로 끼니를 때웠었는데.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 울퉁불퉁한 돌바닥 위를 구르며 캐리어가 요란하게 덜컹인다. 언제 루체른을 다시 올 수 있을까. 푸른 아침의 로이스강은 무심하게 산뜻한 마을의 정경을 비추고 있다.
루체른 역에 다 와서는 기차에서 먹을 만한 것들을 사러 쿱마트에 들렀다. 쿱에서는 사람들이 바나나를 한 개씩 떼어 가고 있었다. 바나나는 계산을 어떻게 하는 걸까.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과일 번호라는 게 있었다. 저울에 바나나를 올린 뒤 과일번호를 입력하자 바코드가 인쇄된 스티커가 출력되었다.
02
인터라켄행 기차에 올라타, 좌석 앞 작은 테이블에 바코드 스티커가 붙여진 바나나 한 개를 올려 놓았다. 기차는 구름진 하늘 밑 푸른 초원을 흐리게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인터라켄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푸르러졌고, 창 밖에는 작년 여름에 보았던 에메랄드빛의 브리엔츠 호가 담겨 있었다. 여름의 브리엔츠 호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호수가 초코나무숲을 등지고 있는 게 아니라 쿠키앤크림을 등지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객차 안은 겨울의 한적함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나는 하얀색 노트를 펼쳐 널찍한 창문을 느리게 지나가는 흑백의 산맥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방엔 검정색 볼펜 한 자루밖에 없었지만 충분했다. 겨울 풍경은 색이 없었다. 흑백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기차의 적막이 지겨웠는지, 나는 무성영화에 배경음악을 더했다. 플레이리스트에 두서없이 쌓아놓은 겨울노래들은 입을 모아 창밖의 풍경을 말하고 있었다. 음악은 차창을 따라 필름처럼 지나가는 기억들을 계속해서 담아냈다.
03
목적지에 다와갈 즈음, 열차 복도를 따라 펭귄처럼 걸어오던 아기가 나에게 미소를 건넸다. 아기가 손을 흔들자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되어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고, 건조했던 무표정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아기의 미소에는 어른의 순수함을 토해내게 하는 힘이 있는 건지, 왈칵하며 아이와 같은 얼굴을 내보이게 만든다.
기차가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하고, 나는 캐리어를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1월의 인터라켄은 회색빛이었다. 여름에 봤던 초록빛은 다 어디 갔는지, 눈이 얼기설기 내려앉은 나무는 잎을 다 떨군 채 겨울을 품고 있었다.
백패커스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나는 곧바로 그린델발트로 향했다. 그린델발트행 기차에는 유독 한국인이 많았는데, 눈을 감고 대화 소리만 들어보면 KTX나 다름없었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스위스를 좋아하는 걸까. 한국인들에게 먹히는 컨텐츠 두 가지—스위스, 그리고 기차—가 모두 들어간 여행을 하면서, 유튜브라도 시작해 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델발트 역에 기차가 멈춰 서고, 나는 마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로가를 따라 걷는 내내 작년 여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참 푸릇푸릇했었는데, 어느새 그린델발트는 흰 겨울로 가득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드높은 눈[雪]의 산맥은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떠다 놓은 것 같았다.
여름의 그린델발트가 초코나무 숲이라면
겨울의 그린델발트는 쿠키앤크림.
엷은 초록빛을 내뿜던 나무들이 어쩜 저렇게 아름다운 까만색을 자아낼까. 알록달록하던 풍경이 어떻게 흑백사진이 되었을까. 여름은 유화를, 겨울은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심지어 겨울은 하늘도 눈[雪]의 빛을 띤다.
04
점심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우선 쿱마트에 들러 닭다리 하나와 콜라 한 병, 바나나 한 개를 사왔다. 앉을 곳을 찾아다니다, 아무도 없는 교회 뒤 벤치에 앉아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쿱에서 파는 닭다리는 정말 맛있었지만, 솔직히 조금 외로웠다. 유독 식사를 할 때 외로움이 찾아온다.
작년 여름, 피르스트에서 트로티 바이크를 타고 내려온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서 피르스트 곤돌라를 다시 타보기로 했다. 지금은 겨울이라 트로티 바이크 운행을 안 하지만, 아이젠을 신고 그 코스를 따라 걸어 내려가볼 요량이었다.
그래서 일단 편도 티켓만 끊고 곤돌라를 탑승했다. 창문 위에 작게 뚫린 틈 사이로 찬 공기가 불어왔다. 곤돌라는 케이블을 따라 10여분을 올라갔고, 나는 Bort역에 내려 마을로 내려가는 코스를 찾아 걸었다.
피르스트의 겨울은 나를 멈춰 세웠다. 한참을 서서 설경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따뜻한 입김이 입 밖으로 뿜어 나왔다.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썰매를 타고 하나둘 언덕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걸어서 내려가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지만, 애초에 사람이 적었던 터라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저, 지난여름 트로티 바이크를 타고 내려갔던 도로를 찾아 헤맬 뿐이었다. 분명히 여기 어딘가에 길이 있었는데...
그러나 아이젠을 신고 마을까지 걸어 내려가보려던 내 계획은 멍청한 생각이었다. 처음엔 길이 사라졌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스키장처럼 엄청난 양의 눈이 두텁게 사면을 다 뒤덮고 있어서 애초에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썰매나 스키가 없으면 마을로 내려갈 수가 없었는데, 곤돌라도 편도만 끊었던 바람에 내려갈 티켓도 없었다.
가뜩이나 늦은 오후라 곤돌라도 운행 마감을 앞두고 있었다. 어쩌면 산속에 고립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나는 두려움에 휩싸여 매표소로 찾아가 직원에게 도움을 구했다. 다행히도 티켓이 남아있었다. 조금만 늦게 올라왔다면, 해질녘 비탈진 눈길을 따라 굴러 내려와야 했을지도 모른다.
안도감과 허무함이 섞인 감정을 갖고 곤돌라에 몸을 실은 나는, 내려가는 동안 꼼꼼하게 창 밖의 풍경을 살폈다. 30분에 19프랑을 태우다니. 이러려고 올라간 게 아니었는데.
05
마을로 무사히 내려온 나는 인터라켄행 기차를 기다리며 작년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치즈 가게를 하시던 백발의 여사장님, 호스텔로 걸어가던 길, 전부 그대로였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공간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변했지만 너는 그대로구나, 라는 식의 반가움은 우연히 변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필연적인 감정이다. 불안정한 인간의 자아가 기댈 곳은 변하지 않는 것들—혹은 그래 보이는 것들—뿐이다.
06
인터라켄에 도착해 호스텔로 걸어가는 길, 금세 어둑해진 저녁에 등불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한다. 검어진 나무 사이로 노란 조명들이 반짝거리는 것이 모닥불을 보는 듯하다.
따뜻한 숙소 내부에 들어서자,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뿌옇게 보이는 데스크 직원으로부터 방 키를 건네받은 나는, 협소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인실 도미토리로 향했다. 겨울 시즌이라 사람이 적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좁은 방 안에 놓인 6개의 침대가 만석이었다. 5명이 남자, 1명이 여자(혼성 도미토리였다), 그리고 3명이 한국인, 3명이 외국인이었다. 개중에 한국인 여자분은, 저렴한 값에 혼성 도미토리를 예약했겠지만, 아무래도 조금 불편한 기색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조리실에 들어섰을 때는, 삼겹살 냄새가 자욱해 여기가 한국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조리실에 있던 사람들 8할이 한국인이었다. 여행사에서 단체로 온 것도 아니고, 각자 친구끼리 오거나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여행객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스위스'만' 여행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스위스만 보러 오기에는 아무래도 물가라던지, 시간이라던지 경제성이 많이 떨어지는 듯하다.
밤 10시, 샤워를 끝내고 이층침대에 처음 몸을 뉘어보았을 때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난간도 없는 이층침대는 복도에서 누가 걷기만 해도 삐걱거리며 많이 흔들렸다. 이러다 침대칸이 가로로 엎어지는 것은 아닌가, 자고 일어나면 바닥에 떨어져 있지는 않을까, 하며 불안함에 몸을 벽 쪽으로 바짝 기대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잠을 잘 수나 있으려나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어떻게 잠이 들어버렸다. 이층침대의 흔들거림이 요람의 역할이라도 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