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hemian Rhapsody
몽트뢰의 태양은 유난히 밝았다. 호수로부터 포근한 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오는데, 같은 나라의 겨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날씨였다. 나는 겨울치고는 하늘도 지독히 새파랗다는 생각에, 하늘에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어 구름을 따라 걸었다.
하늘에 난 구름 자국이 레만 호를 향해 뻗쳐 있어서인지, 내가 호수로 걸어간다는 느낌보다는 호수가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 빛나는 수평선이 블랙홀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언가에 강하게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건물들을 걷어내고 탁 트인 공간에 다다르자, 레만 호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국경선이 자리한 레만 호 건너편에는 프랑스의 산맥이 하나 있었는데, 산맥과 호수의 경계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었던 호수의 풍경이었다. 수평선이 무슨 이유로 저리 빛을 내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처음 보는 광경에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한 도시라더니, 단박에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비자연적인 경관을 보며, 몽트뢰의 아름다운 첫인상이 강하게 뇌리에 박혀 들어왔다.
길을 되돌아 숙소로 향하는 나, J5 호텔 앞에 도착한다. 호텔은 생각보다도 더 오래된 건물이지만 오페라 극장 같은 벨벳 계단 앞에 서자 기분이 묘해진다.
J5호텔에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안경을 쓴 지배인이 나를 맞이했다. 나는 키를 받아들고 방으로 향했다. 로비 한복판에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나무 상자 같은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게 엘리베이터인 줄도 몰라 로비를 뱅뱅 돌았다.
유리창이 나있는 목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나는 캐리어를 이끌고 일종의 시공간을 비트는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카펫을 따라 부드럽게 굴러가던 캐리어가 목조 바닥에 맞닿아 덜컹이는 소리를 내었다.
고전적인 엘리베이터의 작동음을 끝으로 엘리베이터가 고층에 멈춰섰다. 낡은 문들이 늘어선 호텔 복도에는 오후의 적막함이 감돌았다.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이 살며시 들어오는데, 투명한 샹들리에가 반짝이며 거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등장인물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짐을 다 풀고서도 오랫동안 방 안에서 발을 떼기 힘들었다.
트램을 타고 시옹성으로 향하는 길, 중세풍의 성 외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시옹성을 갈 계획은 없었지만, 스위스 패스가 있으면 입장이 무료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트램 안에 몸을 싣고 있었다.
시옹성은 서늘했다. 오래된 성, 그런 느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감옥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오크통이 쌓인 공간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열쇠 구멍 모양의 거대한 틈으로 레만 호의 푸르름이 들어왔다. 어둡고 비좁은 성 안에 드리운 그림자가 푸른 햇살에 녹아내렸다.
그렇게 시옹성 안을 돌아다니던 나는,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한국인 아저씨를 마주쳤다. 처음에는 머쓱한 눈인사와 어색한 미소로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것에 그쳤지만, 나는 이날 아저씨를 두어 번도 넘게 다시 마주쳤다. 아저씨가 처음 내게 말을 건 것은 몇 시간 뒤 레만 호 벤치에서였다.
시옹성 앞,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보는 듯한 신비감에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따라 끝부분에 다다르면, 발 아래에 호수를 두고 둥실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옹성을 뒤로하고 나는 레만 호를 따라 정처 없이 걸었다. 호수의 수평선은 아직도 부옇게 빛나고 있었다. 구름을 흩뿌려놓은 듯한 하늘을 올려다 보던 나는 날씨만큼이나 포근한 걸음을 걸었다.
나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걸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보냈던 몽트뢰에서의 일상을 상상하며.
레만 호에 노을이 내려 앉기 시작할 즈음, 프레디 머큐리 동상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팔을 치켜 세운 머큐리 동상에 노을빛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머큐리 동상 앞에는 항상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머큐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었지만, 누군가의 뒤통수와 누군가의 앞통수에 가로막힐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큐리 동상은 몽트뢰 여행의 하나의 상징이었다.
동상을 중심으로 몽트뢰의 전경이 360도로 펼쳐져 보이며, 머큐리의 피아노 선율이 귀에 맴돌기 시작한다.
누구나 아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트로. 그 피아노 선율에 몽트뢰의 기억이 담겨 버렸다. 노래에 기억이 한번 물들면 잘 빠지지 않는다던데.
하늘이 점점 어둑해지더니 외로움이 슬며시 찾아왔다. 저녁을 혼자 먹을 때면 가끔 외로움이 몸집을 불려오곤 하는데, 유독 외롭다라는 감정이 강해졌다. 시끌벅적한 식당 테라스 탓이었을까, 아니면 퍽퍽하고 기름진 닭고기 탓이었을까. 밤산책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보던 나는 몽트뢰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