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독자의 존재성

by 찬희

글은 불멸의 삶을 살아낸다. 하얀 바탕 위를 새까만 글자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그 순간 글은 생명을 얻는다.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기록된 것들은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지 않는 한 영원하다. 아주 오래전에 쓰여진 고대 문학, 어느 왕조의 기록을 엮은 역사서들은 오히려 시간이 지나 생명을 더 얻기도 한다. 종이에 칠해진 먹글씨가 디지털화되고, 끊임없이 복사되어 어느 차가운 서고 안에 쌓여간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가장 좋은 시간대는 언제일까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에는 ‘유통기한’이 있지 않을까 하는. 브런치의 많은 글들은 사람들에게 짧은 기간 안에 소비된다. 어느 정점을 지나는 순간, 대개는 글에 대한 관심도가 식어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죽지 않는다. 다만, 글은 상한다. 글이 상한다니, 다소 과격한 표현이 아닐까 싶지만, 나는 글을 인스턴스 식품 마냥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대부분의 글은 독자들의 관심이 훅 떨어지는 유통기한을 맞이한다는 현실을 생각해 냈을 뿐이다. 유통기한이 없으면 새로운 글이 주목받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서고에 꽂혀 있는 낡은 고전을 바라본다. 고전은 유통기한이 없는 글이다. 어쩌면 유통기한을 아직 맞이하지 않았거나. 모종의 이유로 미래의 인류는 어느 고전을 더 이상 고전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변화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면 글은 모든 가치를 잃어버릴 것이다. 인간의 글을 읽어내고 사고할 수 있는 생명체는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모든 글은 유한하다. 생명체가 아닌 AI는 어떤가? AI는 인간도 아니지만 글을 읽어내고 (그들의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다. AI의 사고를 진정한 사고라고 인정해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인공지능이 어딘가에 계속 남아있다면 모든 글은 무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통기한이 무한히 연장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AI 독자가 인간이 남긴 글을 읽어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지만, 지구에 남은 AI가 멸종된 인간의 글을 읽어나가는 행위는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글은 죽지는 않을지언정 끝없이 상해버릴 것이다.


이렇듯 글은 누군가가 읽어주었을 때 가치를 얻는다. 인간 독자든, AI 독자든 중요한 것은 '독자의 존재성'이다. 모든 시작은 독자에서 기인한다. 글의 내용에 따른 가치의 높낮이는 그다음 문제다. 여기서 독자란 글쓴이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글은 적어도 글쓴이 자신이 봐주기 마련이고, 여기서 일기의 가치가 피어나기 때문이다. 독자가 있는 한 유통기한은 끊임없이 연장된다.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은 그런 면에서 많은 글들의 냉동고가 아닐까.


어떻게 하면 뻔하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글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산문에 운문을 녹여낼 수 있을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여지는 글’을 서툴게 적어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잘 깎여진 글들을 써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브런치의 모든 인간 작가님들과 모든 인간 독자님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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