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halo Oct 13. 2021

둘째 날 그리고 셋째 날.

반가이 환영하던 땅, 네덜란드

A said : 

 

6/23 Rotterdam PM 22 : 12 

 

 암스테르담에서 ‘자유’ 로운 네덜란드를 몸소 겪었다면 막 시작한 주행길에서는 말로만 듣던 네덜란드의 이런저런 풍경들을 실제 두 눈으로 줄곧 확인하게 된다. 어릴 적 만화가이면서도 교수이기도 한 어떤 저자의 ‘먼 나라~’로 제목이 시작되는, 당시 ‘유럽 지침서’ 정도로 대우받던 만화책이 있었다. 시리즈 6권 중 첫 번째 네덜란드 편에서 한 칸 한 칸 읽을 수 있던 장면들이 ‘자 봐, 진짜지?’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풍경은 책 내용 그대로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있을까 라고 의심하던 운하들이 정말 그 정도까지 곳곳에 있고, 목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돌아봐도 사방팔방 둔덕 하나 없다. 풍차는 이곳저곳에 우뚝 서 있고 빽빽한 온실들 안에는 온통 튤립이니 각양각색 꽃들로 가득하다. 거리에 있는 집들의 모습 역시 눈길을 끈다. 다양한 모습들의 집이지만 하나같이 유리로 된 큰 창문으로 집안을 속속들이 볼 수 있다. (이방인들이나 그 안을 멍하니 쳐다보긴 한다.) 더 재미있는 건 장장 수십 km를 지나면서 보았던 하나같이 정돈되고 깔끔한 집들의 상태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벌이라도 받는 것처럼 일말의 여지가 없다. 전 날부터 봤던 이 곳의 ‘자유’가 어떤 자신감 혹은 어떤 생각에서 나왔는지 살짝 눈치를 챌 듯하다.

 첫 주행 길에 나선 두 젊은이들은 초입부터 관록의 선배를 만난다. 잠깐 쉴 겸 멈춘 주유소에서 백발이 성성한 유랑객을 만난다. 얼굴은 온통 흰색의 수염과 머리카락으로 뒤덮여 있고 주인공의 나이보단 훨씬 젊어 보이는 모자, 헐렁한 셔츠 그리고 밀리터리 풍의 짧은 바지를 입고 있다. 시작부터 철저히 대비한다고 나름 중무장한 누군가가 괜히 머쓱해진다. 왠지 낭만에 있어서 한 수 졌다는 생각에 살짝 실망스러워지기도 한다. (이 생각은 정말 철없고 부질없는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는다) 막 걸음마를 뗀 후배들과는 달리 선배의 여정은 이제 끝마쳐가는 중이다. 스페인에서 여정을 시작해 유럽 대륙을 종단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란다. 프랑스의 어디는 길이 엉망이니 조심해라 같은 현실적인 조언들을 듣는다. 고행 길을 수두룩하게 겪었을 것만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항상 enjoy라는 말이 붙어있다. 새삼 그 길을 모두 거쳐왔다는 할아버지가 참 커 보인다. 잠깐의 조우를 뒤로 하고 손을 흔들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지는 주행길 에서의 첫 인연은 그렇게 멀어진다. ‘그래, 백발의 노인도 저렇게 왔는데…’ 하는 괜한 호기, 길에서 처음 만난 ‘동료’ 에게서 받은 격려와 함께 첫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네덜란드에서 페달을 밟는 동안은 줄곧 항상 시야 어딘가 한 켠에 운하가 있다. 사람 몸속의 어디든 핏줄이 있는 것처럼 운하 역시 이 땅 어디든 곳곳에 퍼져 있다. 그러다 보니 한창 바캉스 철 이기도 한 시기와 운하라는 이 나라만의 특수한 환경이 합쳐진 재미있는 그네들의 휴가 광경을 볼 수 있다. 운하에 보트를 띄워 그 위에서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독서를 하며 휴가를 즐기는 가족이나 혹은 커플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답답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직진만 하는 보트 위에서 지내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 그냥 땅 위에서 보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라는 배배 꼬인 의문이 꼬리를 물기도 했지만 그들의 모습은 그 이상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일 수 없다. 운하 옆으로 힘들게 페달을 밟고 있는 자전거들에게 손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지친 다리를 굴리는 것도 꽤 재미있는 경험이다.

 숙소로 가는 길, 건물의 커다란 창문에 익숙한 국기가 걸려있다.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있던 건물 안에서는 시끌벅적 한 바탕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벽 한 면을 꽉 채우는 유리창 속에는 하얀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한가득이다. 아이들은 열심히 소리를 지르면서 팔이며 다리며 온몸을 내지르고 있고 부모님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이역만리 큰 도시도 아닌 이 곳에서 태권도를 본 것도 신선했지만 또 늘 보던 동네 체육관과는 다른 방식으로 태권도와 함께하는 그네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P.S.1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손에는 콜라가 들려 있었다. 살고 있던 땅에서는 콜라와 노인은 잘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라고 흔히들 생각하던 터라 그 모습이 참 신선했다. 그 모습 때문이었을까?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던 콜라를 이번 여정 동안은 입에 달고 살게 된다. 갈증도 해소되고 땀을 많이 흘린 몸의 당을 보충하는데 콜라 만한 것이 없다. 여정 가운데 가끔 마시는 콜라는 하늘이 주신 한 줄기 빛이요 생명수였다.

P.S.2 가는 도중 물을 다 마셔버려 곤란하게 된 상황. 주택가에 들어선 터라 살 수 있는 상점들도 잘 보이지 않고 더군다나 주말이라 보이는 족족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침 집 앞에서 놀고 있는 꼬마 숙녀들이 보여 물을 좀 얻을 수 있을까 영어로 물었다. 그녀는 고민도 하지 않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괜히 서운한 마음에 네덜란드에는 영어 조기 교육이 아직 자리잡지 않았구나 하고 지레짐작해 본다.... 


P.S.3 처음 자전거로 이동해 보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가장 크게 다가왔던 생각은 이거 장난 아니겠구나. 첫날의 일정이라 달린 거리도 적당했고 길도 너무나 평탄했지만 자전거와 평소에 가깝지 않았던 누군가는 막상 실제로 페달을 밟아보니 만만치 않았다. 어릴 적 친구들과 신나게 괴성을 지르며 타던 안장 위와는 느낌이 다르다. 출발할 때의 마음과는 달리 발을 디딘 순간 어쨌든 이 자전거에 한 몸 뉘어 다음 목적지까지 닿아야 한다는 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혹해진다. 처음 겪어보는 눈 앞의 여러 가지 풍경들은 정말 흥미롭고 기대의 연속이었지만 땀이 범벅이 된 채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는 이 힘겨운 페달질을 앞으로 수십 일을 더해야 하는구나, 그리고 이 작은 페달질로 과연 지도 위로 보이던 그 기나긴 길을 갈 수 있을까, 걱정이 겹치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그런 막연한 걱정을 지운 것 또한 다른 종류의 ‘걱정’이다. 막상 여정을 시작했지만 당장 내일 혹은 그 다음 날의 경로도 확실하지 않고 머물 곳도 확실치 않던 대책 없는 두 부랑자는 정보를 얻기 위해 거리를 헤맸다.  


 숙소의 여건이 변변치 않아 문을 닫은 길거리의 상점 앞을 서성이며 인터넷이 연결되는 장소들을 헤매다 보니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걱정들은 막상 취급을 받지 못한다. 내일 어느 길로 갈지, 어디서 잠을 청할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골몰하다 보니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배부른 걱정들은 금방 뒤켠으로 밀리고 만다.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크나큰 고민도 해결할 수 있어! 같이 느낌표가 여럿 붙어있는 깊은 교훈이 담긴 성공담이라고 말하기에는 멋진 소득이 없어 민망하다. 그저 문제 위에 또 겹쳐가는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못하면 앞날이 없는 그런 골치들을 얼렁뚱땅 해결하다 보면 어쨌든 여정은 계속 이어진다. ‘문제’들로 ‘문제’를 해치워 나가는 이런 해결 방법은 언제 어디서든 꽤나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T said :  

 

DAY 1 


 솔직하다. 


 평지만 가득한 네덜란드에선 다운힐에서 느끼는 불로소득의 느낌도, 

 바람 한 점 없는 네덜란드에선 역풍이 주는 억울함도 없었다. 


 내가 페달을 굴린 만큼 자전거는 정직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솔직한 건 내가 실은 짐의 무게다. 


멀티탭, 헤어 에센스, 블루투스 스피커 나중에 써야지,  

미래의 편의를 위한 모든 게 지금의 고통이 됐다. 


어제도 짐을 한번 오늘도 짐을 한번 줄인다. 

자전거 타고 몇 주 여행하는데 내게 뭐 그렇게 많은 짐이 필요할까. 


이래서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외쳤나 보다. 

미천한 중생에게 아직도 버리지 못한 중요한 물건이 너무 많다.

A said : 

 

6.25 Antwerpen PM 23 : 43 

  

  며칠 달리지 않았는데 벌써 국경 하나를 넘게 된다. 처음으로 자전거 안장 위에서 국경을 건넌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한다. 이 곳 저 곳 다녀보면서 다른 땅 위의 국경을 넘어본 경험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북녘의 친절하지 않은 동포들 덕에 비행기나 혹은 바다를 통하지 않으면 다른 말을 쓰는 동네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래도록 차를 타면 꼭 멀미를 한다고 타박을 받는 촌놈인지라 이런 사소한 사실에도 누군가에게 촌놈 소리 들을까 슬쩍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동차나 기차 안에서가 아닌 두 발 가까이서 경계를 지난다니 더욱 들뜬다.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지도 위에 여기저기 그어진 선 위를 두 발로 넘나 든다는 사실은 처음이 아니어도 마냥 신기하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무참히 깨진다. 아무리 그래도 나라와 나라 사이인데 아무 표시가 없다. 넘어간지도 몰랐는데 지금 서 있는 땅은 불과 몇 분전에 있는 땅과는 다른 나라다. 살고 있는 땅에서는 도시 사이가 아니라 구와 구 사이에도 ‘어서 오세요. ~구에’ 하는 인사가 있는데. 괜히 김이 샌다. 

 

 다른 동네라고 건너오기 했지만 길 위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은 여태껏 보던 풍경과 비슷한 느낌이다. 굳이 구분 짓자면 조금 더 오밀조밀하달까. 자전거 천국이라 불리던 네덜란드에 비해 도로가 자전거와 조금은 덜 친근하다는 사실을 덜컹거리는 엉덩이는 느낄 수 있었지만 여전히 평탄하고 여유롭다. 벨기에구나 싶도록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광경은 집집마다 걸어놓은 국기다. 요즘 유럽에서 한창 화제인 축구 국가대항전을 위해 한참 자국 팀의 선전을 자축하고 있다.  

 달리는 도중 허기도 해결할 겸 휴식을 취한다고 길가의 자그마한 버스 정류장에 자리를 잡는다. 좀 쉬면서 기력을 찾고는 다시 열심히 페달을 굴리던 중에 거니는 행인들을 마주치며 마을의 모습이 드러난다. 오늘 달릴 거리가 100km가 넘음을 알고 있었던 터라 이제야 다 왔구나 하고 안도의 숨소리를 낸다. 안도감이 찾아온 것도 잠시 무언가 허전하다. 항상 목에 대롱거리던 카드 지갑이 없다. 워낙 덤벙대는 성격 덕택에 스스로도 심히 걱정되어 일반적인 지갑 대신 평소 ‘넌 항상 목에 다 채워줘야 되지’라고 꾸짖으시던 어머니의 평소 훈계를 성실히 따라 목걸이 형태로 된 지갑을 들고 가며 나름 대책을 세운다고 세웠는데 이마저도 위대한 본능을 막을 수가 없다. 아까 잠시 머물렀던 정류장에 떨어뜨렸구나 하고 지도를 보니 다시 그 곳까지의 거리는 15km 남짓. 평소 달리던 자전거의 평균 속력이 18~20km/h 내외라고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는 데만 4~50분. 목적지 가까이까지 왔는데 차마 T형에게는 죄스러워 같이 가자는 소리 대신 길에 잠시 기다리고 있도록 한다. 대신 자전거에 딸린 짐을 다 맡기고 조금이라도 가벼워진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여태껏 이렇게 한 가지 생각만을 간절하게 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제발’이라는 단어를 마음속 수십 번 외치며 달린다.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30분 조금 더 걸렸다. 간절하긴 했나 보다. 하지만 그 곳에도 간절함의 대상은 없다. 야속한 마음에 정류장 근처의 흙길을 손으로 파보기도 해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허탈한 마음에 멍해진다. 다시 앉아 기억을 되돌려보니 국경 근처를 지나면서 화장실에 들른 일이 기억난다. 그곳에서 세수를 한다고 목걸이를 잠시 벗어뒀던 기억도 난다. 몸속에서 스르르 소리가 들리며 무언가 빠져나가는 듯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온 길을 되돌아 가려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오기 시작한다. 절망스러운 하루에 꼭 맞는 완벽한 연출이다. T형이 있는 그곳까지 다시 달려가며 미친 사람처럼 몇 번씩이나 허공에다 대고 소리를 지른다. 몸의 기운이 다 빠지지 않았을까 싶을 때까지 외친다.


 대형 사고 덕에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늦게 오늘 밤 머물 곳에 도착한다. 우리를 반긴 첫 이국 땅의 친구는 무례하게도 시간 약속을 어긴 두 식객을 전혀 거리낌 없이 반긴다. Frank는 나이 지긋하고, 자신이 오래도록 해온 생업을 여전히 좋아하고, 환경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모범적인 유럽 사람이다. 벨기에 사람이 아닌 왜 유럽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그 단어가 잘 어울린다. 그 나이 대의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는 듯 젊은이들과 계속 소통하려 노력하고 가끔씩 피식 웃게 만드는 농담을 간간히 던지는 Frank는 처음 이방인의 집에 머물게 되어 살짝은 긴장하고 있던 민폐 손님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 그리고 벽에 걸려있던 그림들에 대해도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동네 벨기에의 맥주나 치즈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으며 손님들에게도 그 찬사를 꼭 듣겠다고 결심한 듯 직접 경험하도록 대접해 준다. 고된 노동 후에 단비 같던 맥주를 들이키며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오랜 시간에 비해 오고 간 이야기는 일상적이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뿐이다. 한국과 벨기에라는 평소에는 서로 생각해 보지 않던 사소한 상대이고 조합이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던 일상들의 이야기도 상대방에게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여행을 하고 낯선 곳으로의 여정을 동경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나의 일상이 누군가의 특별한 일이 되고 누군가의 일상이 나의 특별한 일이 되는 이런 작용 때문이 아닐까.


P.S.1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여정이 절대 이어지지 않았을 정도로 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손가락으로 꼽아도 두 손을 넘어갈 정도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도움을 준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 커뮤니티가 바로 Warmshower이다. 이런 커뮤니티도 있구나 하고 여전히 경외심 (경외심이라는 단어에 어느 정도 포함된 것만 같은 두려움 비슷한 감정 역시 해당된다)까지 느껴진다. 이름 그대로 몸과 마음이 고달픈 여행자들에게 ‘Warmshower’를 제공해주는 자전거 여행자들만의 커뮤니티이다. 자전거 여행 중 머무를 도시에 살고 있는 집주인들에게 미리 연락을 취해 숙식을 제공받는다. 물론 집주인들은 자신이 여행객들을 맞이하겠다고 등록을 한 후 여러 가지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게시한다. 여행객들은 자신의 일정과 맞추어 성향 혹은 환경 등 제반 조건이 알맞은 집주인과 연락을 취한 후 거처를 정하게 된다. 누구나 집주인(Host)도 될 수 있고 자전거 여행자(Guest)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자는 모두가 자전거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희로애락을 공유할 수 있는 한 가족 혹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동질감 아래 생겨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숙식을 제공받는 데 돈 한 푼 들지 않는 이 신기한 작용은 반도(半島) 안에 고립되어 있어 먼 거리를 오랫동안 여행을 하기 쉽지 않은 우리네 정서와는 많이 낯설다. 한없이 나쁘게 생각해서 돈 없고 배고픈 자전거 여행자들이 나쁜 맘을 먹고 집주인을 해친다고 상상하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지만 자전거 여행자들 사이의 유대감은 그 정도 불안감을 뛰어넘은 듯하다. 처음에는 대접을 받으면서도 왜?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지만 점점 그들 중 한 명이 된다. 참 신기하고도 경이로운 작용이다. 


P.S.2 Frank는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자연보호, 환경파괴 같은 구호들은 낯설지 않은 문제 제기들이지만 막상 일상 속에서 몸소 느끼기에는 조금 거창하다고 할까, 나 한 명의 행동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큰 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Eco 이야기는 그런 거창함 대신 바자회나, 사용한 물건들을 다시 서로 돌려쓰는 모임 같이 자신이 직접 나설 수 있는 일들에서 시작한다. 나중에 연락했을 때도 여전히 주변의 그런 소소한 모임에 힘쓰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자전거에 대한 관심 역시 Eco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했다고 했었다. 세계를 아우르는 그 대단한 무엇이든 동네 반상회의 소소한 입방아든 규모가 어떤지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무언가로부터 시작하는 행동 역시 흔히 영웅들의 전유물 같은, 화려하게 포장되는 ‘용기’라는 것과 나란히 할 수 있는 또 다른 모습의 ‘용기’이지 않을까.


T said :  


DAY 2 


 내가 지금까지 태어나서 했던 모든 일중에 

이번 자전거 여행만큼 

모두의 예외 없는 전폭적 지지와 응원을 받아 본 일이 있었나?   

매거진의 이전글 첫째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