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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3. 2021

다섯째 날.

떡 하니 단단히 버티던 땅, 프랑스

A said : 


6.27 Valencienne PM 21: 41 


 벌써 세 번째 나라다. 이미 한 번 겪었던 실망에 비추어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지만, 역시나 스르륵 프랑스로 들어간다. 바로 옆에 붙어살고 심지어 사용하는 말도 비슷하면서 그렇게까지 각자 자신의 국가를 자랑스러워하고 그 애정을 나타내는지 감탄스럽다. 지나가는 집마다 국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볼 때면 국기에 대한 애정이 신기하고 대단할 뿐이다. 그 국기가 바뀔 때마다 집의 모습들도 조금씩 바뀐다. 큰 도시들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자전거로 이동을 하다 보니 도심보다는 시골길을 더 많이 마주치게 된다. 살고 있던 곳에서는 마치 제복을 입은 듯 비슷한 모양들의 아파트들이 죽 늘어서 있는 모습이 익숙했지만 여태껏 페달 위에서의 풍경은 유치원에서 어린 친구들이 서 있는 삐뚤빼뚤한 줄처럼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주택들이 길가에 올망졸망 서있는 모습이다. 네덜란드의 집들은 단추를 다 풀어헤친 듯 속이 다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과 잘 정돈된 울타리, 잔디가 기억난다면 벨기에에서는 전자보다 조금 더 작고 오밀조밀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다른 프랑스의 집들은 앞의 둘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든 어른 같달까. 조금 더 오래되어 보이고 푸근하지만 구석구석 애정 어린 손길이 느껴진다.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외관의 모습이지만 조금씩 느껴지는 다름이 신기하다.  

 프랑스다. 유럽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La grande nation’. 하루하루 주행의 난이도가 경신되던 중, 이 곳의 길 역시 신기록 경신에 참가한다. 우선은 쭉 운하를 끼고 가기만 하면 좋은 길로 계속 갈 수 있을 거라는 Diederik의 충고에 충실한다. 기분 좋게 잔잔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걱정 없이 가던 중 한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저질스러운 몸 상태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평탄하던 길은 차츰 자갈길로 바뀌기 시작하고 운하도 잘 안 보이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콕콕 쑤시는 길 위의 빼곡한 자갈이 원망스럽다. 요 며칠 새 온 비 덕에 길에는 온통 물웅덩이들이다. 마침 지도를 보니 프랑스에 입성할 때쯤이다. 정글을 연상시키는 험난한 길은 ‘Bienvenue en France!’라고 외치며 두 여행자를 프랑스로 밀어 넣는다. 비와 땀으로 한참 젖은 몸을 이끌고 가다가도 또 다시 해가 쨍쨍하다. 첫인사를 건네던 프랑스는 사람을 적셨다 말렸다 무척이나 애를 먹인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Valencienne에서 만난 Gerad 할아버지는 고생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여느 시궁창에도 지지 않을 악취와 온통 진흙이 여기저기 묻어 있는 빈곤한 몰골을 한 손자들을 반긴다. 눈앞에 계속 침대가 어른거리고 얼른 철푸덕 쓰러지려고만 하던 몸뚱이가 막 도착해서 보이는 집과 정원을 보고는 발걸음을 뗄 줄 모른다. 다니면서 밖에서만 보던 동화 같은 집들이 안에 들어오면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으리으리하게 넓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장식들과 계단,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 그리고 꽃과는 거리가 먼 누군가의 입에서도 감탄사가 나올 만한 예쁜 정원. 노부부가 만들어 놓은 그들 만의 천국에 발길을 들여놓은 느낌이다.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정갈한 상차림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다. 와인이니 커피니 한 모금씩 머금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집 한 켠에 가득한 음악 CD를 보고는 여쭤보니 두 분 젊으실 적 모두 성악을 업으로 하시었다고 한다. 독립한 자녀들도 영향을 받았는지 한 아들은 같은 업을 그리고 다른 한 아들은 희극인이라고 한다. CD를 보면서 이름이나 들어본 몇 장을 보고 아는 체를 하니 해맑은 표정으로 보여주시며 설명을 해 주신다. 누가 봐도 눈에 띄도록 좋아하는구나 싶은 일을 업으로 해 오는데 그에 따르는 행복이나 즐거움은 당연한 일이다. 덥수룩한 흰 수염과 신기하게 어울리는 구김살 없는 표정으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 주시는 얼굴과 몸에서 소싯적 부르셨을 곡들이 흘러 보이는 듯하다. 한눈에 척 보인다. 영어 선생님을 하셨던 적도 있다는 할머니는 아이 타이르듯 할아버지가 옆에서 하시는 얘기들에 더해 조근조근 첨언을 한다. 영어도 곧잘 하시는 멋쟁이 할머니는 열심히 설명하시면서도 안 그래도 배가 가득 차 있는 손님들에게 여느 우리네 할머니들이 손자들을 챙기듯 이것저것 계속 권한다. 가끔 티격태격하기도 하며 옛이야기들을 추억하는 두 분의 모습은 지지배배 우는 한 쌍의 금슬 좋은 종달새들을 닮아있다.

 이전에도 여행객들이나 이런저런 손님들을 많이 맞아 보셨다는 두 분께서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멋진 기념품을 하나 가지고 계신다. 커다란 흰 천에 방문객들이 반가움의 인사를 한 마디씩 쓰면 그 글씨나 혹은 그림 모양 그대로 할머니가 실로 박음질을 한 것이다. 세계 이 곳 저곳의 글자와 그림들이 형형색색의 실로 박음질되어 흰 천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따뜻한 환대와 함께 했을 그들의 행복에 공감하며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온다. 한글이 보이지 않아 느껴지는 괜한 안도감(?)에 T형과 영광스럽게도 한글로 된 첫 발자국 하나씩을 남긴다.

P.S.1 이른 아침에 문을 연 상점이 보이지 않아 아침을 먹지 못하고 Brussel을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배가 고파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Halle이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간다. 길바닥에는 온통 돌로 된 타일이 깔려있어 턱을 덜덜 거리며 끼니를 때울 만한 곳을 찾는다. 월요일 그리고 그리 이르지 않은 아침 10시쯤이니 문을 연 상점이 하나 있겠지 하고 찾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침내 대형 마트처럼 보이는 건물을 발견한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보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다. 흔히 말하는 ‘월요병’에 시달릴 직원들을 배려한 것인지 월요일의 영업시간은 오후부터이다. 좌절감에 빠져 배려심이 과한 사장에게 들리지도 않을 불평을 터뜨린다. 직원이었으면 정말 감사했을 배려가 배고픈 여행객에게는 가혹한 고문이 되어 돌아온다.  


P.S.2 영어가 곧잘 통하던 벨기에와 네덜란드와는 달리 세 번째 나라는 자국어가 아니면 소통하기가 더 힘들다. 부족하나마 조금 할 줄 아는 불어로 겨우겨우 다니곤 했다. 식사를 하며 손님이 생김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불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가 계속 불어로 이야기하도록 독려하신다. 용기를 얻어 쭈뼛쭈뼛 더듬거리면 틀릴 때마다 옆에서 조용히 할머니가 틀린 부분을 알려주신다. 처음엔 그렇군 하다가도 그 빈도가 잦아지니 학교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는 기분이다. 괜히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할머니 눈치를 보게 된다.. 

P.S.3 가끔 운하를 따라가다 보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을 것만 같은 감탄스러운 풍경도 자주 마주치는 만큼, 공포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공장들이 가득한 지대들도 곧잘 보인다. 아무래도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운하로 이동하기 좋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 번씩 마주치는 그 공장들을 지날 때면 사람이 내는 소리보다는 기계가 쿵쾅거리는 소리 혹은 쇳소리만이 가득하다. 을씨년스럽게 인적이 없는 그곳을 지날 때면 아무리 젊디 젊은 두 핏덩이라도 흐르던 땀도 식어버리는 느낌에 괜스레 페달질이 빨라진다. 그런 곳을 지날수록 점점 둘은 말이 없어지고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지름길을 찾아 헤맨다. 그 와중에 달리던 길이 아닌, 언덕 아래의 길이 우리가 달려야 할 그 길임을 뒤늦게 깨우친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갔겠지만 몸과 마음이 지치고 지쳐 문드러져 버린 둘은 개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잡초가 무성하고 꽤 높아 보이는 언덕을 한 쪽 어깨에 자전거를 걸치고 그대로 질질 미끄러져 내려간다. 둘 다 어떻게든 내려와 보니 그 언덕에 누구도 지나갈 것 같지 않은 근사한 길이 생겨 있다.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전리품을 남긴 채 다시 길을 떠난다. 

T said :

 

DAY 4 


모든 상점이 일요일에 닫는다. 

월요병 때문일까. 까르푸 조차 월요일엔 오후에 문을 연다. 

근데 정원 용품 인테리어 가게는 일요일에 연다. 

이게 그들이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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