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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3. 2021

여섯째 날.

떡 하니 단단히 버티던 땅, 프랑스

A said : 

 

6.28 Saint-Quentin PM 22 : 17 


 처마 밑 다락방에서 푹 자고 일어나니 개운하다. 뙤약볕에 힘들게 자전거를 타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 나서야 하는데 며칠 탔다고 알이 배긴 다리 때문인지 너무 편한 집 때문인지 나가지 않으려 계속 밍기적 댄다. 길에서 먹으려고 간단한 요기할 거리를 좀 산다. 짐이 너무 무거워질까 간단한 종류로 고르다 보니 옆에서 할머니는 그런 걸로 되겠냐고 계속 타박을 하신다. 할아버지께선 도심을 벗어날 때까지 배웅을 하시겠다고 헬멧과 자전거를 준비하신다. 산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자전거를 보여주시며 흐뭇해하시는 모습이 귀여우시다. 안 그래도 시행착오를 꽤 겪어온 두 길치들을 이리저리 능숙하게 골목길을 누비며 마을의 경계까지 안내해 주신다. 어깨를 툭툭 치며 작별의 인사를 하고 다시 돌아가시던 뒷모습에 괜스레 눈시울이 머쓱해진다.  


 이 땅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점점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여태껏 작은 언덕 하나 없이 편하게 달리다 경사를 마주하다 보니 괜히 애꿎은 자전거 손잡이가 괴로워한다. 다리에 집중해야 할 힘이 쓸데없이 손에만 꽉 들어가 찌릿찌릿 저릴 정도다. 기어를 잘 다룰 줄 모르는 초짜인지라 적당히 조절하면서 쉽게 올라가지 못하고, 전혀 필요 없는 힘을 힘껏 주고 얼굴 붉힌 채 페달을 밟아가며 겨우겨우 올라간다. 경험 일천한 스스로의 요령 없는 행동인지는 꿈에도 모르면서 마음속에서 다지는 의지는 오지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탐험가의 그것이다. 그렇게 힘주어서 기어코 다다른 정점에서 부터는 생각 없이 온몸에 힘을 빼고 두 바퀴가 이끄는 대로 하강한다. 눈이 부신 널 따른 황금색 들판 옆을 달리다 보면 앉아 있는 안장 위가 천사들이 노니는 하늘 위 그곳인지 아직 갈 길이 수십km 남은 프랑스 어느 곳 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오늘 만난 Francois 아저씨와 Catherine 아주머니는 만나기 전부터 열려있던 분들이다. 만나기 전 연락을 나누면서 이것저것 물어볼 때 답변의 서두에는 항상 The door is open(문은 열려 있어)라고 하시던 두 분은 정말 집 대문도 활짝 열어놓고 계신다. 얼룩덜룩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식객을 맞이한 아저씨께서 묵을 방이니 주방이니 간단히 보여주신다. 본인이 직접 집을 리모델링 중이라 여기저기 아직 한창 진행 중인 공사 중인 흔적이 있다고 멋쩍어하신다. 자재들이 널려 있고 뜯어고치던 흔적들이 보이는 집안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여느 공사 현장처럼 어지러운 단면과 옛 추억들이 담겨있는 정겨운 물건들이 곳곳에 놓여 있는 아늑한 다른 단면의 공존이 오묘하다. 

 늘어져 있다가 나가본 넓은 마당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집에 들어오면서도 저것들은 다 뭘까 생각했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니 더 마음이 심란해진다. 목재부터 시작해서 철골이니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웬만한 고물상 저리 가라 할 만큼 정말 많은 무언가 들이 쌓여 있다. 그것들 틈새에서 아저씨는 작업대를 하나 차려 놓고 무언가에 무척 집중하고 계신다. 하고 계신 일이 무언 지는 잘 모르지만 뚝딱뚝딱 만들고 있다. 신기해하며 다가오는 손님들을 본 할아버지는 자전거는 괜찮나 하고 물어보신다. 믿는 건 저질 체력 하나뿐 무식하게 달려오면서 크게 문제는 없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지만, 자전거들을 본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신다. 헛웃음을 지으시며 ‘리스본까지 간다고?’라고 질문인 듯 아닌 듯 혼잣말을 하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저씨 눈에는 불쌍한 두 자전거에 손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나 보다. 특히 가방 하나를 안장 뒤에 대롱대롱 힘겹게 달고 있던 빨간 자전거를 볼 때는 표정이 더 심각해지신다. 여기저기 만져보면서 때가 끼고 한없이 부실해진 부품들을 위험한 자전거 주인 얼굴 앞에 들어 보이며 또다시 헛웃음을 지으신다. 그리고 하나하나 뚝딱뚝딱 고치신다. 주인은 돕는다고 도우려고 옆에 쪼그려 앉아 조수 역할을 자처하지만 도움은커녕 방해가 되었나 보다. 동네 산책이나 한 바퀴 하고 오라신다. 저지른 과오를 남에게 떠맡기기 죄스러워하는 주인을 되려 자꾸 밀어내신다. 힘들어 보이는 일임에도 휘파람을 불며 즐겁게(착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손을 움직이시는 모습에 겨우 발걸음을 뗀다.

 집 앞에 조그마한 놀이터와 공터가 보인다. 푸른 잔디가 무성한 그곳에는 동네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작은 마을에서 흔치 않던 외지인이 신기했는지 말을 건다. 얘기를 하다 신났는지 자신들이 자주 가는 축구장이 있다고 그곳으로 데리고 간다. 데리고 간 곳은 아스팔트 바닥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가끔 광고에서 근육질의 형들이 신나게 축구나 농구를 하던 길거리 축구장이다. 문이 다 열려 있지 않아 철조망을 넘어가던 꼬마들의 모습이 영락없는 동네 개구쟁이들이다. T형이 10살은 족히 넘게 차이 나는 나이를 잠시 내려두고 같이 어울린다.(다른 누군가는 힘들다는 핑계로 구석에서 카메라 셔터나 눌러 댄다.) 가끔 힘겨워 보이지만 곧잘 뛰어다닌다. 누구든 골을 넣을 때마다 자축하는 모습이 귀엽다. 

 집으로 돌아오니 여전히 아저씨는 자전거에 매달려 계신다. 그 모습을 보고 놀다 오기나 한 부끄러운 자전거 주인이 달려가 괜히 옆에 붙어 있는다. 잘 모르는 눈으로 봐도 달라진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너덜거리던 기어나 바큇살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고, 느슨해진 나사들은 확실히 조여져 있다. 안장에 대롱거리는 가방과 직접 짊어지고 다니는 가방으로는 부족하게 보였는지 뒷바퀴가 있는 부분에 거치대를 달기로 한다. 허리에 지고 다니는 가방이 힘들 때는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던 터라 반색한다. 거치대로 쓸 만한 쇠붙이를 찾기 위해 그 심란해 보이는 잡동사니 더미를 뒤진다. 쓸 만한 쇠붙이를 찾아선 자전거에 맞춰 용접하고 다듬는다. 자전거에 맞을까 싶던 쇠 막대는 어느새 마치 자전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거기 있었던 듯 어색하지 않다. 새삼 가재 눈으로 쳐다만 보던 잡동사니 더미가 멋져 보인다. 계속 손보던 와중에 마을에 나갔다 돌아온 아주머니께서 저녁을 먹으라고 재촉하신다. 정신 못 차린 자전거 주인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다 ‘저녁’이란 소리에 귀가 번쩍해 냉큼 달려가지만, 오히려 주인보다 아저씨가 다 끝내지 못한 사실이 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한참 밖을 맴돌다 주방으로 향한다. 


보통 시골집에 가면 아궁이나 처마 같이 오래된 풍경을 보면 정겨움을 느끼는 것처럼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의 주방을 보면 비슷한 기분을 느낄 듯하다. 연식이 꽤나 되어 보이는 주방은 포근하게 저녁 자리를 마련해준다. 굶주림에 허겁지겁 포크를 놀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다. 여태껏 머물렀던 집들에서는 집주인들이 여행이나 혹은 손님들에 대해 물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여기 와서는 아저씨나 아주머니나 별 질문이나 이야기가 없으시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마을에 다녀오신 이야기, 먹고 있는 접시 위의 모든 식재료를 조달해준다는 농장 일이 어떻다는 이야기 들을 툭툭 내뱉으신다. 그나마 함께 식사한 옆집 이웃이라고 오신 분이 허기짐에 묵묵히 음식들을 입에 쑤셔 넣던 두 이방인에게 질문을 할 때나 가끔 고개를 돌아보신다. 객(客)이라고 스스로 잘 느끼지 못한다. 부모 곁을 떠난 장성한 자식들이 남기고 간 빈자리를 잠깐이나마 빌려 두 분이 평소 지내던 일상에 그저 살짝 끼어들어 와 있다.

 아저씨가 자전거를 마지막으로 손 볼 테니 먼저 들어가 자라고 하신다.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그 정도는 파렴치한에게도 무리인지라 손사래를 치지만 끝끝내 도움일지 방해 일지 모를 자전거 주인을 방으로 밀어내신다. 내일 아침부터 달리려면 푹 자야 된다고 하시면서. 뭐든 자신이 만들고 고치느라 집까지 스스로 고치신다고, 집이 난장판이라고 푸념하시던 아주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감사한 마음들이 피곤하고 노곤한 몸뚱이에 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방으로 돌아온다. 내내 친절하고 감사했던 친구들 덕에 하루하루 즐겁게 보낸 나날들이었지만 오늘은 온전히 재충전한다는 느낌이다. 자전거도 주인도 다시 힘을 되찾는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맥가이버 아저씨의 휘파람 소리가 저 멀리 들린다. 얼른 자야겠다.

P.S1. Saint-Quentin으로 가는 길에 공식적인 첫 펑크를 경험한다. 앞서 가던 T형의 자전거가 한순간 푹 가라앉는다. 다행히 타이어 안의 튜브가 터진 것이라 길거리에 주저앉아 손을 본다. 이리저리 낑낑대면서 겨우 구멍을 메운다. 시골길이지만 가끔 무섭게 코앞으로 커다란 차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놀라기도 한다. 끝없는 지평선도 쳐다보고 딴짓도 하다 보니 주저앉아 있는 시간이 꽤 길어진다. 하지만 Francois 아저씨 집에 도착했을 때 한 번 더 튜브를 갈아주시는데 걸리는 시간은 15분도 되지 않았다.

 P.S.2. 달리다 잠깐 쉬기 위해 지나가는 작은 마을에 잠깐 멈춘다. 조그만 마을의 나름 중심에 있는 광장에 벤치가 있어 자리를 잡는다. 광장이라고 표시가 있긴 하지만 광(廣) 장이라 하기에는 머쓱한 크기다. 벤치에 앉아 간만에 맞는 햇빛을 받으며 주전부리를 씹고 있는데 옆의 길로 조그만 승합차 하나가 다가와 차를 세운다. 차에서 안경을 낀 민머리의 아저씨가 한 분 내리는데 눈이 마주쳐 간단히 눈인사를 나눈다. 다가와 여행객인지 물으며 이 곳까지 여행을 오는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며 선한 미소를 짓는다. 기분이 좋아져 아저씨가 들고 있는 짐을 보고 일을 하러 가느냐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이 maire(시장 혹은 면장, 읍장 등)이고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예쁘장한 작은 건물이 시청이란다. 적잖이 놀란 눈으로 작은 시골 마을의 면장이겠구나 싶어 말을 더 붙여보니 엄연히 꽤나 큰 규모의 도시를 관리하는 시장이다. 직책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모습에 놀라자 너털웃음을 지으며 되려 왜 그렇게 놀라냐고 묻는다. 어버버 하는 객을 두고 bon voyage라고 툭 던지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이들이 사용하는 ‘maire’라는 단어에는 시장(長)이라는 한글 단어가 대응하지만, 그 민머리의 ‘maire’ 아저씨에게는 누군가의 위에서 으쓱거릴 것만 같은 ‘장(長)’이라는 단어는 잘 맞지 않아 보인다. 


P.S.3. 아저씨 집 마당부터 곳곳에 널려있던 잡동사니의 대미는 창고 하나 가득히 있던 헌 자전거들이었다. 꽤나 큰 벽돌 창고 하나가 빼곡히 헌 자전거들로만 가득 채워 있었다. 무슨 연유로 모았을까 여쭤봤더니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에 기부하기 위해 모아둔 자전거란다. 열심히 모아서 보내려고 했지만 정부의 이런저런 규제와 잔소리로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신다. 아름다운 행동 혹은 존경받을 만한 행동들은 어디서든지 몇 가지 고난을 겪는 것이 당연한 통과 의례인 가보다. 방해하는 것(혹은 사람)들 항상 과연 그럴 자격이 있기나 할까 싶은 것(혹은 사람)인 사실도 신기하다.  

T said : 


DAY 5 


멋진 초원이 있었다. 찬희가 감탄했다. 내게는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다. 

스위스에서 본 초원에 비해 보잘 것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찬희가 자전거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할 수 없이 나도 자전거를 멈췄다. 

멈춰서 보니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나는 감탄했다. 

 ** 

최고의 배고픔과 싸웠다. 

덕분에 최고의 빵을 먹을 수 있었다

어제, 오늘 너무나 확실하고 강렬한 데자뷰를 경험했다. 

내게 이 여행이 엄청난 의미가 있거나, 

내가 미쳐가고 있단 의미다. 

긴장하면 지고 설레면 이긴다. 

생각이 행동으로, 행동이 습관으로, 습관이 성격으로, 성격은 운명이 된다. 

힘듦 보존의 법칙 

하루에 120킬로를 가든 40킬로를 가든 힘들다. 

특히 마지막 한 시간은 늘 죽을 맛이다 

구글 맵 자전거 길 찾기 기능이 고마웠(었)다. 

근데 네덜란드를 지나 벨기에, 프랑스로 내려오니, 

자전거 길은 차도 못 다니는 거지 같은 길을 의미한단 걸 알게 되었다. 

때문에 도로 상태가 안 좋은 자전거길 대신 차도로 우회하게 되었다. 

근데 언제부턴가 자전거길이 있어도 차도를 택하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목숨을 담보로 현재의 고통을 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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