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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3. 2021

일곱째 날.

떡 하니 단단히 버티던 땅, 프랑스

A said : 

 

6.29 Creil PM 23 : 32 


 갈 길이 녹록치 않아 일찍 일어난다고 일어났지만 아저씨는 주인들 보다 더 이른 아침에 일어나 여전히 자전거 바퀴를 붙잡고 계신다. 주인보다도 지칠 줄 모르는 자전거에 대한 집중에 혀를 내두른다. 떠날 준비를 하고 대문 앞에서 작별 인사를 나눈다. 휘파람을 불면서 자전거 옆에만 붙어 계신 모습만 보다 자전거가 아닌 아주머니 옆에서 밝게 웃는 모습이 낯설기까지 하다. 떠나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손 본 자전거가 이제 좀 안심이 된다는 듯 계속 어루만지시는 모습을 보면 아저씨께는 사람보다 자전거가 더 의미 있는 손님이지 않았을까 하는 괜한 질투도 해 본다. 하지만 안장 위에서 한결 편해진 몸가짐에 일면식도 없던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베풀 수 있을까, 놀라움과 고마움이 사무친다. 미련하게도 떠날 때가 되어서야 Francois 아저씨의 고생과 노력이 가장 가깝게 와 닿는다. 

 평소 저질렀던 수많은 악행들의 업보가 이제야 발현되는지 어째 이 대륙으로 와서 일주일이 지나가는데 구름 한 점 하나 없는 화창한 하늘을 본 기억이 없다. 맑은 하늘에 눈부신 풍경 속을 달리는 자전거 여행을 기대하며 왔건만 실상은 구름과 항상 붙어 다니는 밀월여행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고부터 다리가 말을 잘 들을 때 까지는 주위 풍경을 즐겁게 감상한다. 걸음보다는 빠르고 자동차나 기차보다는 느리게 적당한 세기의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상당히 괜찮다. 하지만 슬슬 저 아래부터 시작해서 허리까지 심지어 그냥 핸들 위에 걸쳐두기만 한 손까지 괜히 쑤시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때부터 몸뚱이는 무의식이 제어하기 시작하고 머릿속은 오만 딴생각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당장 느끼는 온갖 불평불만부터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들 혹은 쭉 생각해오던 고민들까지 끝이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머릿속의 작용들은 외부 환경에 상당히 의존적이다. 구름과의 밀월여행 중이던 요즘은 절로 그 작용들이 우중충한 하늘을 따라간다. 우울하고 쳐지는 작용도 있지만 꼭 해만 되지는 않는다. 마냥 지친 육체에 지배되어 먹고 마시고 자고 본능에 충실함으로 가득한 여정 중에서도 좀 더 이런저런 사색(이라고 할 것까지 무언가 실체가 있는지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도 할 수 있던 순간이랄까. 목 위의 부분이 존재하는 이유가 단지 모자를 걸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배가 아픈 듯 가끔 꾸르륵 소리를 내기도 하는 하늘이지만 그 또한 복잡한 머릿속을 한 번쯤 정리해볼 수 있게 해 준 동반자이다.

 T형이 올라타고 다니던 바퀴는 첫 펑크 이후 가끔 한 번씩 주저앉기 시작한다. 면역이 된 듯 끌탕을 치면서도 이제는 전보다는 조금 능숙해진 둘의 손놀림으로 금방 다시 일어서곤 한다. 짐이 무거워서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계속 달리다 밀밭의 골목길에서 또 한 번 주저앉는다. 살펴보니 이번엔 속의 튜브가 아닌 밖의 타이어에 문제가 생겼다. 타이어에 구멍이 난 채로 달리다 보면 그 구멍 속으로 돌이나 이물질이 들어가는 데 그 방해물들이 튜브를 터뜨린 듯하다. 튜브가 터지면 튜브만 메꾸고 계속 갈 수 있지만 타이어에 구멍이 나면 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목적지까지 한참 남았고 도저히 달릴 수 있는 자전거 상태가 아니다.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는 20여 km 남짓. 마침 멈춘 곳 옆 길가 주변에 주택 몇 채가 보여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무시무시한 개들이 짖는 소리뿐이다. 할 수 없이 자전거를 질질 끌면서 길을 나아가다 보니 웬걸 끝도 없는 벌판이다. 갈대 혹은 비슷한 줄기들로 가득하던 허허벌판에는 건물 한 채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 있는 자전거 상점까지 끌고 걸어가자니 족히 몇 시간은 걸릴 것이고 그럼 해가 저물기 전까지는 오늘 목적지까지 절대 도착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길가를 지나가는 차를 세워 동승을 부탁하기로 한다. 영화에서나 봤지 길가에서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기는 처음이기도 하고 자전거 두 대를 태우려면 트럭이나 꽤 크기가 있는 차가 필요한 상황인지라 쉽지 않다. 어정쩡한 미소와 함께 길가에 서서 두 팔을 허우적 댄 지 얼마나 되었을까. 크지 않은 밴 한 대가 우리 옆에 선다. 근처에서 철물점을 한다는 아저씨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함께 기꺼이 태워주신다. 가까운 마을의 자전거 가게를 알고 있다면서 황송하게도 직접 데려다 주시겠다고 말하실 땐 나도 모르게 안길 뻔했다. 마을까지 가는 길에 아저씨의 속사포 같은 불어를 듣고 대답하느라 귀에서는 피가 나올 듯했지만 마음 만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차창에서 너무나 빠르게 사라지는 들판의 갈대들을 바라보며 배은망덕하게도 뒤에 실어 놓은 느려 빠진 자전거를 원망한다. 참 허무하다.

하필이면 가장 힘든 길이 예정된 날 사고를 겪어 더욱 지친다. 길 옆으로 비웃는 듯 지나가는 기차가 그렇게 빨라 보일 수 없다. 타고 갈까 싶다가도 역을 찾는 일도 힘들어 얼른 가는 길을 재촉한다. 오늘도 역시 내내 함께 한 빗방울이 고단했던 하루의 대미를 장식한다. 다 왔다고 생각했을 때 마주친 비에 쫄딱 젖어서야 생쥐 두 마리를 구원할 Philippe 아저씨 집에 도착한다. 원래 낮 3시 혹은 4시쯤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한 여름 해마저 다 저물어가는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늘도 마음도 어두워지다 보니 집으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마을도 유령도시처럼 보인다. 오는 길에 전화로 조금 더 늦어질 것이라고 알려드리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늦다. 얼굴에 미안한 표정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곰같이 거대한 체구의 Phillipe 아저씨는 개의치 않고 열렬히 반긴다. 늦어진 우리를 기다리느라 2~3시간 전부터 파스타 면을 삶아 두고 기다렸다고 하신다. 이전에 이 집에 방문했었던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명성이 자자한 산더미 같던 파스타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운다.  


 Philippe 아저씨는 집을 잠깐 둘러봐도 아 이 사람은 자전거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은 자전거 광이다. 이전의 친구들도 겪다 보면 자전거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이 분은 그 정도의 깊이가 다르다.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자전거 모형에 포스터 혹은 책자들의 주인공은 모두 두 바퀴가 달려있다. 저녁을 들면서 그리고 그 후에도 나누는 모든 이야기의 귀결은 자전거이다. 요즘 한참 말이 많은 바다 건너 영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덕분에 영국에서 만드는 자전거의 값이 싸져 얼른 사야 겠다는 결말에 이른다. 대책 없는 두 여행자를 위해서 여러 정보도 주신다. 본인의 업도 자전거와 관련된 활동으로 하고 있으신 터라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와는 또 다르다. 밤늦게까지 자전거 이야기를 계속하다 T형에게 살며시 경청의 의무를 넘긴 후 방으로 몰래 올라간다. 


  너무도 피곤한 몸뚱이가 절로 침대 위로 쓰러진다. 아저씨는 고등학생인 딸 한 명과 살고 있다. 자세한 가정사는 묻지 않았지만 딸의 어머니와는 떨어져 살고 있는 듯하다. 딸과도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사실 그리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주로 자신의 방에 혼자 있던 딸의 모습과 자전거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도 열정적으로 처음 본 손님들과 나누던 아저씨의 모습이 겹쳐진다. 자전거를 이야기하는 그 두 눈은 취미 혹은 관심사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아저씨의 그 눈을 바라보는 딸의 또 다른 두 눈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정말로 사랑한다는 사실이 어떤 면에서는 외로워지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T said : 


DAY 7 

하루에 펑크만 세 번. 튜브가 너덜거리더니, 타이어까지 찢어졌다. 

펑크를 때우고 다시 페달을 밟으면 온 신경이 엉덩이에 집중된다. 

엉덩이로 노면을 느껴보면 펑크가 제대로 때워진 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다. 

제대로 때운 줄 알았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자전거를 멈추고 손으로 타이어를 눌러본다. 

아..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가. 이젠 그저 웃음이 나온다. 

세 번의 펑크 끝에 타이어가 걸레가 됐다. 

히치 하이킹을 했다. 

친절한 아저씨가 픽업트럭에 자전거와 나와 찬희를 싣고 쌩쌩 달린다. 

아, 너무 좋다. 

얼마 안 가서 자전거 가게에 도착했다. 진짜 내리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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