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halo Oct 13. 2021

여덟째 날.

떡 하니 단단히 버티던 땅, 프랑스

A said : 


6.30 Paris PM ?? : ?? 


  어젯밤 이야기대로 파리까지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기 좋은 길도 있고 보여주고 싶은 관광지가 있다 하여 Phillipe 아저씨와 동행하기로 한다. 다음 목적지인 파리까지는 거리도 얼마 남지 않았고 가는 길에 있다 하니 감사히 따라가기로 한다. 비싼 차들을 몇 대씩 가지고 있는 대부호가 오늘은 무슨 차를 타고 갈까 고민하듯 아저씨가 구비해 놓은 여러 자전거 중 신기하게도 누워서 타는 자전거를 오늘 주인공으로 고른다. 어째 누워서 갈 준비를 하는 아저씨가 여행자들보다 더 흥이 난 듯하다. 항상 보행자나 지나가는 자동차들에게 불평이나 경적을 들으며 어물쩍 한 수 양보만 해 오던 이방인들이 위풍당당한 현지의 자전거 영도자와 함께 하니 그렇게 편할 수 없다. 피리 부는 소년을 따라오듯 자동차들이 느릿느릿 앞으로 가지 못하고 뒤통수 따갑게 쫓아온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편하게 누워 팔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천천히 달리는 아저씨를 볼 때 괜스레 자동차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마음 편하게 달린다. 아저씨가 우리를 인도한 곳은 Creil 근처의 유적도시 Senlis와 Chantily. 아저씨의 설명으로는 옛 귀족들의 고성 그리고 옛 성당이 유명한 도시라고 한다. 서로 손을 붙잡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어린 학생들부터 책을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머리 좀 큰 학생들까지 자주 마주친 것을 보면 꽤나 알려진 곳인가 보다. 

 가랑비도 추적추적 오고 우둘투둘 타일이 깔린 고즈넉한 옛 길을 자전거로 누비는 여행자들은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골목 사이사이에 오래된 집의 모습들 그리고 여전히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흔적들이 괜히 한 번씩 더 쳐다보도록 발길을 붙잡는다. 주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해 생존하기 위해서만 페달을 밟아오다 여유 있게 거닐다 보니 더욱 편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영도자는 이 땅의 역사를 잘 모르는 두 객들에게 보이는 장면들을 열심히 설명해주랴, 앞서서 페달을 밟느랴 입부터 발끝까지 바쁘다.  


 여정이 끝나가고 이제 오늘의 목적지 파리로 간다. 빗줄기도 점점 굵어지고 얼른 목적지에 도착해 쉬고 싶은 지친 객들이었던 지라 안내에 열심인 영도자에게는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여정의 말미에 와서는 얼른 길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Phillipe 아저씨의 배웅을 뒤로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목적지까지 길을 재촉한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이지만 긴밀한 사이를 유지해 오던 비바람도 역시 함께 한다. 게다가 둘 사이의 밀월관계에 ‘펑크’가 끼어들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이제는 크게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도심 길거리에 주저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두 어 번 더 바퀴의 구멍들을 메우면서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파리라는 도시라 함은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꿈꾸는 낭만 한가운데 있는 곳이다. 식도락, 유적지, 쇼핑 같은 여행의 요소들 중 하나라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랄까. 뭇 여행자들의 환상을 채워줄 집합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멋대가리 없는 두 명에게는 그저 쉬어 가는 거점 중 하나이다. 어렴풋이 처음 계획(계획이라고까지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를 엉성한 그저 잡담 비슷한)을 세울 때 두 번 정도는 큰 도시에서 잠시 쉬며 둘러보기로 했는데 그중 첫 도시가 파리였다. 그래도 그 파리에 도착했는데 좀 돌아볼까라는 생각은 전혀 눈곱 만치도 들지 않는다. 숙소 앞 상점에서 싸구려 와인 한 병씩을 집어 들고 돌아와 창문 아래를 바라보며 여기에 오긴 왔구나 싶다. 침대에 누워 자기 직전인 지금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한 가지 생각은 ‘드디어 내일은 자전거를 안 타는구나’이다.

P.S.1. Phillipe 아저씨가 보여준 도시들은 지나와서 알아보니 로마 시대부터 번창하던 고(古) 도시였다. 길의 풍경이나 건물들이 심상찮아 보이긴 했지만 그 정도 일 줄은 모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 덕에 여러 귀족들이 성을 짓고 권세를 누리던 곳이기도 했다. 아저씨가 한 번씩 역사적인 사실도 이야기해주었지만 페달을 밟기도 버거웠던 몸뚱이 덕에 귀담아 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 수고로움에 건조했던 반응이 미안하기도 하고 좀 더 그 풍경을 누리지 못했음이 아쉽다. 


 P.S.2. 여정 와중에 만났던 많은 친구들은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꾸준히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중 가장 열정적으로 소식을 전한 사람이 Phillipe 아저씨이다. 헤어지면서 여행 중 들르는 마을들의 사진을 보내주겠노라 약속도 했다 보니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사진은 언제 보낼 것인지 정말 꾸준히 물어보는 아저씨의 연락이 가끔 섬뜩하기도 했다. 아저씨와 함께하면서도 가끔 과한 반응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얼른 방에 가서 자고 싶은 객들을 밤늦게까지 붙잡고 자전거 이야기를 하거나, 파리로 가는 길에서는 최대한 빨리 일직선으로 가고 싶은 여행자들의 마음과는 달리 멀리 돌아가지만 숲 속에 조용하고 훌륭한 자전거길이 있다며 그곳으로 이끌었던, 가끔은 유난스럽기도 했던 관심이 귀찮고 불만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리스본에서 보낸 엽서를 받고 기뻐하던 모습이나, 인터넷에서 자신의 집에서 머물렀던 한국인들은 정말 유쾌하고 좋은 친구였다고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해주던 모습을 보았을 땐 거울을 보기가 참 부끄러웠다. 그렇게 컸던 감사함을 직접 겪고도 느끼지 못할 수 있구나 싶다. 받아들이는 자와 베푸는 자의 입장이 다르고 느끼는 온도에 차이가 있다지만 그 순수한 호의마저 그대로 느끼지 못함이 서글프다. 


P.S.3. 파리로 오면서 도심까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교외에서 너른 들판에 무척 큰 변전 탑들이 가득한 광경을 본다. 정말 대도시에 다 와가는구나 싶다가도 한 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죽 세워져 있는 수많은 변전 탑들이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향해 기나긴 전깃줄 들을 늘어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오싹해진다. 그 괴기스러워 보이던 줄들 덕에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곱째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