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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3. 2021

열네 번째 날.

떡 하니 단단히 버티던 땅, 프랑스

A said : 

 

7.6 Saint-Etienne PM 21 : 18


 해가 쨍쨍한 한낮에 자전거를 타는 일은 너무 가혹했기에 항상 일찍 일어나서 꼭 몇 시에 출발하자!라고 전날 밤 굳은 결심을 하지만 그 각오는 지켜진 적이 전무하다. 나아갈 길이 유난히 쉽지 않을 듯해 꼭 일어나자 다짐 아닌 다짐을 되새기며 일찍 잠이 든 덕을 보았는지 오늘은 그나마 목표시간에 가장 근접하게 일어난다. 대륙 한가운데를 관통하느라 마을도 잘 없는 산골을 지나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고도가 500m를 넘는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자고 있는 새에 새벽일을 마치고 돌아온 David가 가야 할 도착지까지 가려면 큰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괜찮겠냐며 무뚝뚝한 성격에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걱정을 한다. 지들이 가야 할 길임에도 불구하고 덜 깬 눈으로 아 그렇구나 허허하며 앞에 있는 빵을 씹기 바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


 막상 길을 떠나고 보니 출발이 괜찮다. 공원에서 시작해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편한 길로 시작을 한다. 길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침부터 기분 좋게 녹음을 맘껏 즐기며 달린다. 근처에 사는지 엄마가 끌고 온 유모차에 탄 귀여운 아기를 향해서도 여유롭게 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역시 정직한 David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마을의 경계로 나오자 다짜고짜 매우 가파른 경사의 언덕이 나온다. 지금까지 본 언덕들은 어느 정도 경사가 있어도 늘어지게 긴 거리에 나름 완만한 언덕이었다면 눈 앞에 보이는 언덕은 하늘까지 바로 닿아있을 것 같은 경사를 자랑한다. 갈 수 있을까 페달을 힘껏 밟아도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어 한참을 끌고 걸어간다. 안장 위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다고 징징댈 때가 생각났지만 두 손으로 낑낑대며 끌고 걸어가다 보니 페달을 굴리는 짓도 호사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한 번씩 위를 올려다보고 용을 쓰면 되겠지 싶다가도 괜한 헛심만 쓰다 다시 안장에서 내려온다. 나름 기어를 잘 조절해 달리던 T형도 한 번씩 안장에서 내려오고야 만다. 저 아래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로 신나게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니 괜히 배가 아프다. 

 안간힘을 쓰면서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시간을 꽤나 잡아먹으며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어느새 두 눈 앞을 가로막던 길 대신 흰 구름이 드문드문 보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정상에 도달함을 기뻐할 힘도 얼마 없다. 자전거를 끌랴 무거운 몸뚱이도 이고 올라가랴 앞만 보면서 올라오다 위에 올라와서 둘러보니 별천지다. 주위에는 숫자가 꽤 되어 보이는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인적은 드물고 사람 대신 커다란 소들이 ‘뭐 하는 녀석들이야’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무심하게 풀을 뜯고 있다. 간간히 들리는 바람소리 혹은 귀에서 앵앵대는 벌레 소리나 들리는 조용한 마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는 소년의 모습 같다. (비유가 이상하다. 다시 읽을 때 와 닿을지 모르겠다.) 저 아래 끝없이 보이는 대지와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조용한 마을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멈춘 듯하다. 한가로이 풀밭에서 빈둥거리는 소들 옆에 누워 한 잠자고 싶었지만 아직 갈 길이 구만 리라 한없이 여유로운 풍경을 뒤로 하고 나아간다. 힘겹게 올라온 그 산등성이를 허무하게 내려와 다시 달린다. 산속에서 헤매느라 굶주리던 두 산적들은 산에서 벗어나 마을이 보이자마자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역시나 또 구멍이 난 튜브를 때우고 바람을 넣으려는데 펌프가 말을 듣지 않는다. 들고 다니던 펌프는 작지만 꽤 튼튼했다. 시간이 꽤 걸리지만 생각 없이 분주히 팔을 움직이면 어느새 바퀴를 단단하게 해 주곤 했다. 제 몸들을 챙기느라 배려심이라고는 찾기 힘들던 주인들에게 어찌나 수난을 당했는지 바퀴와 펌프를 이어주는 부분의 작은 부품이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손톱만 한 부품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마침 멈춘 곳이 주유소라 혹시 자동차 바퀴에 공기를 넣는 펌프로 안 될까 싶어 노력해 봤지만 불행하게도 맞지 않는다.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말미에 이르러서 이런 일이 생기니 힘이 쭉 빠진다. 주변에 자전거 상점이나 구원받을 수단이 있나 찾아봤지만 건물도 드물게 보이는 도로변 한가운데이다 보니 딱히 수가 나지 않는다. 걸어갈까 생각도 해 보지만 먹기 딱 좋게 익힐 만한 햇빛이 쨍쨍한 날씨에 몸서리가 쳐진다. 마침 주유 중이던 승합차가 눈에 들어와 동승을 부탁한다. 사정은 딱하지만 힘들겠다는 완곡한 거절에 더 힘이 빠진다. 익어 버린 듯 잘 굴러가지 않는 두 머리를 써서 이야기한 결과 일단 자전거 한 대부터 일단 출발을 하고 남은 한 대는 남아서 히치하이킹을 계속 시도하기로 한다. 호텔에 도착하면 택시든 무엇이든 방법을 찾기 수월할 것이고, 자전거 두 대보다는 한 대가 신세지기 더 용이할 듯해 결정을 내린다. 얼른 도착해 수단을 강구해야겠다는 일념에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도착하면 어떻게 방법을 찾아야 할지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 꼬부랑 단어들을 미리 쥐어짜 내며 달린다. 그렇게 달리기를 3~40분, 오늘 머물 곳이 보인다. 우선 짐을 넣으려고 카운터를 찾아가니 이미 일행이 와 있단다. 방에 올라가 보니 T형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 다행히 좋은 친구 한 명을 만나 차를 얻어 타고 올 수 있었단다. 희미한 헛웃음과 함께 침대 위에 쓰러진다. 


P.S.1 주유소에 주저앉아 고장 난 펌프를 어떻게든 해보려 노력하지만 그 작디작은 이음새 하나 때문에 진전이 없다. 미치고 팔짝 뛸 것 같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작은 부품 하나 때문에 그보다 몇 백배, 수천배 거대한 두 미련한 인간이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바퀴에서 바람이 새듯 피식피식 헛웃음이 계속 나온다. 한참 더위도 먹었는지 둘 다 급한 마음과 달리 몸은 움직이지 않고 멍하다. 누군가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 않을까 싶은 헛된 망상에 부풀어 계속 멍하게 앉아 있을 만큼 의욕은 바닥을 친다. 가끔 그리도 집요하고 미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의 의지는 단숨에 무너지는 데 그렇게 큰(부피 상으로도) 계기까지 필요 없을 때도 있나 보다. 

T said : 

 

DAY 12 

-

나쁜 일을 하면 나쁜 일이 돌아오고,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돌아온다.

노트북을 잃어버리고 조금 억울했다. 

노트북을 발견하고 돌려주지 않는 사람이 괘씸했다. 

얼마 전 길에서 주운 핸드폰을 주인을 찾아 돌려준 기억이 났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노트북을 찾았다.

오늘 길에서 어린 아기 셋을 데리고 산책을 하는 가족을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얼마 더 갔을까, 길가에 떨어진 귀여운 선글라스가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선글라스를 주웠다. 

1킬로 더 가는 게 뼈아픈 상황이지만 선글라스를 가져다주고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자전거가 펑크 났다. 

아주 심하게. 샵도 없었고, 패치도 소용없었다. 

요한이라는 은인을 만나 차를 얻어 타고 이렇게 일기를 쓴다.

-

아침에 지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바람에 600미터를 올라갔다. 

자전거 타는 걸 포기하고 자전거를 끌었다. 

너무 힘들었다. 심한 욕이 나올 만큼.

업힐을 오르면 다운힐에서 보상받는 느낌이 너무 좋다. 

근데 이번에 알았다. 

너무 힘들게 오르니 내려가는 게 아쉬워서, 자꾸만 브레이크를 밟았다.

힘들게 얻은 건 버리기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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