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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3. 2021

열다섯 번째 날.

떡 하니 단단히 버티던 땅, 프랑스

A said : 

 

7.7 Valence PM ?? : ??


 확실히 남쪽으로 계속 오다 보니 슬슬 날씨가 무더워진다. 출발하는 아침부터 푹푹 찌기 시작한다. 오늘 달릴 길은 초입부터 대놓고 힘들거야라고 선언하다 보니 페달을 밟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어를 만지는 손이 바빠진다. 시작부터 오르면서 온 힘을 다리에 집중하다 보니 고개를 들 힘도 없어 땅 아래를 보면서 페달을 꾹꾹 밟는다. 출발하기 전 항상 그날 달릴 길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볼 때면 거리만큼 중요한 것이 자전거가 오를 상승 고도이다. 어제오늘 가는 길의 상승고도는 겪어 왔던 수치의 배가 되는 정도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하지만 막상 몸에 와 닿는 체감은 숫자 그 훨씬 이상이다. 이쯤 오면 많이 왔겠다 싶을 정도로 올라가다 보니 조그마한 마을이 나온다. 


 길거리 곳곳에 예쁜 꽃들도 심어져 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집들의 모습이 수줍게 꽃단장한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숨도 돌리고 잠깐 구경도 할 겸 잠시 자전거를 세워둔다. 나름 꽤 왔겠지 싶어 어느 집 앞에서 거닐던 할아버지께 ‘언덕길은 이제 거의 끝나가나요?’라고 여쭤본다. 할아버지는 전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무슨, 이제 시작일 텐데’라는 절망적인 선고를 내린다. 


 길을 한참 오르다 보니 역시나 잘 달리는 T형에 비해 조금씩 뒤쳐진다. 항상 그래 왔듯 T형은 어김없이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 갈림길을 마주치자 자연스레 입에서 헉 소리가 나온다. 어디서나 전화기 신호가 잡히던 IT 강국과는 달리 이 곳에서는 통화 가능한 상태보다 그렇지 않은 상태의 시간이 항상 더 길다. 그러다 보니 전화기도 제 역할을 못한다. 산속에 대충 세워 놓았는지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도 초등학생이 미술시간에 만든 수작을 세워놓은 듯하다. 출발하기 전 지도에서 본 듯 아닌 듯, 그나마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 같은 지명을 골라(찍어) 방향을 튼다. 오르던 산(혹은 높은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왔다 싶어 둘러보니 주위가 갈대 비스무리한 누런색 줄기들로 가득하다. 그 줄기들의 키는 꽤나 컸고 주변은 인기척이나 터전의 흔적이 전혀 없다. 무협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고수들의 비무장이 생각난다. 줄기들 사이사이 검은 도로만이 그래도 문명의 손길이 닿긴 하는 곳임을 알려준다. 가는 방향이 맞나 의심이 스멀스멀 꾸준히 올라오지만 물어볼 행인도, 행여 틀리더라도 다시 돌아갈 기운도 없다. 그저 이제는 달리는 길이 목적지 그 자체이다. 사람이 페달을 굴리는지 페달이 알아서 발을 돌리는지 이제는 다릿심이 아닌 관성의 힘으로 자전거 바퀴는 돌아간다.

갈대 비슷한 줄기들을 헤치고 나오자 버티고 있던 울창한 숲에서도 역시 몇 번의 힘든 선택(침도 뱉고 뒤돌아 등 뒤로 돌도 던지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본다.)을 하고 나자 드디어 자연미 넘치는 풍경이 슬슬 벗겨진다. 내려가는 길에 웬걸 버스가 지나가긴 할까 싶은 정류장 벤치에 T형이 당연한 듯이 앉아있다. 가는 길은 대충 다 비슷했나 보다. 함께 다시 내려가다 보니 이번엔 반대의 의미로 급경사다. 페달을 굴리지 않아도 내려갈 수 있었지만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도록 용을 쓴다. 올라오던 길과는 다르게 이 쪽 경사면에는 온통 꽤나 값비싸 보이는 주택들이 한가득이다. 작열하는 태양 빛과 잘 어울리는 하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집들 사이로 한참 내려가면서 강 건너 보이는 풍경 역시 절경이다. 실컷 힘을 쓰다 봐서 그 효과가 더 했을 수도 있지만, 그 풍경은 여지껏 두 눈에 들어왔던 그 어떤 것들보다 장관이다. 그 광경을 접하고도 한참을 달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도시 초입부터 쿵쾅대는 공장들에다 한참 뜯어고치고 있는 거친 길이 지나가기 힘들다. 한가한 시골길을 달리다 도심지로 들어오니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이 무섭기만 하다. 


P.S.1. Aurore의 집에서 출발한 날부터 이틀 간은 매일 자기 전 남긴다고 남긴 기록에 별 말이 없다. 지나온 거리의 수치도 무시무시했고 달렸던 길도 힘들었거니와 산속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딱히 특별하게 기록할 일이 없었다. 사람의 얼굴이나 흔적보다는 나무나 돌과 훨씬 많이 마주쳤고 그저 눈 앞의 언덕을 하나하나 힘겹게 넘은 기억뿐이다. 이틀 간의 행적 은 도중에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경치들을 넋 놓고 바라보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자전거’ 여행’이라기보다는 다음 목적지로 해 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던 ‘생존’ 활동에 더 가까웠다. 

T said : 

 

DAY 13

 

너무 더웠다. 

포도밭에 스프링클러를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아 존나 비나 내렸으면 좋겠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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