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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3. 2021

열아홉 번째 날.

떡 하니 단단히 버티던 땅, 프랑스

A said : 

 

7.11 Le boulou PM 22 : 05


 드디어 또 다른 땅에 가까워진다. 내려올수록 풍경이 변해가는 것은 꾸준히 느끼고 있지만 새롭게 다른 나라를 만난다니 슬슬 기대가 된다. 부풀어 가는 기대만큼 국경에 우뚝 서 있는 피레네 산맥을 보니 걱정 또한 천근만근이다. 여지껏 지도 위에 초록색으로 표시된 첩첩산중을 넘어왔지만 앞으로 넘어갈 산들은 그 초록의 강도가 점점 진해진다. 진해지는 녹색의 위엄을 보여주듯 길을 가는 내내 저 멀리 눈 앞에는 까마득한 산맥이 우뚝 서 있다. 우두커니 서 있는 거대한 장애물을 계속 보면서 달리는 것도 고역이지만 오늘은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이 가득한 차도 옆에 끼어가는 일까지 허다하다.


 눈 깜짝할 새 사라지는 옆의 자동차들을 허무하게 바라보며 한참 달리던 중 맞은편에서 자전거 한 대가 꾸역꾸역 기어 온다. 마침 내리막을 달리고 있던 터라 반대로 마주친 그 자전거는 한참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중이다. 이사라도 가는 것만 같은 큰 짐을 지고 백발의 할아버지가 힘겹게 올라온다. 할아버지는 내내 땅만 보며 힘을 줬던지 뒤늦게야 맞은편 도로 위를 달리는 존재를 알아챈다. 손을 흔드는 가 싶더니 갑자기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위를 가로질러 건너온다.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멈춘 빨간 자전거를 향해 온갖 손짓 발짓과 함께 알아듣지 못할 말을 속사포로 뱉어낸다. 대강 손짓을 보니 물을 원하는 눈치라 물병을 건넨다. 물병을 건네받자마자 입에 물을 왈칵 쏟아 내더니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보부상 마냥 지고 있는 무거운 한 짐에 물 한 병이 없다니. 지금껏 달려오며 나름 행색이 초라하기로는 따라올 자가 없다고 자부(?)했지만 이 할아버지에게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정말 그저 맨몸을 가리기 위함이 유일한 목적인듯한 셔츠와 반바지의 조합이다. 게다가 집에서나 신고 다닐 것 같은 슬리퍼까지. 할아버지의 입에서 빠르게 나오는 스페인어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그중 ‘바르셀로나 Barcelona’ 단어만 딱 하나 알아듣고 아 그곳에서 왔나 보구나 싶다.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음 때문에 쩌렁쩌렁 소리치듯 이야기한다. 서로 통하지 않는 다른 말을 크게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다고 믿는 듯 의미가 통하지 않는 의사소통 (불통에 가까운)을 계속한다. 어느 정도 목청을 돋우다 서로 눈빛으로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싶을 때 할아버지가 두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몇 번씩 숙인다. 나눴던 물에 대한 감사 인사인 듯하다. 생각지도 못한 간절한 감사 인사에 괜히 우쭐해져서 가지고 있던 남은 물을 전부 건넨다. 사실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도 얼마 남지 않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받은 사람이 느끼는 그것은 다른 듯하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다시 길을 떠난다. 예상치 못한 감사 인사에 기분이 묘해진다. 날계란도 익을 듯한 아스팔트 도로 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사이로 꾸역꾸역 페달을 밟아가는 백발의 할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본다. 길 위에서 떠도는 같은 처지에서 오는 동질감인지, 깊이 전해지는 감사에 대한 반응인지 괜스레 시큼해지는 코를 한번 훔치고 다시 바퀴를 굴린다.


 오늘 머물게 될 Le boulou는 눈 앞에 바로 보이는 큰 산맥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국경의 작은 마을이다. 보통 방문했던 곳은 대부분 시(市) 단위였지만, Le boulou는 ‘시’에 끼워 맞추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면서 대충 둘러봐도 마을의 전체적인 크기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다. 날이 덥긴 하지만 꽤나 열심히 달렸는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건물들로 가득한 작은 시골마을에 꽤 일찍 도착한다. 오늘 묵게 될 숙소도 손님들을 위한 전형적인 호텔의 객실이라기보다는 마을의 모습과 비슷하게 그저 집으로 놀러 온 친척을 맞이하는 정겨운 집의 모습이다. 계단을 오르면서 들리는 삐걱삐걱 소리나 빛바랜 나무 침대가 더욱 친근하다. 씻고 나니 몰려드는 졸음에 달콤한 오침을 즐기고 일어나도 아직 밖은 밝다. 그래도 한낮보다는 훨씬 더위가 누그러지고 배도 고파져 밖으로 나가 마을을 둘러본다. 마을 안을 누빌수록 다들 여름휴가를 떠났는지 아니면 집안에서 더위를 식히는지 큰 소리 없이 조용하다. 을씨년스러운 적막이 아닌 차분해지는 고요함이다. 건물의 모습들도 이 땅을 밟으며 보았던 건물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야자수 비슷한 나무들 곁에 뜨거운 햇빛과 닮은 건물들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각자 자리에 서 있다. 인적이 드물어 식당은커녕 상점도 잘 보이지 않는다. 호텔 주인에게 소개받은 식당을 찾지만 골목길들이 제멋대로 온 방향으로 나 있어 설명대로 찾기 쉽지 않다. 다행히 길거리의 행인이 친절하게 식당 앞까지 바래다준다. 소개받아 찾아온 식당은 생뚱맞게 베트남 식당이다. 워낙 작은 마을이다 보니 변변한 식당이 얼마 없는 데다 휴가철이라 영업 중인 곳은 더더욱 없다고 한다. 원래 휴가철에 바빠야 하는 것 아닌가 의문이 들지만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은 또 다른 세상임을 감안한다.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있는 베트남 식당에 한국인 손님이라. 묘한 조합이다. 꽤나 넓은 식당에 손님은 딸랑 한국인 둘뿐이다. 메뉴를 소개하는 종업원의 인상이 심상치 않다. 짧은 머리에 치렁치렁한 귀걸이, 성난 듯한 울룩불룩한 팔뚝에는 문신이 가득하다.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메뉴를 설명해주는 목소리는 사려 깊다. 베트남에서 온 부모님과 이 곳에서 식당을 영업하는 그는 엄연한 ‘사장님’이란다. 음식을 소개하는 목소리에서 부모님이 만든 요리와 이 땅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자신의 색다른 핏줄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맛있는 음식과 유쾌한 친구 덕에 또 하루 저녁을 기분 좋게 마무리한다. 

T said :

 

DAY 17

-

꿈 같았다. 

끝도 없는 언덕을 오르며 반쯤 정신을 놓았는데, 

길 반대편에 황금마차가 오고 있었다. 

황금마차의 주인은 백발의 노인으로, 

자전거 뒤에 이삿짐만큼이나 많은 짐을 실은 리어카를 달고 있었다.



노인이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고, 

그 엄지손가락은 내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찬희에게 그 할아버지를 보았냐고 물어봤는데, 

찬희가 말했다.


건너편에 너무 힘들어하는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면서 도움을 요청하더라. 

가까이 가서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를 듣고 있자니, 

너무 목말라 물이 필요하다는 것 같더라. 

물을 주니깐 벌컥벌컥 마시고, 찬희도 안쓰러워 남은 물까지 주고 왔더라고.


이렇게, 누구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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