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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4. 2021

스물아홉 번째 날.

끝없이 이글거리던 땅, 스페인

A said : 

 

7.21 Madrid PM 23 : 10


 ‘죽으란 법은 없구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 옆에서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든다.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 동포의 구원을 받아 겨우 머물 곳을 구한다. 그저 이렇게 누울 곳이 있는 것도 크나큰 호사처럼 느껴진다. 어제 그 사고를 겪고 자전거도 같이 열이 받았는지 잘 버티던 타이어가 들어오는 길에 처음으로 터졌다. 쇠로 된 바큇살보다 오래 버틴 고무 타이어가 터진 순간이 되어서야 참 기특해 보인다. 아직 바퀴의 힘이 필요하기도 하고 기특하게 견뎌온 자전거에게 상을 줄 겸 근처의 자전거 가게로 향한다. 하필 인터넷으로 찾은 자전거 가게는 역시나 악운에 어울리게 좁은 골목이 몇 번 꺾어지고 나서나 보인다. 푸근한 주택가와 잘 어울리는 동네 자전거 가게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수리를 맡기고 가게 안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나이 지긋해 보이는 점원이 말을 붙여온다. 이 곳까지 흘러 들어온 이방인의 그간 지나온 행적에 적잖이 감탄을 하며 되려 본인이 더 흥분을 하신다. 2층에 전시공간이 있다며 함께 둘러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나무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보니 유물처럼 보이는 자전거들이 죽 늘어져 서 있다. Otero라는 이 가게의 자전거 상표는 근 1세기 전부터 이곳에 있었고 그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자전거가 같은 상표를 달고 만들어졌단다. 이 가게의 자전거를 타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의 사진이 걸려 있고, 견고한 역사의 시간 동안 받았던 수많은 상장과 트로피들이 뽐내듯 진열되어 있다. 만지면 손가락에 녹이 묻어나는 자전거들에게서 오래된 것들만이 풍길 수 있는 따뜻함이 새어 나온다. 벽의 옛 사진들 속에 웃긴 옷차림으로 자전거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정겹다. 오래된 것에 대한 스스로의 취향은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잘 바뀌지 않는다. 아저씨의 신나는 설명과 함께 꽤나 오랜 시간 머물다 내려오는 길에 가장 크고 오래되어 보이는 자전거가 보인다. 아저씨께 여쭤보니 수십 년 전, 창립자가 가족과 함께 타려고 만든 3인용 자전거라고 한다. 흔히 알고 있는 2인용 자전거 뒤켠에 작은 아이나 앉을 수 있을법한 의자가 달려있다. 가장 뒤에 달린 조그만 의자에 앉은 꼬마 아이가 부모와 함께 소풍을 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말하지 못하는 고철덩어리지만 바라만 봐도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필름을 바라보듯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더욱 생생하게 와 닿는다.

 내내 친절하게 안내해준 아저씨가 특별한 손님이라며 선물 몇 개도 덤으로 주신다. 지불한 비용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받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으로 가게를 나선다. 가게 밖에서 잠시 자전거를 세워 두고 출발할 준비를 하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가게 옆에 붙어 있던 자전거를 수리하는 공방에서 일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젊은 친구는 빨간 자전거를 어루만지며 역시나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꼬박꼬박 질문에 대답하던 이방인에게 흥미가 생겼는지 오늘 오후에 자신의 자전거 동호회와 함께 근교로 일몰을 보러 가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또다시 힘들게 자전거를 오래 타기는 싫은 몸뚱이와 재미있어 보이는 친구의 제안이 끌리는 마음 사이에서 어버버 방황하는 찰나, 오후에 특별한 일정이 있냐고 묻는다. 허를 찔린 듯 얼떨결에 No라고 대답한다. 반색하며 Felipe는 동호회의 광고지에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모일 장소를 적어주고 그때 보자며 일터로 돌아간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쁜 건지, 아쉬운 건지 모를 입맛을 다신다.


 해가 지기나 할까 싶은 화창한 날씨에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나간다. 그곳에는 빛이 나는 장비들로 중무장한 동호회원들이 한가득이다. 그네들에 비해 대충 걸친 스스로의 몸가짐에 괜히 작아진다. 어느새 Felipe가 다가와 오랫동안 만난 친구를 소개하듯 주위에 인사를 시켜준다. 기껏해야 아까 잠시 길 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인 Felipe가 자랑하듯 신입의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에 되려 당사자는 남일 구경하듯 웃으며 듣고 있는다. 동물원의 우리에 갇힌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던지듯 여기저기서 쏟아지던 질문들에 대답을 하다 출발하자는 신호에 안도감을 느낀다. 오늘 다녀올 곳은 스페인들의 왕들이 묻혀있는 수도원 El Escorial이라고 알려준다. 몸 상태를 보아하니 무덤이라는 단어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려와는 다르게 함께 달리는 친구들의 기운을 받는지 안장 위에서 내내 웃기 바쁘다. 페달을 밟느라, 걸어오는 농담이나 질문에 대답하느라 숨이 계속 차오르지만 질색하던 언덕길도 금세 오른다. 두어 시간 달려 도착한 곳은 큼직하고 멋진 건물들이 가득하다. 갓 만난 현지의 친구들 덕에 알찬 설명을 들으며 여기저기 둘러본다. 모든 건물들이 멋지지만 국왕들이 안치된 Panteones가 유독 화려하다.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터전보다 돋보이는 망자들의 화려함은 그 구실이 무엇인지 괜히 궁금해진다. 건물들을 둘러보고 길가의 벤치에 모두들 쪼르르 앉는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인지 언덕인지 애매하기에 왠지 더 아늑한 그것들의 사이로 해가 사라진다. 옆에서 들리는 감탄의 환호와 지는 해를 보고 괜히 느껴지는 착잡함이 함께 머무르는 그 순간이 묘하다. 

T said : 

 

DAY 27 

-

혼자 하는 라이딩, 생각보다 외롭다. 

내륙으로 올라오니 몇 일째 자전거 여행자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건너편에 사이클러만 몇 명씩 보일 뿐.


그래서 요새는 더 열심히 인사하고 있다. 

그리고 인사를 무시당하는 연습도 하고 있다.


후안과 라이딩을 할 때의 일이다. 

후안은 건너편의 라이더가 본인을 무시하던 말던 계속 인사를 했다. 

연거푸 인사가 무시당하면 그만할 법도 했지만, 

후안은 인사를 반복했다. 

그는 상대방의 반응이 아니라, 

인사를 하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요새 연습 중이다. 

그동안 너무 지나치게 남의 눈치를 살피고 

반응에 따라 행동했던 것 같다.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마음도 주지 못했나 보다. 

내가 더 중요한 건데.


여전히 건너편의 라이더가 내 인사를 무시하면 기분이 나쁘지만 

그래도 다시 인사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내게 장비와 짐을 실어주는 가이드 카는 없지만, 

현수와 진원이 그리고 찬희가 내 짐을 나누어 가져가 줬고

내게 차가운 음료와 프로틴 바를 건네주는 가이드 카는 없지만, 

도로의 모든 편의점에서 원하는 걸 골라 먹을 수 있고 


내가 부상당하면 탈 수 있는 가이드 카는 없지만, 

엄지손가락만 들면 나를 태워줄 고마운 차들로 도로가 넘친다. 

-

혹한기의 스페인에서, 웜샤워 호스트 몇 명 없는, 

중부지역에서 소중한 호스트 펠리페를 만났다. 

대낮부터 맥주를 마시고, 그의 친구들을 소개받고, 

응원의 선물도 받고, 낮잠을 자고,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다가, 펠리페의 일터를 구경하다가, 

그의 친구들과 저녁을 먹다가, 술을 마시다가, 

타파스를 먹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그러다가, 새벽 세시가 넘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라이딩을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 뭐시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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