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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4. 2021

서른 번째 날.

끝없이 이글거리던 땅, 스페인

A said : 

 

7.22 Madrid PM 19 : 31


 다행히 버스로 리스본까지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한다. 그리고 너무 기쁘게도 만원 조금 넘는 돈을 더 내면 자전거도 실을 수 있다는 규약을 인터넷에서 찾아낸다. 수십 줄이 나열되어 있는 복잡한 규약 속에 쓰여 있는 bicycle이라는 짧은 단어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리스본으로 가는 버스는 꽤나 자주 있었고 편수도 넉넉했기 때문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저녁 늦게 출발해 아침에 도착하는 버스표를 예매한다. 도시 이쪽저쪽을 헤매며 온갖 시도를 해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손가락질 몇 번으로 해결되는 그 기분을 어정쩡한 춤사위로 표출하려 했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꽉 막혀 있던 혈이 풀리듯 온 몸에 생기가 돈다.


 밤늦게 출발하는 버스까지는 한참 시간이 남았고, 하지 못한 시내 구경이나 하려고 자전거에 오른다. 서 있는지 움직이고 있는지 모를 자동차들이 가득한 중심가의 대로를 옆에 끼고 자전거로 쌩쌩 달리며 맞는 바람이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연다. 늘 근심 걱정 가득한 채로 달리며 바라볼 때와는 달리 지나치는 건물 하나, 나무 하나가 그렇게 멋질 수 없다. 한때 시대를 풍미하던 제국의 수도답게 왕궁부터 박물관, 동상들 하물며 공원에서까지 화려함의 흔적이 묻어나지 않는 건물을 찾기가 힘들다. 화려함을 좇아 여기저기서 온 관광객들 사이에 묻혀 한참을 구경한다. 


 압도되는 화려함에 침까지 흘려가면서 페달을 굴리던 중 어느 대로변에서 어떤 광경을 보고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춘다. 처음 지나가는 길은 아니었지만 멈춘 곳이 목적지였던 경우는 없었다. 보이는 건물이 어떤 곳인지 알지도 못하거니와 그저 지나다니는 대로변이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다녔다. 이 도시에서 봤던 여느 광경과 같이 화려한 건물의 한가운데 스페인 국기가 우뚝 서 있고 발길을 멈추게 한 주범은 그 밑에서 펄럭이고 있다. Refugees Welcome.


 서남아시아에서 있었던 분쟁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들이 유럽으로 유입되어 온 현상은 요즘 큰 화젯거리이다. 뒤이어 유럽 곳곳에서 일어난 불행한 테러 사건들은 그와 궤를 같이해 알라신을 믿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색안경을 씌웠다. 이 머나먼 곳에 오기 전, 둔하디 둔한 장본인은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주변에서 언급하는 조심스러운 걱정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있을 무렵, 불과 며칠 전 프랑스에 머물렀던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니스에서도 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들에게 해를 끼치고 무자비한 살육행위를 저지른 테러범들은 일말의 여지없이 죽어 마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용서받지 못할 행동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 혹은 문화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그들을 향한 오해 가득한 시선이 옳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이성이 감정을 완벽히 이길 수는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완벽히 억누를 수는 없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는 그들을 몰아내자는 소요가 가득하다. 도심 한가운데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국기 아래 매달려 있는 그 굵고 짧은 두 단어는, 터번을 두른 사람을 보면 스멀스멀 경계심이 올라오는 작금의 상황에서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관용일지, 여유일지, 혹은 용서일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담겨 있어 보이는 그 환영의 표시는 계속 보아오던 멋진 건물들보다 더 화려해 보인다. 

 한밤중에나 출발할 버스표를 끊었지만 사고의 연속에 혹시나 하는 유비무환의 자세로 꽤나 오래전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매표소에 도착해 예매한 표를 발권하는 도중 직원이 자전거를 실을 거냐고 확인한다. 자전거를 가리키며 그렇다고 대답하자, 직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기사마다 안전상의 문제를 내세워 자전거를 버스에 싣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런 말을 할 요량이었으면 애초에 왜 자전거 값을 더 받는 표를 파느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내 편 하나 없는 타국에서 그런 투덜거림은 쉽사리 입밖에 나오질 않는다. 엄습하는 불안감에 기사를 미리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냐고 물어보자 사무실의 위치를 알려준다. 받아 든 위치를 찾아가 보니 수염이 덥수룩한 터키인 기사가 대답한다. 여차저차 설명을 하니 자전거를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턱을 만진다. 입에서 새어 나오는 나지막한 신음 비슷한 소리에 더욱 몸이 달아 형제의 나라니, 월드컵이니 엄한 소리를 하며 몸을 배배 꼰다. 그 광경이 우스꽝스러웠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몇 살이냐고 엉뚱한 질문을 한다. 뜻 모를 질문에 대답을 하자 출발 시간보다 30분 일찍 플랫폼에 도착하는 조건으로 같이 가자는 허락을 받는다. 돈을 내고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됐다 싶은 마음에 다리에서 힘이 빠진다. 


 버스 한 번 타는 일이 쉽지 않다. 저녁 먹을 기운도 없어 간단히 요깃거리를 한 손에 쥔 채 벽에 기대어 주저앉는다. 창 밖으로는 쉴 새 없이 버스들이 계속 떠난다. 대합실의 의자들은 어딜 가는지 한 보따리 이고 가는 할머니, 계속 보채는 꼬마들 혹은 사연들을 품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의자를 차지하지 못해 커다란 배낭들을 베고 바닥에 누워 있는 방랑객들도 적지 않다. 그중 긴 머리를 자랑하며 누워 있던 한 친구와 눈이 마주친다. 들고 있던 물병을 들고 한 손으로 건배를 제의하며 입이 찢어지게 웃는다. 어째 입 안의 이빨이 많이 보던 색이 아니라 거무죽죽하다. 그토록 해맑아 보이는 검은 웃음에 함께 웃지 않을 수 없어 멋쩍게 미소를 시도해본다.

T said : 

 

DAY 28 

-

어제 즐거웠는데 부러웠다. 

유튜브로 거리공연 영상 보는데 

노래만큼이나 거리나 사람들이 그냥 그립다.

홍대에서 청혼을 부르는 버스킹 동영상을 보는데 

내가 소중한 걸 많이 놓고 왔구나’ 싶었다. 

-

매일이 오후 반차다. 

이 얼마나 행복한 날들인가.


40도에 육박하는 오후 날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라이딩을 시작한다.


덕분에 모든 라이딩이 점심이면 끝나고, 

오후 내내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다.


내 유일한 걱정거리는 

내일 달려야 할 그 거리뿐이다. 

얼마나 행복한 날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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