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음식은 여전히 사랑이다
어릴 때의 김밥은 특별함이었다.
김밥은 사 먹는 음식이라기보단 소풍날 엄마가 직접 싸주시던 음식이었다. 평범한 날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소풍날 아침이면 맞벌이로 바쁜 엄마가 시간을 쪼개가며 정성을 담아 김밥을 만들어 주셨다.
소풍날이 설렜던 건 수업을 하지 않고 놀러 간다는 사실이 아니라, 엄마가 만든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컸다.
그땐 누가 깨우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졌다. 피곤한 것도 없었다. 고소한 참기름향과 프라이팬에 재료들이 익어가는 소리에 단잠을 자던 나도 눈이 번쩍 떠졌다. 김밥은 그런 특별한 힘이 있었다. 아직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가면 바쁘게 움직이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그게 행복했다. 아, 엄마는 역시 우리를 사랑하는구나. 바보 같지만, 그땐 그런 게 사랑의 척도라고 생각했다.
사랑의 척도가 사라진 건 소풍날 김밥을 사가라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출근 준비에 바쁜 엄마는 이제 김밥 정도는 사서 먹어도 서운하지 않을 거라며 천 원짜리 지폐 2장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2천 원이면 김밥 두 줄 사는 건 가능했지만, 내 설렘을 채워주진 못했다. 이제 소풍날의 설렘과 엄마의 사랑은 사라지는구나, 하며.
지금의 김밥은 편리함이다. 20년이나 지난 지금, 2천 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김밥 한 줄의 가격은 손을 떨리게 한다. 그럼에도 식사를 때우기 편해서 사 먹는다. 맛도 있으니 간단히 때운다고 해서 슬프거나 하는 감정은 들지 않는다. 김밥에 엄마의 사랑을 대입시키는 나이는 한참 지났다. 이젠 그냥 식사메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도 여전한 건, 김밥을 먹을 때마다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던 엄마의 모습과 소풍날의 설렘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바보 같지만, 손수 김밥을 말아주는 게 사랑의 척도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느낀 그 감정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