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진 역할이 불편해질 때
우리 가족은 친할머니와 가까이 살고 있다.
엄마에게는 일주일에 단 한 번 쉬는 날이 있는데, 그날은 언제나 일주일치 반찬을 만드는 날이 되곤 한다.
아침부터 장을 보고 돌아와 콩나물이며 시금치를 다듬어 나물로 만들고 국을 끓이는 등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 식탁 위는 금세 색이 풍성하고 화려해졌다.
양념꼬막이나 굴무침처럼 신선한 재료가 필요할 때면 일부러 멀리 있는 시장까지 다녀오시곤 했다.
"여긴 비싸기만 하지, 싱싱하지도 않고 양도 적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기꺼이 그 수고로움을 감내했다.
엄마의 손을 거쳐 다양한 반찬이 완성될수록, 정작 엄마가 쉴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반찬 몇 가지를 만들고 나면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기 일쑤였으니까.
그리고 이런 날은 할머니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날이기도 하다.
가까이에 사는 시어머니니, 엄마는 이런 날이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식사하고 가시라고.
요즘은 몸이 불편하셔서 잘 오시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종종 먼저 찾아오시기도 했다.
할머니가 오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나는 대접하는 입장도 아니고, 한 발짝 떨어진 입장에서 보자면 가끔의 식사 자리가 불편할 게 없다.
문제는 늘 그 장면에서 부각되는 아빠의 태도였다.
한 상 가득 갓 지은 흰밥과 새 반찬이 차려지면 아빠는 으레 이렇게 말했다.
"많이 드세요."
별 것 아닌 인사말이지만, 난 이상하게 이 말이 너무나 듣기 싫었다.
아침부터 장을 봐오고 열심히 반찬을 만든 건 엄마인데 생색은 아빠가 내는 것 같아서.
그저 습관처럼, 아무 생각 없이 뱉는 인사겠지만 그 말이 가부장적 질서가 만든 장면처럼 느껴진다.
아빠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많이 먹으라고 할 때면 내 안의 모난 마음도 건드려지는 것만 같았다.
고생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먼저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괜히 새로 만든 반찬이 하늘을 날아다닐 테니 그냥 삼키곤 했다.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나눠져 있기라도 한 걸까.
빨래와 설거지 같은 가사노동은 엄마의 몫이고 아빠는 그걸 별생각 없이 따른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는 케케묵은 역할 분담이 당연하다는 듯.
시대는 이미 변했는데 예전의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빨래며 설거지며 다 하고 있는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내 삶에서만큼은 저런 모습은 보이지 말자고.
당연한 듯 굳어진 일상일수록, 그 당연함에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