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정 (情)

산이 가다

by 곽병찬

내 집 개였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산은 기품이 있었다. 너그러우면서도 위엄이 있었고, 온순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았고, 점잖았지만 단호했다. 동네에서 산의 별명은 상남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속으로 은근히 그런 산과 나의 성품을 비교하곤 했다. ‘저놈이 나보다 나은 것 아냐?’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산을 질투하고 있었다.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 허다한 게 세상이지만, 정작 개와 비교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쪽팔리는 일인데 내가 나를 개와 비교하고 있었다.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아내와 딸 아들도 은근히 나와 산을 비교했을지도 모른다. ‘버럭’ 성질내기 일쑤지, 그렇다고 상대를 제압하지도 못하지, 시시콜콜 따지지, 그렇다고 상대를 설득하지도 못한다. 마음은 너그럽기는커녕 밴댕이 속처럼 좁아터졌다. 한 가지, 아침이건 저녁이건 하루에 한 번씩 꾸준히 산을 데리고 산책가는 것 때문에 눈감아 줬을 것이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집에 들어서면 산부터 찾았다. 산도 그런 가족이 오면 입을 벌리고 혀를 반쯤 내놓은 채 헤벌쭉 좋아했다. 특히 손녀가 집에 오면 당장 달려와 비벼댔다. 아이가 도망가는 척하면 뒤따라가며 머리로 궁둥이를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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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나에게는 산책갈 때를 제외하고는 ‘소 닭 보듯’ 했다. 나 역시 그런 산을 ‘닭 쫓던 개’ 보듯 했다. 공을 던지건 원반을 던져도 가져오기는커녕 쫓아가지도 않았다. 불러도 못 들은 척했다. ‘허구한 날 산책시켜줘, 맛은 없지만 삼시 세끼 밥을 주는 게 난데~’ 부아가 났고, 그래서 타박을 했다. 악순환이었다. 나는 그저 ‘의무’에 있는 것만 하려고 했다. 그걸 산도 알고 있었다.

산은 온순하지만, 고집이 셌다. 힘은 불도그 이상이었다. 예전부터 힘 좋고 고집 센 이들에게 붙이는 별명이 있다. 벽창우다. 평안북도 벽성과 창성 지방의 소를 두고 하는 말인데, 씨름 선수처럼 체격 좋고 힘도 좋아 일은 잘 하지만, 절벽처럼 고집이 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산이 꼭 그런 벽창우였다.

그 벽창우 같은 성격을 건드렸다가 아내는 몇 차례 경을 칠 뻔했다. 생후 1년쯤부터 산의 몸집은 성견이나 다름없었다. 얼굴에나 유년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 몸집만 봐선 나이를 알 수 없었다. 그 때부터 산과 산책하는 건 내 차지였다. 아내는 힘이 부쳐 끌려다니다시피 했다. 특히 주변이 온통 오르막이거나 내리막이어서 사고 나기 안성맞춤이었다. 오르막도 뛰어 올라갈 정도인데, 내리막에서 40근은 족히 되는 놈이 급발진하면 사고는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였다. 낑낑대며 산책을 조르는 놈을 데리고 아내는 문밖으로 나섰다. 흥분한 산은 나가자마자 아내를 끌었다. 평지에선 겨우겨우 버텼지만, 결국 내리막에서 사고가 났다. 승용차도 헉헉대는 엘림빌라 쪽 비탈을 내려갈 때였다고 한다. 산은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길가 덤불로 총알처럼 튀어 나갔고, 아내는 서너 걸음 끌려가다가 그대로 넘어져 비탈길을 굴렀다.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나던지, 눈물이 나더라’고 하소연하는 아내에게 나는 오히려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하지 말라는 짓을 하니 당하지.” 아내는 여기저기 찰과상을 입고 있었다. 위로는커녕 핀잔까지 들었으니 눈에 쌍심지가 돋았다. ‘목줄을 놓지 미련하게 왜 잡고 있었느냐’라고 한마디 더 하려다 그만뒀다. 아내는 줄을 놓치면 산이 도망갈까 걱정해 줄을 아예 몸에 묶고 있었다.

나가서 다짜고짜 산의 궁둥이를 걷어찼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산은 슬금슬금 피했다. ‘저 아저씨는 나만 보면 저런다’는 표정 같았다. 더 부아가 나 쫓아가 한 대 더 패려하자 어느새 눈치를 채고 재싸게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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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분기 한 번쯤 집을 ‘탈출’하곤 했다. 실수로 대문을 잠그지 않으면, 귀신같이 알고 몸으로 밀고 탈출했다. 한 번은 이웃으로부터 산이 동네를 어슬렁거린다는 다급한 전갈을 받고 아내가 뛰어나갔다. 아내는 그 뒤를 따라 언덕배기를 서너 번 오르내렸다. 킁킁거리는 놈에게 다가가면 도망치고, 다가가면 도망하는 것이 꼭 ‘나 잡아봐라’라고 놀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나가서 살게 놔두자며 돌아왔지만, 아내는 온갖 개 간식을 들고나가 유혹했다. 배가 고팠던지 산이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자, 목줄을 잽싸게 잡았다. 집으로 가자고 달래고 얼러도 산은 버텼다. 화가 난 아내가 억지로 끌고 가려는 순간 산은 아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내는 그만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고, 꼬리뼈를 다쳐 한동안 양반다리를 할 수 없었다.

산은 떠나기 직전에도 아내를 힘들게 했다. 마지막 날 새벽 안 먹겠다는 놈에게 억지로 호박죽을 떠먹이려다가 물린 것이다. 아내는 중지와 약지의 손톱이 부러지고, 살점이 떨어져 지금까지 고생한다.

산은 지독하게 간섭받는 걸 싫어했다. 놈의 거의 유일한 관심사는, 어떤 개라도 그렇겠지만 냄새 맡는 것이었다. 특히 산은 사냥개의 본능이 강해 그런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냄새만 맡으면 막무가내로 달려갔다. 그럴 때면 장년의 남자도 끌려갔다. 얼마나 신중하게 냄새의 정체를 탐색하는지, 성에 차지 않으면 발로 살살 흙을 걷어내며 킁킁거렸다. 유혹하는 냄새일 경우엔 침을 줄줄 흘리고, 눈이 퉁방울처럼 커졌다.

다른 가족은 그런 산을 내뒀다. 그러나 건건이 그 꼴을 지켜봐야 하는 나는 그냥 두지 않았다. 너만 고집 있냐, 나도 있다는 심산으로 목줄을 잡아끌었다. 그럴 때면 네 다리로 버티는 개와 질질 끌기 위해 용을 쓰는 사람의 개콘 같은 대결이 벌어졌다. 대개는 궁둥이를 발로 걷어차듯 밀어버리는 것으로 그 볼썽사나운 대결은 끝났다. 둘 사이의 실랑이로 끝나면 좋은데, 마침 마주치는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 개의 역성을 들었다. 기왕에 나왔으면 개 하고 싶은 대로 놔두지 ~. 한 번 나갈 때마다 이런 대결을 댓 번씩 되풀이했으니 나와 산의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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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산은 고집이 그렇게 세도 점잖았다. 절대로 다른 개나 사람을 위협하거나, 설사 상대가 적의를 드러내도 ‘선빵’을 날린 적이 없다. 전기나 수도 검침을 하거나 정화조를 치우거나 할 때도 짖기는커녕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저래서야 어디 집을 지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산이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은 저에게 해코지할 때뿐이었다.

산은 힘이나 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 산을 먼저 공격했던 것들은 혼비백산 꼬리를 감추고 도망가야 했다. 한 번은 집 앞에서 진돗개에게 피습을 당했다. 그놈은 다짜고짜 산에게 달려들다. 견주인 여성이 목줄을 잡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목줄이 풀리면서 그놈은 산의 목젖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목줄에 잡혀 경계 태세 정도만 보이던 산은 순식간에 역공 모드로 전환해 위에서 그놈의 귀를 물었다. 눈 깜짝할 새였다. 진돗개는 아우성치며 발버둥을 쳤다. 양쪽 견주도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산은 놓기는커녕 물고 뒤흔들었다. 버려진 빗자루로 궁둥이를 두들겨 패자 그제야 놓았다. 진돗개는 귀가 너덜거렸다. 개 주인은 화도 내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두어 차례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상명대학교 뒷산에 갔다가도 봉변을 당했다. 목줄이 풀린 채 등산로를 돌아다니던 어떤 개가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나는 한 손으로 목줄을 잡은 채 그 개를 제지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0여 보 뒤에서 걸어오던 주인이란 자에게 빨리 와서 데려가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싸움이 붙었으니 그자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역시 목젖을 향해 달려들던 개를 찍어 누르며 뒷목을 물러버렸다. 이번에도 그놈은 발악하듯 깨갱거리다가 내가 나뭇가지로 산을 두들겨 패 떼어놓자 겨우 도망쳤다. 나는 견주란 자에게 핀잔을 쏟아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던지 제 개에게 목줄을 걸고 궁둥이를 한 대 걷어차더니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산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동네에서 산은 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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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건방져 보일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고 독립적이었지만, 멍청할 정도로 너그러웠다. 동물의 가장 위험한 순간이 먹이를 먹을 때라지만, 산은 먹는 걸 두고 싸운 적이 없었다. 오히려 먹겠다고 하는 것들에게 먼저 양보했다. 어린 강아지가 제 밥을 먼저 먹으려 하면 한발 물러서 지켜보기만 했다. 산은 두 살 때 이웃집 암컷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짝짓기를 해 새끼를 봤다. 댓 마리 새끼 가운데 한 놈을 받았는데, 산은 그 아이를 나름 정성껏 돌밨다. 제 자식인 걸 알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밥때가 되면 뚝배기만 한 놈이 먼저 밥을 다 먹고 물러설 때까지 기다렸다. 마당 밥통에 먹이를 넣어주면 어떻게 알았는지 참새 딱새 등이 북새통을 이루곤 했다. 산은 그런 새들을 애써 쫓아버리지 않았다. 그가 다가가면 새들이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만 쥐에게는 양보가 없었다. 밥그릇 주변에는 가끔 처참하게 물려 죽은 쥐가 널브러져 있곤 했다.

뒷집도 한 마리 길렀다. 유기됐던 것이어서 그런지 겁이 많고 경계심이 강했다. 집 근처에 누군가 다가오기만 하면 거의 기절할 정도로 짖었다. 택배 아저씨들에겐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오토바이 라이더들은 갑자기 울부짖는 소리에 놀라 사고를 낼 뻔하기도 했다. 사람이 오가면 펜스에 앞다리를 걸치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산과는 좋은 대조를 이뤘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앞의 앞집 아저씨는 보기만 하면 산을 상남자라고 칭찬했다. 내가 보기에도 산은 그랬다.

우리 동네에서 산만큼 잘 생긴 놈은 못 봤다. 상명대 아랫동네 시베리안허스키나 견줄 수 있을까? 산책하다 보면 반드시 한 번쯤 ‘그놈 참 잘 생겼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실제 산은 이목구비가 큼직하고 뚜렷한 데다 여간해선 짖지 않고 의젓한 것이 상남자라는 칭찬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게다가 다른 동물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제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기품까지 느끼게 했다. 가까이 다가오거나 몸을 만져도 경계하지 않으니, 산책길에서 만나는 견주들은 한결같이 발걸음을 멈추고 관심을 표시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태도가 못마땅했다. 삼시 세끼 때맞춰 밥이나 주고, 아침이면 산책이나 데리고 나갔다 오면 됐지, 더는 저의 생활에 간섭하지 말라는 식이니 말이다. 곁을 주지도 않고, 말도 안 듣고, 고집은 황소 같으니 누가 누구의 주인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개 머슴’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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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이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성경 말씀처럼 산은 먹을 것, 입을 것에 안달복달하지 않았다. 하늘의 새처럼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았고, 들의 들국화처럼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먹고 필요하면 아름답게 단장했다. 이에 비해 만물의 영장이라고 뻐기는 나는 먹고사는 일에 얼마나 애면글면 속을 끓여왔던가. 산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한 끼 먹을 사료와 물만 있으면 됐다. 냉장고에건 통장에건 무언가를 쌓아두지 않으면 불안이 쌓이는 종자와는 달랐다. 산은 어제에 매이지 않고 내일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오늘에 만족하며 오늘 할 일에 충실했다. 그렇다고 약삭빠른 현실주의자는 아니었다. 주어진 만큼 만족하며 살았다. 본능에 충실했지만, 욕망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그랬으니 떠날 때도 편했던 것 같다. 오고 감에 미련도 없고, 아쉬움도 없고, 서러울 것도 없었다. 고대 그리스의 개 견(犬) 자 견유(犬儒)학파의 디오니게스가 그랬듯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 귀찮게만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그들처럼 관습과 규범과 의례에 규제를 받는 인간을 멸시하지도 않았다. 사람처럼 사는 것도 있고, 개처럼 사는 것도 있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 같았다. 떠나는 날 죽을 먹이려던 아내를 문 것은 이런 본능, 이런 철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산은 갔다. 이제 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궁금하지도 않다. 산도 그럴 것이다. 견생이든 인생이든 다를 게 무엇인가. 다르다고 한들, 주어진 한 생 제 갈 길 가는 것. 그 길 오롯이 간다면 비교하고 따지고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특히 산은 그 의젓함과 기품으로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었던 바, 나는 그걸 본받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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