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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Apr 13. 2020

할미야, 산이랑 '동천' 가자

11.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뜬금없이 백사실 가겠다고 하는 거야.” “왜?” “몰라, 엄마가 백사실 가자고 한 거 아냐?” “백사실 이야기는 한 적 있지만 가자고 한 적은 없는데….” “오늘 주원이가 산이 할머니네서 딱 하루만 자고 오겠다고 그랬어. 백사실 가야 한다고.” 

그렇게 아이는 들이닥쳤다. 우리는 다짜고짜 앞장서는 아이 따라 영문도 모르고 백사실로 가야 했다. 아이 엄마가 초등생이었을 때 그곳에서 놀았던 것을 주원이가 알 리 없었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백사실 가자고 했을 리도 없다.  

산이도 동행했다. 백사실 초입

에라, 잘 됐다. 이참에 제 엄마가 저처럼 꼬맹이였을 때 놀던 곳에 그 딸내미 데리고 놀아야 겠다. 

아이 엄마가 초등학교 5학년 1학기를 마칠 때였다. 아이는 친구들과 백사실에서 책거리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산이 할머니가 된 아이 엄마는 대꾸는 안 했지만 기가 찬 표정이었다. 꼬맹이들이 무슨 책거리야, 옛날 천자문, 동몽선습 등 아이들 필독서를 깨칠 때마다 선생님과 학동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책거리인데~, 그것도 그 후미진 백사실에서. 


백사실을 가자면 집에서 비탈을 내려와 대로(세검정로)를 건너야 하니, ‘산이네’ 영역에 포함될 순 없다. 그러나 옛 지번으로 따지면 같은 신영동, 도로지명으로 따져도 세검정로이니, 크게 보아 같은 마을이라 할 수 있겠다.

백사실은 신영동 개천가의 중앙빌라 마을 끝자락 현통사 계류 건너편이다. 세검정천(홍제천 상류)에서 기껏해야 10분 거리지만, 일단 들어서면 오리무중 심산유곡이다. 산줄기가 겹으로 에워싸고 있고,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인간 세상이 어딜까’ 싶을 정도다. 


'나는 자연인이다'

'그곳엔 어른 키 두 배 만한 바위에 ‘백석동천’이라는 각자가 있다. ‘동천’은 배부른 선비들이 이상향으로 삼았던 곳. 백석동천은 그러니까, 백악산이 숨겨둔 선계라는 뜻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 같은 곳이다. 

도화원기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동천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입구를 찾기 힘들다. 폭포나 절벽으로 막혀 있지만, 눈밝은 이들만이 찾을 수 있는 석문이나 협로가 반드시 있다. 그 문은 반드시 계류를 끼고 있고, 사철 흘러내리는 옥계수엔 복사 앵두 혹은 능금 따위의 꽃잎이 떠내려온다. 석문을 지나면 제법 너른 공간이 나온다. 계류에 씻긴 부용 형상의 반석이 있어 세월을 잊고 유유자적하기에 맞춤하다. 대개 그런 동천에는 몇 가구 붙여먹을 땅도 있다.

현통사 지나 무릉계로

백사실은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개천에서 현통사까지는 가파른 산길이다. 지금도 계단으로 이어지지만 가파르긴 마찬가지다. 현통사 옆 계류는 거대한 반석으로 말미암아 폭포를 이루고 있다. 그 물길을 건너야 백사실이니, 대개는 그곳에서 발길을 돌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계류를 건너 반석에 올라 숲으로 들어가면 풍광은 일변한다. 물길은 순하고, 산세는 후덕하며, 숲길 따라 복숭아꽃, 앵두꽃 진달래 개나리가 지천이다. 들리느니 물소리 새소리요, 닿느니 계류에 반석이요, 보이느니 꽃들이고, 넘치느니 그 향기라, 그야말로 별유천지다. 

백사실 유래를 두고 말이 많다. 백사 이항복이 은퇴 

엄마가 저 만할 때 걷던 길을 따라 야무지게 걷는다

후 그곳에 정자 짓고 책 읽었다 하여 백사실이라 했다는 게 통설이다. 백사실 가운데엔 농구장 서너 개 넓이의 인공연못이 조성돼 있고, 연못과 계류를 지긋이 내려다 수 있는 곳에 집터가 있다. 남아 있는 주춧돌이나 돌기둥만 봐도 거각에 고루까지 갖췄음을 알 수 있다. 웬만한 권력자라면 할 수 없는 토목공사였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백사가 그곳에 잠깐이라도 다녀갔다는 기록은 없다. 게다가 백사의 집은 지금의 인왕산 밑 서촌 필운동에 있었으니, 굳이 이곳에 별장을 지을 이유도 없었다. 지을 만한 재력도 없었다.

우리 지명에서 ‘실’은 산이나 계류로 둘러싸인 공간을 뜻했다. 그곳에 사람들이 터를 잡으면 ‘마을’이 붙는다. 경북 봉화의 닭실마을, 원주의 작실마을, 문경의 나실마을, 고령의 구실과 아룻개실마을 등이 그것이다. ‘실’이 붙은 마을은 대개 유서도 깊어, 벌족의 본향 노릇을 했던 곳이 많다.

 

백사실엔 그런 벌족이 들어선 적이 없다. 마을이 들어설 공간도 없다. 은둔자들이 숨어들 만한 공간뿐이다. 실제로 백사실에서 계류를 거슬러 10분 정도 올라가면 여나믄 가구가 비탈밭을 일구며 사는 마을이 있다. 언젠지 모를 옛날부터 세상사에서 손발 씻고 눈귀 씻은 이들이 정착한 곳이다. 울타리는 앵두고 이랑마다 산도화다. 

그런 곳에서라면 천수를 누리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시절 천수란 백 살. 백 살을 너끈히 산다고 하니 ‘백살실’이 되었고, 그것이 부르기 좋게 백사실이 된 것 아닌가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자신은 없다. 그러나 명사의 이름에 기대어 명망의 팥고물이나 붙여볼까 하는 것이 싫다. 그리고 백사실은 그렇게 속된 공간도 아니다.  

늙고 할 일 없으면 말만 많아진다더니 너스레가 길어졌다. 아이가 기겁하겠다. 아무튼 그 후미진 곳에서 책거리를 한다니 부모로서는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천하무적’ 중딩들이 몰려다니며 사고를 치곤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곤 했었다. 우리는 아이가 떠나고 30여 분쯤 뒤 아이가 갔을 그 길을 따라 뒤를 쫓았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났다. 오늘은 이제는 엄마가 된 딸의 아이 손을 잡고 그곳으로 떠난다. 부암김밥집에서 김밥 세줄과 오뎅 한 그릇 마련해, 아이 덕분에 동천으로 소풍을 간다. 그러고보니 동천(洞泉)은 동천(童泉)이다. '천진'이 샘처럼 솟아오르는 곳, 아이가 있으면 동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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