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정글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나면은 악어떼가 나올라.” 일부러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아이가 따라부르도록 유도한 것인데, 아이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한때 입에 달고 다니던 동요인데, 요즘은 관심이 없다. 아이 할미가 도룡농의 서식을 알리는 입간판 앞에서 아이에게 도룡농이 어떻고 개구리가 어떻고 읽어주고는, 다시 한번 동요를 불렀다. ‘맑은 개울 나타나면은 도룡농떼 나올라.’ 역시 관심이 없다.
백사실엔 산도화, 개나리, 산벚 그리고 진달래가 만개했다. 길가 양쪽엔 노란 개나리, 산자락엔 연분홍 진달래, 산중턱엔 산벚이 환하다. 저만치 딸 아이가 춤추며 놀던 곳이 보인다. ‘저기가 엄마가 주원이만 할 때 놀던 곳이 저기야.’
그땐 아이들이 과자나 먹고 노래나 하면서 놀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아이가 다섯이었던가 보다. 당시 1990년대 말 한참 잘 나가던 댄스뮤직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큼직한 스테레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도 옆에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새우깡 오징어땅콩 따위의 과자와 음료수 더미만이 아이들임을 알려줬다. 돌아와 물어보니 노래는 당시 SES가 부른 노래 '아임유어걸'이었다. 제목이 착잡했다. 아이들은 음악이 나오는 동안 일제히 멋대로 춤을 추다가 노래가 중단되면 그 상태로 그대로 멈춰서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꽤나 더운 날이었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았다. 들키지 않으려 웅크리고 있다보니 우리가 먼저 지쳤다. 걱정할 게 없었다. ‘우리도 놀다 오자’며 능금마을을 지나 북악스카이웨이 쪽으로 산책에 나섰다.
아이는 개울 쪽으로 할미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기서 엄마가 친구들이랑 춤추며 놀았다니까!’ ‘할머니, 연못에 가자.’ 엄마의 어린 시절을 고집할 수 없었다. 아이에겐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산처럼 크고 바다처럼 넓은 엄마인데, 나를 번쩍번쩍 안아주고 업어주는 엄마인데 어떻게 나만 했다는 거지? 딸이 춤추던 곳에서 그 아이가 춤추며 노는 모습을 그렸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마른 흙이 허옇게 드러난 연못 터로 내려왔다. 그제야 아이는 폴짝폴짝 뛴다.
연못가에 있는 돌 탁자에서 김밥을 먹었다. 박새 곤줄박이 등 작은 새들이 날아왔다. 아이는 새처럼 쉴새없이 종알댔다. 먹을 게 들어가지 힘이 났나보다. 김밥을 던졌다. 새는 몇 번 입질하더니 날아갔다. 이번엔 산이에게 던져줬다. 산이도 한 두 번 킁킁거리더니 물러섰다. 아이는 시큰둥하더니 금새 득의의 표정으로 바뀐다. ‘너희가 김밥 맛을 어찌 알랴!’
도룡농 탐사에 나섰다. 계류를 따라 더 올라가야 했다. 이번에도 아이는 자꾸 주저앉았다. 돗자리 깔고 놀자~ 칭얼댔다. ‘바로 조~기’라고 달랬지만 아이의 입은 새부리처럼 삐죽 나왔다. 무동을 태워야 했다.
일찌감치 따듯해졌지만 도룡농이 나올 때는 아니었다. 5~6년 전만 해도 백사실엔 ‘개도맹 보호구역’이라는 환경단체의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개구리와 도룡농 그리고 맹꽁이를 줄인 말이었다. 지금 팻말엔 도룡농만 남았다. 맹꽁이는 보지 못했지만 개구리는 여전하다. 포도송이처럼 알들이 뭉쳐있는 것이 도룡농이고, 투명한 대롱에 구슬같은 것들이 일렬로 빼곡한 것이 개구리 알이다. 어릴 적만 해도 어른들이 소주 한 병 들고가 개구리 알을 안주삼아 먹었다는데, 지금은 세검정천 오리들이 도룡농 개구리 알들은 모조리 걷어 먹는다고 한다. 겨우 두 군데서 도룡농과 개구리 알을 발견했다. 그 아이들만이라도 부화하면 열흘쯤 뒤엔 계류엔 올챙이가 바글댈텐데.
아이는 다시 돗자리로 돌아갔다. 잣나무 아래 너른 평지에 돗자리를 깔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할머니 가방 줘봐.’ 가방을 열더니 잽싸게 막대 초콜릿을 꺼냈다. 얼굴이 양지꽃처럼 환해졌다. ‘할머니 이거 먹어.’ 너그러워지기도 했다. 몇 개 먹더니 양말 신은 채 흙바닥에서 뛰어다닌다. ‘춤? 이렇게 췄어?’ 아이는 집터에서 우리가 연신 떠들어대던 엄마의 춤 이야기를 귀에 담아두고 있었다. 초콜릿이 더 급했을 뿐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동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할머니는 ‘나의 고향’을 불렀다. 할아버지도 따라불렀다. 아이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 네 나이 때 이런 곳에 오면 이런 노래가 어울리지. 그러나 이게 웬 망측인가. “추~억 속의 버스정류장, 눈물 젖은 버스를 타면, 당신이 생각나 차창밖에 비가 내리네.” 유산슬의 ‘이별의 버스정류장’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열창한다. 돌아서 궁둥이까지 씰룩거린다. 싫다, 유산슬이 싫다.
아이가 천천히 커야 하는데, 너무 빨리 큰다. “멈춰라 청춘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는 그렇게 외쳤다던가.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아이야 거기서 멈춰라, 너는 진실로 아름답다.’ 그러나 돌아보니 25년 전 춤을 추던 바로 그 아이다. 춤추던 아이는 엄마가 되고, 그 아이는 오늘 동천에서 춤을 춘다. 삶이란 게 그런 거지, 그렇게 돌고 또 이어지는 것. 나른한 봄햇살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제발 천천히 커 달라고, 속도를 줄여달라고 기도하며.
집에도 처마 밑 복숭아꽃이 한창이다. 살구꽃은 이미 모두 졌고, 아기 진달래 꽃은 시든 채 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복숭아만 팝콘처럼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라일락은 솜사탕 같은 꽃송이가 잔뜩 부풀어 있다. 그러나 아이는 당최 관심이 없다. 저만한 꽃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