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병찬 Feb 05. 2022

與兒爲春, 아이와 함께 봄이 되련다

67.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절기로 따지면 음력에서 새해의 시작은 정월 초하루가 아니라 입춘이다. 동지에서 정점에 이른 겨울이 소한 대한을 거치며 맹위를 떨치다가 시나브로 꺾이기 시작해 새 계절로 반전하는 날이다.

농경 시절, 아니 곰탱이 할배가 방퉁이 만했을 때 중장년과 노년은 물론 코흘리개 아이들까지도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기도 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한 줌이라도 더 받으려고 그 아이들은 얼마나 볕 바른 양지녘을 찾았던가. 토담 툇마루엔 옹송거리는 아이들이 막 부화한 올챙이 떼처럼 바글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어딜 가나 실내에 들어서면 반소매 반바지 차림이다. 방퉁이도 집에만 오면 양말부터 벗기 시작해 겉옷 속옷 내던지기 바쁘다. 순식간에 내복 차림으로 바뀐다. 지은  52년째인 산이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윗목의 물그릇이 얼어붙을 지경은 아니다. 실내 온도는 10~13 안팎이니 늦가을 정도는 된다. 그때처럼 파고 들어가 궁둥이,  그리고 손을 녹일 아랫목과 이불이 없으니 체감온도는 더 썰렁하다. 국민연금뿐인 부부의 수입  지출이라는 원칙에 따른 난방의 결과다.

얘들처럼 놀아주면 얼마나 좋아

산이네가 겨우내 짱짱한 한 줌 햇볕을 맹렬히 그리워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제나저제나 입춘을 고대하며 개발새발 대춘부를 읇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지가 지나고부터는 아침마다 거실로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과 햇살의 밝기와 온기를 챙기기도 한다. 입춘인 오늘 앞집 지붕의 태양열 온수탱크 위로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한 건 9시 반. 동짓날 10시 15분이었으니 엄청난 발전이고 은총이다.

나는 섣달그믐 석양의 여명조차 사라지고   방에 혼자 틀어박혀 한동안 청승을 떨었다. “가면 반드시 돌아오니 해이고, 밝으면 반드시 어두우니 밤이로다. 그런데 섣달그믐에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하는  대한 그대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광해군이 즉위 8 되던  증광회시에서  전무후무하게 감상적인 책문을 떠올리며  청승이었다. 신축년은 어이 지나갔고, 임인년은 어찌 헤쳐갈 것인가.

하지만 차가운 어둠 속에서 드는  반성도 아니고 다짐도 아니었다. 개미 무덤에 빠진 개미처럼 졸음의 늪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가끔 마른번개 치듯 반짝 정신이 들곤 했지만 ‘내년엔 술을 정도껏 마시자 정도의 다짐만 새기고 나면 다시 가수면 상태가 되었다. 가는 것도 모르고 오는 것도 모르고 해를 보내고 해를 맞은   때문이었다.

 아쉬움을 오늘 입춘의 양광 아래서 다시 되새기려 한다.

아이는 신축년   113.7㎝에 몸무게 19.8㎏이었던 것이 지금은  121㎝에 몸무게 21㎏이다. 키가 무려 7 가까이 컸다. 지난해 9 검진    키는 168.5㎝이었다. 늙으면 쪼그라든다지만, 젊었을  170㎝이던 것이 1.5㎝나 줄었다. 아이는   햇볕으로도 하늘로 뻗고, 할배는 아무리 햇볕을 받아도 땅으로 진다.

아이에겐 이미 세상을 받아들이는 제 중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기준은 재미다. 신정을 앞두고 아이는 길동 할머니 집에서 5일간 있다가 돌아왔다. 세검정 산이네서는 낮에 왔다가 밤에 돌아갔다. 아이가 자고 가자고 했으면 하룻밤 머무는 건 문제가 아니었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아이는 앞장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길동에서 재미있었구나. 다루도 있고, 친척 언니들도 있고, 물고기도 있고. 길동 할머니가 재밌게 놀아주셨어?” 은근히 떠봤는데, 아이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응.”

“그럼, 산이 할머니는 어떤데.”

“…….” 아이는 한참을 뜸 들였다. 그러더니 마지못한 듯 이렇게 한 낱말 툭 뱉었다.

“조금.”

순간 할머니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심란하겠지~.

이럴 화제를 돌려야 한다.

“어린이집은 어때?”

“밋밋해.”

아이는 이제 곰팡내 나는 것들과는 헤어질 때가 됐나보다. 그래도 곰탱이 할배는 기를 쓰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이 가상했던지, 아직 외면하는 것 같지는 않.

할아버지 콱 물을꺼야!

설날 밤 마곡동 왕할머니네서 떠날 때였다. 새벽에 내린 눈이 길가에 치워져 쌓여 있었다. 아이는 눈 위를 두어 차례 깡총거리더니 맨손으로 눈을 뭉쳐 누군가에게 던지려 한다. 주변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마곡동 할아버지 둘이 있었다. 눈덩이는 나에게 날아왔다. 피하는 척하면서 맞아줬다. 아이는 깔깔거리다가 다시 눈을 뭉쳐 던진다. 이번엔 돌아서 궁둥이 쪽에 맞아주었다. 그 많은 할배들 중에서 내가 선택받은 것이다. 아직은 아이에게 나는 개구진 친구다. 재미가 남았다.

할머니, 나처럼 해봐. 재밌게.

아이가 차에 올랐다. 떠나려는 승용차 창문이 열리며 아이가 손을 흔든다. 키는 컸지만 손은 여전히 달걀만 하다.  손바닥 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 손이 따듯해.” 오른손도 내민다.  손을 잡았다. “따듯해.” 나는  말을 잃었다. 올해도 방퉁이 덕에 따듯하겠구나. 아이는 손이 따듯했지만, 할아버지는 마음속까지 뜨듯했다.

입춘일 광주일고 출신 친구들의 톡방에서 봄살처럼 빛나는 입춘첩 하나 얻었다. 與物爲春(여물위춘), 직역하면 ‘만물과 더불어 봄이 된다 정도가  것이다. 공자가 했다는 말인데, 천하 만물과 봄의 따듯한 관계를 이루라는 것이다. 봄은  나무와  나비가 그렇듯이 만물이 더불어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고 꽃피우는 계절이다.  힘의 원천은 바로 따듯함 혹은 따듯한 관계다. 여기서 따듯함이란 아이들 세계에서 ‘재미 아니고 무엇일까. 눈물도 미움도 아픔도  방에 날려버리는  재미다. 노소의 벽을 넘어 손을 맞잡고 하나가 되게 하는 것도 재미다.

與物爲春을 올해의 입춘첩으로 삼기로 했다. 다만 物(물)을 兒(아)로 바꿔야겠다. 아이와 함께 봄이 되련다! 재미가 새싹처럼 송송 돋아나고, 재미가 꽃으로 펑펑 피어나도록 해야겠다. 그래야 곰팡내 나는 곰탱이 할배의 내구연한도 조금은 늘릴 수 있을 것 아닌가.

與兒爲春이다!

언니들 틈에서 성묘. 의젓하다.


작가의 이전글 유년의 숲속, 신비한 중강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