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반갑다, 이룬

같은 날 5.13 <오전-점심 무렵>

by 이프로

스페인으로 넘어 온 이후로 작은 호숫가를 따라 난 길을 걸었는데 적당한 간격으로 나타나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마음이 너무 유쾌했다.

정말로 다시 돌아왔구나.

이제야 나의 세번째 까미노가 시작하는구나.

이룬 마을의 산책길인지 유난히 아기를 데리고 나온 유모차와 노인들이 많았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하고 일부는 벌써부터 ‘부엔 까미노’로 나를 응원해 주었다.

IMG_6091.JPG

이룬을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이룬 성당이 나왔다.

여기서 순례자 끄레덴시알을 받아야 한다.

성당이 커서 입구 찾기가 어려워 한바퀴를 뱅글 돌고있자니 모든 문이 닫혀있다.

그중 하나를 잡고 밀어보니 신기하게 열린다.

그리고 마침 나오는 신부님.

IMG_6096.JPG


IMG_6097.JPG


IMG_6098.JPG


올라!’ 이번 까미노의 올라.

사람 좋게 생긴 신부님은 나가다 말고 다시 나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와 여권을 받아 기록하고는 쎄요를 찍은 끄레덴샬을 건네 주고는 환하게 웃었다.

‘굿 럭!’

예스, 아이 니드


말이 통하지 않아 대화는 못했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알고 무척 놀라는 눈치다.

프랑스 얘기를 아직 들은 모양이군.

신부님은 바쁜 길을 찾아 나갔고 나도 다시 화살표를 찾아 걸었다.


이룬 도심을 가로지르는 까미노 노르떼 도입 부분의 길에서 보다폰 대리점을 만났다.

이제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상점에 들어가서 직원에게 물으니 일단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라고 안내했다.

상점엔 삼성 폰들도 있었지만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었다.

5, 6 전만 해도 해외에 나가보면 지구인이 삼성폰을 쓰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정도로 흔하게 마주쳤는데 이젠 확실히 중국의 화웨이나 다른 나라의 저가 제품들이 주종을 이루고 삼성 제품은 프리미엄폰의 위치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보였다.

10유로를 지불하고 한달짜리 스페인 유심을 구입했다.

새롭게 스페인 유심이 장착된 전화기를 챙겨들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구글 지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있게 되었으니 이젠 겁날게 없었다.


배가 고팠다. 새벽에 공항에서 먹은 빵과 커피 뿐이어서 점심을 챙겨야 했다.

그리고 아내와 통화한지 만 하루가 넘어가고 있었고 제대로 까미노 시작을 알리고 싶었다.

대로변에 난 골목길 어귀에 적당해 보이는 바르Bar가 보였다.

휴대폰 충전도 할겸 밥도 먹을 겸 들어가서 하몽 보까디요와 맥주 한잔을 시켰다.

IMG_6100.JPG


방금 유심을 구입하긴 했으나 한달 동안 사용할 유심이므로 데이터를 아낄 생각으로 ‘위피’ (와이파이) 번호를 물으니 알려줄 수 없단다.

헐…

주문한 맥주와 빵을 먹으며 충전기를 꺼내 이번에는 전화기 충전을 좀 하자고 콘센트 위치를 물으니 충전도 할수 없다고 한다.

뭐 이래, 이거?


나에게는 엄청나게 반가운 스페인과 까미노였지만 여자 주인장은 얼굴에 삶의 고단함이 찌들고 도시 생활의 각박함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생활이 고단한가보다.’

모든 스페인 사람이 내게 까미노 천사일 수는 없겠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바르였지만 까미노 첫 일정의 설레임을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설마 ‘쎄요’ 는 하며 끄레덴샬을 건네주며 스탬프 하나 찍어줄 것을 요구하자 그제서야 여자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유쾌하게 쾅 하고 찍어 주었다.


다시 거리로 나와 스페인 북부 초여름 한낮의 거리를 걸었다. 새벽에 일어나 공항버스에 국내선 비행기에 스페인 국경 도시를 찾아서 물어물어 다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이후의 첫 여정이라 피곤할 터였지만 별 탈없이 시작점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까미노 길에 들어섰다는 설레임이 피로를 잊게 했다.


그렇게 걷다가 오늘의 목적지인 이룬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헉…

문이 잠겨있다. 네시에 오픈이고 나는 두시도 채 안된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차량이 바삐 오가는 도로가에 위치한 알베르게 앞을 서성이며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으나, 곧바로 길을 재촉해 걷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가는 데 까지 가보자.

아직 한 낮 인데 설마 가다가 또다른 알베르게가 나오겠지.

IMG_6101.JPG


IMG_6102.JPG


이런 충동적이고 기분내키는대로의 결정은 대가를 톡톡히 치루었다.

북쪽길에서 여정을 계획할 때는 항상 지도와 알베르게 정보를 확인해 가면서 해야 한다.

프랑스길 생각하고 마음 가는대로 길 뻗은대로 가자고 쉽게 결정을 내리면 힘들고 비싸고 위험한 일정으로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로 이 첫날이 그랬다.


걷다가 잠시 부엔 까미노 앱을 꺼내서 지도를 보고는 거리가 적당하여 Pasaia까지 가기로 했다.

지도를 꺼내본 것 까지는 칭찬할만 했지만 앱에서 친절히 알려주는 설명을 다 읽어보지 않았다.

거리는 이룬 알베르게에서 15키로 도 안되는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 사이에는 프랑스 길의 피레네 산맥에 버금가는 하이스키벨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고난이도의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북쪽길을 힘들게 여기게 하는 것의 하나는 자주 마주치는, 하루에도 서너 개쯤은 예사로 나오는 산들이다.

이 산들의 높이는 대개 500미터 안팎으로 결코 높다고 할수는 없다.

하지만 울릉도 성인봉을, 혹은 섬 산행을 해본 이들은 안다.


바닷가에서의 산행은 육지에서의 산행보다 훨씬, 훠얼씬, 더 힘들다.

왜냐하면 해수면 0에서부터 시작하여 500미터까지의 정상까지 에누리 없는 500미터를 올라야 하고 바다에 접한 산들의 경사는 대개 몹시 가파르기 때문에 능선을 걷는 쉬어가기 코스 없이 계속 오르고 내리는 여정을 반복해야 하기때문에 육지에서의 산보다 훨씬 힘든 것이다.

IMG_6113.JPG


예를 들어서,

내가 자주 다니는 설악산 서북능선 종주를 한계령에서 시작할 때가 있다.

한계령이 800미터가 넘는다.

시작할 때 이미 800미터는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울릉도의 성인봉 등산은 도동항에서 시작하면 0부터 900미터 대까지 가파르고 험한 섬 산길을 올라야 해서 오르는 높이는 900미터 쯤으로 비슷하지만 난이도는 전혀 다르다.

한계령에서 대청봉을 오르는 길은 서북능선으로만 접어들면 대체로 평평한 능선을 걷는 것이라 울릉도의 산행이 훨씬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전 05화5. 노란 화살표와의 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