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산을 오르며 바다를 바라보며

같은 날 5.13 <오후-저녁>

by 이프로

Irun 이룬 시내를 빠져나와 산길을 오르면서 배낭에서 등산 스틱을 꺼내 들고 모자와 장갑을 착용하며 제대로 무장을 했다.

곧이어 익숙한 스페인 농가의 풍경이 나왔지만 산으로 들어가자 가파른 산길이 숨을 몰아쉬게 했다.

봄햇살 받은 산비탈에는 고사리가 지천이었다.

생전의 어머니가 보셨으면 ‘실하다’ 하시며 꺾어가자고 하셨을 법한 통통한 고사리가 한도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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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고사리도 길이 힘들어지자 눈에 안 들어온다.

어렵게 이름 모를 산 정상에 이르자 전망대와 공원이 나왔다. 작은 교회도 있고 한쪽에는 도로도 산 아래로 이어져 있어서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차를 타고 올라오는 듯싶었다.

공원의 피크닉 테이블에는 세명의 순례객이 앉아 땀을 닦으며 간식을 먹고 있었다.

이번 까미노에서 만난 첫 동료 순례객이다.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으로 폴란드에서 온 중년 부부와 남자의 누이인데 부부는 날렵했으나 누이가 힘들어하는 기색이었다.

나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땀을 닦고는 먼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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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부터 가파른 오르막길 산길이 이어지고 GPS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온 지도를 확인해 보자 길은 숲 속에 난 산길과 왕복 2차선의 지방도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겹치는 듯 보였다.

숲길은 그늘이 져서 시원한 대신 좀 돌아가는 듯 보였고 차도는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 편해 보였다.

노란 화살표와 그늘진 숲길이 산 정상으로 계속 인도했는데 오후가 되자 새벽부터 움직인 피로감이 누적되어 밀려왔다.

딱 요기까지만 걷고 오늘은 쉬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산속이라 퇴로가 없고 당연히 마을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망대를 지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고개를 하나 넘을 때마다 황홀한 바다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는데 그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오늘 이런 힘든 일정을 감당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더군다나 가파른 산길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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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하나 넘어서고 나면 이제는 그만이겠지 하는 기대를 품기라도 할까 봐 그다음 고개가 또 나왔다. 그렇게 하이스키 벨 산 정상을 찍고 나서도 오르막 길은 계속 이어지고 이어졌다.

GPS 지도를 꺼내 확인해보니 Pasaia 파사이아 마을은 바닷가에 있었다.

한숨밖에 안 나왔다.

지금 이렇게 산 속인데 바닷가 마을은 너무 멀고 아득했다.

그런데 마침 내가 걷던 자동차 도로 옆으로 오솔길이 나타났고 10대 청소년으로 보이는 백인 아이들 5-6명이 올라왔다.


어디서 온 아이들일까?

“영어 할 줄 아니?”

모두가 고개를 돌려 한 여학생을 가리켰다.

“내가 조금은 할 줄 알아요.”

“그래, 잘됐구나. 혹시 이리로 내려가면 파사이아 마을이 나오니?”

내가 계속 가야 하는 내 앞에 펼쳐진 길은 계속되는 오르막길이었고 그 아이들이 올라온 길은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내리막길이었다.

나는 제발 그 아이들이 올라온 길이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네, 맞아요. 이리로 쭉 가시면 돼요.”

아이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계속해서 웃고 떠들며 올라갔다.


그럼, 그렇지. 이런 산속에 지름길이 없을 리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아이들이 올라온 길로 달려 내려갔다.

그렇게 30여 분쯤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싸한 기분이 들면서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고,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은 희미해지더니 사라지다시피 했고 지천으로 널린 소와 말, 양들이 간간히 목에 맨 워낭을 울리기만 할 뿐이었다. 짐승들을 위한 축사만이 드문드문 나타나고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 아이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아이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눈 것은 과연 있었던 일인가?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내 옆에는 끝없이 펼쳐진 깐따브리아 해안의 절경과 싱그러움을 뿜어대는 초록빛 목초지, 그리고 이발소 그림처럼 그 위에 흩뿌려진 소와 말과 양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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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달리듯 내려간 그 내리막길을 고스란히 다시 올라와 원래의 자리에서 다시 파사이 아까지의 '고난의 행군'을 이어갔다.

정말 아이고, 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택시라도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축복처럼 오늘의 숙박지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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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도록 힘든 첫날인데 가파른 내리막 끝 바닷가 마을에 아슬아슬 서있는 ‘산타 아나’ 알베르게와 순례자들이 널어놓은 빨래가 펄럭이는 풍경은 감격적이었다.

던지듯 배낭을 입구에 내려놓고 로비에 들어서자 도착한 지 한참이 된 듯 다른 순례자들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평안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에게 따뜻한 인사의 말과 지친 기색의 내 표정에 위로하듯 따스한 눈길을 보냈으나 역시 또 뭔가가 잘못된 듯한 느낌.

여기서 더 이상 잘못될 일은 없을 텐데…

로비에서 팔고 있는 스페인에서의 첫 산미구엘 맥주를 마셨다.

그 시원함과 상쾌한 쌉싸름한 맛에 얼마라도 기꺼이 지불하고 싶었다.


그런 나를 불쌍히 바라보던 호스피탈레로는 내 뒤에 온 다른 순례자 커플에게도 내 옆에 낮으라고 말했다.

우리들에게 할 말이 있는 듯.

그리고 알베르게 입구에 붙여둔 ‘꼼쁠리또’ 사인을 가리켰다.

“위아 풀, 아임 쏘리”

헐….

베드가 없다.

다 찼다.

잘 수가 없다.

더 가야 한다.

바다를 건너서 더 가야 한다.


다행인 건 나 혼자가 아니라 내 뒤를 따라온 캐나다 노부부 역시 나와 같은 신세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너무 지쳐하는 모습을 보이자 호스피탈레로는 바다 건너 다음 마을까지 걷지 말고 원한다면 자신이 추천하는 인근의 민박집에 자리가 있으니 그리로 가서 것을 권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부부와 나는 소개받은 민박집으로 옮겨서 땀으로 범벅인 몸부터 씻었다.

오후 여섯 시가 넘어서 침대를 배정받고 마당이 없는 집 이어서 빨래를 말릴 만한 적당한 곳이 없었다.

캐나다 부부가 하는 대로 따라서 침대 옆 난간에 널어두었다.

방에서 같이 자게 된 캐나다 커플과 지친 몸을 이끌고 나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첫 뻬레그리노 메누, 순례자 메뉴였으나 지쳐서 반도 먹고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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