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주년 기념 10K 마라톤

머니투데이 주최 삼일절 기념 10K 대회 참가

by 이프로

지난주에는 나의 생애 첫 금주 1주년과 생일이 있었다.

아내가 정성껏 생일상을 차려주고 아이들은 아빠 생일이라고 선물을 주었다. 평소에도 가족들과 매일 식사를 같이 하지만 일 년이 넘도록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 식사 자리는 늘 즐겁고 유쾌한 대화가 오고 갔다.

맛난 음식이 가득한 생일 상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굳이 술이나 나의 금주를 화제로 꺼내지는 않지만 내가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된 것에 대해 얼마나 즐겁고 다행스러워하는지 온몸과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봄학기 개강이 코앞이었다.


나는 이런 여러 가지 즐겁고 경사스러운 일을 기념하고 개강에 임하는 마음 가짐도 추스를 겸 머니투데이에서 개최한 삼일절 기념 마라톤 대회의 10Km 구간에 참가했다. 지난가을에 시작한 달리기는 경기도에서 열린 10Km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며 재미를 느꼈는데 이후로도 열심히 연습을 하다가 그만 왼쪽 무릎을 다쳤다.

'오리발건염'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달리기를 하다가 다친 것이라기보다는 짐 gym에서 바벨 스콰트를 하다가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이후로 정형외과를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했는데 걷거나 산을 오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할 때 왼쪽 무릎이 아파서 힘을 줄 수가 없었다.

트레드 밀에서 가벼운 달리기는 가능했지만 휴식하면서 힘줄이 다시 복원되기를 기다려야 해서 하체 운동은 생략하고 상체와 등 운동만 했다. 한참 달리기에 재미가 들려서 속도도 높이고 거리도 늘리려던 참이었는데 석 달 가까이 뛰지를 못하고 겨울이 지난 것이다.

어차피 겨울이라 날씨도 춥고 미세먼지도 많아서 다른 계절보다는 달리기 연습을 하기에는 불편했다.

2월 초부터 살살 달리다가 10킬로를 서너 번 뛰고는 이제 무릎이 회복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동네 러닝크루 연습에도 참가하면서 대회에 나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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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가 열리는 올림픽 공원에서 8시에 집결하여 연예인 공연과 식전 행사를 하고 9시에 달리는 일정인데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부지런을 떨다가 7시 좀 넘어서 공원에 도착했다. 카페에 들어가서 가슴에 배번을 달았다. 작년 가을 경기도 화성시에서 열었던 '효 마라톤' 이후 두 번째 대회 참가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나는 술과 함께 했던 취미들을 멀리했다.

백패킹은 이제껏 일 년 동안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술을 마실 때는 친한 백패킹 친구들과 또 때로는 혼자서 즐겼던 취미 활동이다.

특히 가을철부터 늦봄까지의 동계 백패킹은 산에 귀찮은 벌레들도 없고 땀도 덜 나서 백패킹 하기에 아주 좋았다. 동계 침낭과 방한용품으로 짐이 좀 많아지긴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무게였다.


여럿이 가는 백패킹은 박지에 도착해서 각자 텐트를 치고 나서 쉘터에 모여 불을 피우고 각자 준비해 온 음식들, 주로 안주거리를 나누면서 술을 기울이는 것이 백패킹의 메인 활동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집채만 한 100리터급 배낭을 짊어지고 스틱을 짚으며 산을 올라가는 것이 마치 엄청난 산행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배낭이 무거워서 멀리도 못 가고 한 시간이나 길어봐야 두 시간 안팎의 산행 끝에 이른바 '박지'에 도착하고 올라가는 중간에도 쉬면서 맥주나 막걸리를 마시니 시작부터 술기운으로 숨을 몰아쉰다. 처음에야 천천히 저녁 겸 마시는 반주인 듯 하지만 모두들 주당들이라 술이 떨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혹시나 하면서 각자가 챙겨 온 자기 주량 이상의 술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돌려가며 마시다 보면 산 아래에서는 엄두도 못 낼 엄청난 양의 술이 쌓여간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인사불성 상태로 각자 자기 텐트에 쓰러져 의식을 잃듯 잠에 빠진다. 그냥 마셔도 몸에 안 좋은 술을 온갖 주종을 섞어서 부어라 마셔라 한 속이 다음날 좋을 리가 없다.


산행 역시 언제나 끝은 술이었다. 동네 산이든 1,000미터 급의 국립공원 종주 코스이든 그 마지막엔 늘 하산주가 있었고 하산주는 갈증을 해소하고 안전하게 하산한 것을 축하하는 맥주 한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취할 때까지 들이부어야 끝이 났다.

지금도 나는 산을 다닌다. 하지만 하산 후에는 산 아래에 늘어서 있는 각종 맛집들, 술집들을 지나쳐 덤덤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먹고 싶어 죽겠는 걸 꾹 눌러 참으며 오는 것이 아니라 소 닭 보듯 무심히 지나친다. 이제 한잔 술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술 생각이 간절한 상태는 아니다. 이 지경까지 견뎌냈다니 스스로가 대견하다.


하지만 이 모든 각오와 다짐, 아이들과 아내의 행복한 눈빛을 지켜보고도 나는 얼마든지 예전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음을 안다. 담배를 끊은 지 22년이 되었는데 지금은 내가 과연 한때 담배를 피운 적이 있었던 걸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이다. 아마 술을 끊은 지 20년쯤이 지나면 아마도 정말로 술을 끊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스로 그 정도의 자신감과 수십 년간 견뎌 낸 시간이 쌓이기 전까지는 나는 나를 절대로 믿을 수 없다. 매년 금주 기념일을 축하하고 스스로를 치하하며 더 굳세게 다짐하는 러닝을 해야겠다. 내년에는 하프코스 21킬로를 달리고 내후년에는 첫 풀코스에 도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음주 행태 기록을 읽고 걱정하고 응원해 준 이들을 위한 보답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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