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카미노, 언제 가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날까?

카미노는 타이밍!

by 이프로

오늘, 그러니까 2023년 3월 5일 현재, 나의 다섯 번째 카미노 일정은 이미 정해졌다.

당연하지, 항공권 발권을 마쳤으니 하늘이 두쪽 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나는 내가 발권한 인천 ICN-바르셀로나 BCN 왕복 편에 맞추어 카미노를 진행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무엇을 감안하고, 어떤 사정들을 봐 가면서 최종적으로 이 날짜를 정한 걸까?

우선 이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이런 세밀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날짜를 정했을 때 맞닥뜨릴 수 있는 부작용과 대강의 일정이 정해졌을 때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아보겠다.


첫째, 기간에 대한 안배다.

평범한 보통 사람의 경우 장기간 여행에 익숙하지 않다.

해보지 않으면 감이 오질 않는다.

태어나서 이제껏 한 달 이상을 계속 여행 중이었던 사람은 흔치 않다.

난 해봤는데? 그러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 패스하시라, 전문가 선생.


한 달이 넘도록 여행하는 일, 특히 매일 잠자리가 바뀌고 매일 체크인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 일상은 한마디로 피곤하다. 일이 아주 스무드하게 흘러가도 피곤한데 가끔씩 일이 꼬인다.

방이 없거나, 분명히 예약을 해 두었는데 내 이름이 없다고 안면몰수를 한다.

방은 잡았는데 앞에, 옆에 수다쟁이 외국인 영감들이 해가 지도록 시끄럽다...

여행이 길어지면 여행이 주는 기쁨보다 여행에서 몰려오는 스트레스가 더 클 수가 있다.

무경험자가 '비싼 돈으로 비행기 표 끊었으니 카미노도 걷고 내친김에 포르투갈까지 여행하고 오자'라고 생각하는 건 그럴 수 있겠으나 자신이 정말로 감당할 수 있겠는지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물어보자.

그 대답은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이번 카미노 계획을 처음 세울 때 내 일정은 50일이 넘는 기간이었으나 여러 차례 심사숙고한 끝에 최종적으로 40일가량으로 확정했다.


나는 45일 동안 동유럽 종주 여행을 북쪽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작해서 그리스, 터키로 내려가는 여정으로 한 적이 있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탈린-리가-빌뉴스-바르샤바-크라쿠프-프라하-부다페스트-아테네-메테오라-이스탄불-에서 묵었다. 귀국 시에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레이오버까지 했다.

그때 내린 결론인데 이동이 많은 여행의 경우 45일은 좀 벅차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에 이미 카미노를 세 번 마치고 2주가 넘는 기간의 히말라야 트레킹도 한 경력이 있었는데도 너무 길게 계획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도시인 이스탄불에서 나는 좀 지치고 피로해서 외출을 별로 안 하고 바닷가 카페에 나가서 하루종일 책만 읽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때는 어서 집에 가서 시원한 물김치에 탱글탱글한 소면을 말아먹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둘째, 기왕이면 모든 카미노 시설이 활발하게 영업을 하고 스페인의 산천초목이 아름다울 때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당연한 얘기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는 것이다.

성수기에 시간이 나질 않거나 여행 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비수기에 갈 수밖에 없을 텐데 비수기에 카미노에 가서 왜 식당들이 문을 열지 않고 카페는 영업을 안 하는지 불평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특히 가톨릭 종주국인 스페인에 12월, 1월에 가서 거의 모든 업소들, 심지어 알베르게조차도 문을 닫아 걸은 걸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고 단순히 휴일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 생활이기도 한데 외국인이 투덜댈 일은 아니다.


셋째, 그런 시기를 고려해서 '언제 갈지'가 대강이라도 정해지면 항공권 생각을 해야 한다. '항공권은 이 즈음에 사야 가장 싸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는 그럴듯하기도 하고 일부는 의심스러운 주장도 있다.

하지난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게 있으니 일찍 사면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찍 사서 싸게 산 사람은 봤어도 늦게 샀는데 싸게 산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너무 일찍 사도 비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던데 너무 일찍이 언제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일반 항공권의 경우 6개월 전쯤부터는 알아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너무 오래 간을 보기보다는 내가 생각한 금액보다 저렴한 표가 나왔을 때 과감하게 구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좋은 표가 나왔는데 하루 이틀 두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항공권 구입에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일단 결재를 한 뒤에는 다시는 항공권 검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검색했다가 값이 더 올라간 것을 발견한다 해도 그렇군, 하고 넘어갈 일인데 혹시라도 가격이 내려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김이 새어버린다.

기껏해야 기십만 원 혹은 몇만 원에 여행의 기쁨을 망칠 필요는 없다.


넷째, 보너스 항공권, 즉 마일리지 항공권을 발권할 때는 1년 전쯤부터 부지런히 항공사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언제 내가 원하는 날짜의 항공권이 열리나 확인해야 한다. 이코노미는 마일리지 좌석이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비즈니스 좌석은 항공사에서 마일리지 좌석으로 할당하는 것이 많지 않아서인지 일 년 전부터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원하는 날짜의 좌석을 얻기 어렵다. 나는 올해 6월 항공권예약을 작년 6월에 했으니 꼬박 일 년 전에 찜을 한 것이다. 그나마도 며칠 사이에 동이 나서 아슬아슬할 뻔했다.


마일리지를 사용할 경우에 한 가지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마일리지에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하는 일정 조율이 앞뒤로 일주일 가량 가능하다면 성수기를 피할 수 있다. 내가 6월 말에 가서 8월 초순에 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7월부터 8월 초순까지는 성수기로 평수기 때보다 공제 마일리지가 훨씬 많다. 어렵게 모은 마일리지가 성수기라는 이유로 3만 마일쯤이 뭉터기로 날아간다면 여행 시기를 조금 앞당기거나 조금 미루어서 성수기를 피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IMG_6076.PNG 바르셀로나에서 싸라고사 가는 기차표 예약서류

이렇게 가장 큰 결정 두 가지, 즉 얼마나 오래갈 것인지와 언제 갈 것인지가 결정되었다면 이제 나머지 계획은 모두 이 테두리 안에서 정하면 된다. 나는 바르셀로나 BCN로 들어가고 나오는 항공편이라 바르셀로나에서 카미노 출발지점까지의 이동과 카미노를 마치고 산티아고 SCQ에서 바르셀로나로의 이동을 준비해야 했다.


유럽의 저가항공은 미리 예약하면 기차 요금과 별 차이가 없거나 심지어 더 싼 경우도 있다. 유럽 내에서 비행을 하면 한 시간 안팎이면 가능해서 네다섯 시간 혹은 그 이상 걸리는 기차나 버스보다 쾌적하다. 나는 이번 카미노에서 아라곤 길 Aragon way로 시작해서 프랑스길과 합류하는 여정인데 바르셀로나에서 사라고사 Zaragoza로 가는 고속철을 10유로도 안 되는 요금에 예약을 했다. 사라고사에서는 버스 편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엊그제 산티아고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항공편을 예약했다. 카미노를 마친 8월에 있을 편도 항공권이다. 스페인 저가항공 부엘링으로 기내 수하물 요금을 포함해서 70유로가 들었다. 오후 두 시에 출발하는 항공권이 50유로에 수하물 요금이 20유로쯤이다. 사실 오전 6시 대에 30유로짜리 항공권이 있었지만 그 시간에 공항에 가려면 택시비에 20유로를 써야 한다. 오전 7시부터 다니는 공항버스 요금은 1유로이다.

굳이 새벽부터 부산 떨 필요가 없어 보였다.


여름 카미노로 결정이 됐으니 한낮의 살인적인 스페인 태양을 피하려면 새벽 4-5시에 출발해서 12시에는 그날의 일정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햇빛을 막아줄 챙 넓은 모자와 뒷덜미와 뺨을 커버해 주는 차양이 달린 모자이다. 별도로 우양산도 가져간다. 한국에선 상상도 어려운 강렬한 태양이 이어질 테니 겹겹이 막고 부지런히 선블록으로 노출된 피부에 보호막을 둘러줄 예정이다. 여행 시기가 정확하게 정해지면 갖고 가야 하는 준비물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


여행 계획이 있다면 환전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인데 내 경우는 유로 환율이 1350원 아래로 떨어졌을 때 조금씩 바꿔 두었다. 하지만 유로는 달러처럼 변동폭이 크지 않아서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주거래 은행이나 토스 등을 이용하면 80% 환전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으니 참고하고 현지에서는 대도시를 거칠 때 부족한 돈을 인출하거나 신용카드를 사용할 예정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