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목 흐림, 저녁때 비
Zumaia-Deva-Markina 35.98km
유럽 온 지 처음으로 5시 넘어서 까지 잤다.
침대가 편안하고 좋았고 2인 1실이라는 쾌적함이 숙면을 도운 것 같다.
스위스에서 온 룸메이트는 곯아떨어져 자고 있어서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자던 짐과 옷가지를 정리하고 배낭을 챙겼다.
오전 6:16 출발, 그리고 오후 6:16 도착.
이게 무슨 소리인가.
에누리 없이 12시간을 걸었다는 뜻이다.
실제 거리는 36킬로인데 중간에 밥 먹을 곳을 찾느라 4킬로를 돌아가는 바람에 40킬로를 걸었다.
사실은 어제 알베르게에 모여서 나눈 대화중 대부분은 오늘의 일정에 관한 것들이었다.
정말 애매했기 때문이다.
수마이아에서 데바는 10킬로쯤 떨어져 있다.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짧은 거리이다.
데바 역의 역사 2층이 알베르게(공립)로 대부분 여기서 하루를 묵는데 문제는 데바 이후로는 산으로 들어가게 되고 25킬로 미터 동안 아무런 퇴로도 없고 산속에는 이렇다 할 마을도 없어서 알베르게는커녕 커피 한잔 콜라 한잔 마실 곳도 없다는 것이다.
데바에서 마키나까지의 산속 구간은 한국으로 치면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르는 정도의 경사도에 끝없이 이어지는 고개가 난이도 최상의 블랙 레벨이었다.
악명은 자자했지만 정작 가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모두들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에 공포감만 더 커져갔다.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계획을 구상했지만 결론은 아무것도 내린 것이 없이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며 자리에 누운 것이다.
해가 뜨기도 전 알베르게를 나선 것은 나와 스웨덴에서 온 처자 한 명뿐이었다.
이 처자는 한눈에 봐도 ‘선수’로 보였는데 65리터 급의 묵직한 그레고리 배낭을 거뜬히 둘러메고 잘 길들여진 마인들 등산화에 덩치는 나보다 훨씬 크며 기골이 장대한 전형적인 북구 게르만 형으로 보였다.
알베르게 문이 잠겨있어서 자고 있는 호스피탈레로를 깨워야 했는데 처음에는 이 처자 혼자 와서 문을 열어달라니까 짜증을 냈던 것 같다.
내가 다시 찾아가서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자 그제야 호스피탈레로는 입이 댓 자로 튀어나와서 눈을 비비며 엉기적엉기적 나왔다.
알베르게 뒤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자 곧바로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한참을 올라가자 해가 뜨기 시작했다.
일출 전의 붉게 물든 바닷빛이 인상적이었다.
잠도 잘 자서 컨디션도 좋았는데 문제는 아홉 시도 안돼서 데바에 도착한 것이다.
데바 역 광장에는 그제야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알베르게에서 나오고 있었고 이들에게는 앞으로 남은 마키나까지의 25킬로 구간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는 광장 한편의 카페에 앉아 또르띠야 한 조각과 카페 콘레체,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고민했다.
9시 밖에 안된 시간에 여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북쪽 길 코스 중 가장 힘든 코스로 알려진 마키나 구간을 계속 강행할 것인가.
대답은 너무 뻔했다.
아침 9시 까미노에서는 걷는 것 말고는 정답이 없었다.
그 시간에는 그 어떤 알베르게도 순례객을 받아주지 않을뿐더러 남은 하루는 너무 길었고 나는 컨디션이 좋은 상태였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어젯밤 알베르게 동기였던 뉴질랜드 아가씨가 내 자리에 합석했다.
역시 그미도 더 갈지, 여기서 멈출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가기로 결정했다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미는 무릎에 달고 있는 보호대를 가리키며 상태가 최상이 아니라 고심 중이란다.
뭐, 어쩔 수 없지.
난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은 시작되었다.
이날 따라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낮시간 내내 괴롭혔고 일단 산속에 들어가니 갑자기 인적이 끊겼다.
휴식을 취하다 새벽에 알베르게에서 같이 출발한 스웨덴 처자를 만나서 동행했고 점심을 먹으러 돌아간 길의 식당에서 만난 날렵한 이탈리아노 파비안은 거의 뛰듯이 걷는 스타일이라 너무 속도가 빨라서 쫓아갈 수가 없었다.
길이 좀 편해졌을 때 스웨덴 처자와 (이름을 잊었다) 같이 걸으며 각자의 여행 이야기를 했는데 나의 버킷리스트인 '쿵스레덴' 얘기를 너무 실감 나게 해 줘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끊겼다...
너무 급경사의 길이 끝없이 이어졌고 오르막에서 발이 빠른 내가 치고 나가자 배낭이 무거운 그미는 뒤로 처졌다.
몇 번을 기다리다가 만날 수 없을 정도로 간격이 벌어지자 나는 혼자 걸었다.
오르막은 구불구불 꺾이면서 이어졌는데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데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on and on and on and on, and you're too far to go back 고 낙서를 해놓았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달리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었다.
산길이라 택시를 부를 수도 없었고 만일 해지기 전까지 마키나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산속에서 노숙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는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즈음 꿈결 같이 산 아래에 마키나 마을이 보였다.
산에서 마을까지는 상체를 뒤로 젖혀야 할 정도로 급 하강이었다.
하루 종일 오르막을 걸은 종아리와 허벅지가 풀렸다면 떼구루루 구를 수도 있는 위험한 구간이었다.
스틱을 길게 뽑아서 내가 디딜 곳을 먼저 찍어 내려가며 걸었다.
내가 도착하자 마키나의 공립 알베르게는 거의 만실이었는데 까미노 초반에 만났던 폴란드 3인방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어젯밤에 같이 알베르게에서 잔 많은 이들 중 오늘 마키나까지 걸은 사람은 나를 포함한 네 명뿐이었다.
무척 힘들었지만 기쁘기도 하다.
'나 아직 안 죽었다'는 공인을 받은 듯 우쭐해지기까지 했다.
폴란드 3인방은 이른 오후에 도착했다고 하고 깔끔한 외관을 보니 아마도 교통편을 이용한 듯싶다.
각자 자기 길을 가는 거라는 생각이어서 자기 형편껏, 건강을 고려하여 중간중간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이들을 나는 특별히 cheating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우체국 배달을 이용해서 다음 목적지에 배낭을 보내는 이들에게 조차도 곱지 않은 시선을 주기도 한다.
제 길을 제가 편한 방식으로 간다는데 남 탓할 것까지 있나.
남에게 불편을 주는 것도 아닌데…
폴란드 3인방 중 남편이 알려준 식당에서 훌륭한 뻬레그리노 정식을 잘 먹었다.
하루 종일 지치고 힘들고 배고팠던지라 온몸이 음식과 와인을 빨아 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저녁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우연히 발에서 만난 스페인 할아버지가 와인도 한 잔 사주었다.
나머지 일행들, 정다웠던 동료들은 이제 나와 하루 간격을 두고 뒤에 있게 되었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하루, 이틀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다시 만나면 무척 반갑고 즐겁고 할 얘기도 많다.
따지고 보면 알게 된 지 며칠 안 된 사이이고 대화를 해봤다고 해야 얼마 안 되는데도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다.
저녁을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졌다.
설마, 이 시간에 마키나 산속에서 헤매고 있는 친구는 없겠지?
모두들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마주 보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