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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May 18. 2023

의사와 병원에 대한 오해 2

내 병은 내가 알아야 한다. 

아주 뜸하게 찾아오지만 한번 아프면 너무 아픈 나의 발가락 통증은 병원을 가기 전에는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지만 병원에서 진통제 주사 한방을 맞으면 주사 맞느라 풀어내렸던 옷을 챙겨 입으면서 순식간에 통증이 사라져 버리는 신기한 병이었다. 통퉁 부어서 벌겋던 발가락은 금세 가라앉으며 다시 정상인의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의사는 나의 이런 증상을 다 듣기도 전에 '그거 통풍이에요'라고 단박에 진단을 내려버렸다. 


통풍이라고라!


나는 집에 돌아와 병원에서 뽑아 준 혈액 검사 결과서를 들고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통풍' 영어로는 gout. 단백질의 일종인 퓨린이 대사과정에서 요산으로 변하여 체내에 남게 되는데 이것이 뾰족한 결정체로 발가락이나 무릎 관절등에 쌓이면 어마무시한 통증을 안기면서 '발작'을 일으키는데 그래서 혈액 검사를 통한 요산 수치로 통풍 환자인지 판명을 한다. 요산 수치는 7.0mg-dl 이상일 때 포화상태가 되고 이 이상의 농도를 고요산혈증이라고 진단하므로 내 혈액검사 결과는 매우 중요했다. 결과서에서 요산 수치를 찾았다. 그런데 내 요산 수치 Uric acid는 6.1mg으로 정상 범위인 2.9-7.3mg에 속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성인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정도였다. 나는 통풍 환자가 아닌 것이다. 

통풍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혈액 검사에서 나온 결과 2.9-7.3 범위 내에 속하는 6.1이 나왔다. 

수치는 정상 범위였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넌 통풍이야!'라고 진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치료를 받았으므로 나는 좀 더 통풍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알고 보니 통풍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흔한 질환으로 특히 술과 고기, 해산물 등 고단백 안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당시 술과 고기를 사랑하여 수시로 즐기던 때였다. 


통풍으로 부은 오른쪽 발가락 부위

그리고 마침내 다시 병원에 가서 환자의 증상을 다 들어보기도 전에 병을 알아내는 '명의 선생님'을 알현하는 날이 왔다. 나는 이미 충분히 숙제를 했으므로 그날은 진료실에 들어서며 주눅 들지 않았다. 출력해 온 자료와 지난번에 받은 혈액결과서를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내 요산 수치를 확인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끝이 흐려지면서 지난번에 검사차 찍었던 내 발의 엑스레이 사진이 뜬 모니터만 자꾸 쳐다보셨다. 그건 아무리 쳐다봐야 이제 다 나은 발이라 소용이 없을 텐데. 


"선생님, 통풍이라고 하셨는데 혈액 검사 결과 제 요산 수치는 정상 범위입니다. 제가 통풍이 맞나요?"

"선생님, 통풍 진단을 내리실 때 먼저 혈액 검사를 확인한 뒤에 하시는 게 순서가 맞는 게 아닐까요?"

"선생님, 제가 정말 통풍인 건 맞는 건가요?"


이런 질문을 드리자 의사 선생님은 답을 하지 못하셨다. 그리고 뜻밖의 대답을 하셨다. 

"사실 통풍은 여기 정형외과에서 진단하는 게 아니라 류머티즘 내과에서 진단을 받으셔야 합니다."

나는 황당했다. 그래서 다시 의사를 쳐다봤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목을 가다듬고 그토록 바쁘고 산만했던 대학병원 의사의 진료 태도를 버리고 그윽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의 발 상태와 통증을 듣는 순간 자기는 통풍을 직감했고 이제껏 그렇게 진단해서 병을 치료한 사례가 여러 건이다. 원래는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진단을 내렸어야 했지만 당시 환자는 큰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은 환자를 빨리 치료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기보다는 빨리 통풍 치료를 지시한 것이다. 결국 그래서 환자는 돌아갈 때 고통 없이 걸어갈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의사는 환자를 고치는 사람이다. 아픈 사람이 와서 나는 아프지 않게 해 주었다. 이런 결과지만 믿고 의사의 진단 결과를 의심해서는 안된다. 


의사는 여기까지 이야기하더니 이제 나에게 대학병원 의사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한 죄를 묻는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꾸짖을 기세였다. 나는 기가 막혔다. 

"그래서 선생님, 저는 통풍인 게 맞습니까? 이 혈액검사 수치로 저를 통풍 환자로 진단하시겠습니까?"

의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통풍으로 진단하셨고 안 아프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만 그래서 내 병명은 통풍이 확실하냐는 질문에 의사는 그건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내 뒤에는 평일 대학 병원이 늘 그렇듯이 대기환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의사의 진료를 돕는 간호사가 나와 의사의 대화가 길어지자 내게 자꾸 눈치를 주었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간호사를 불렀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에게 얘기했다. 

"저도 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지금 의사 선생님과 진료 상담하고 있어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제 병이 뭔지 모르시면서 내린 처방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정확한 대답을 들으면 저는 일어설 것입니다. 그러려고 병원에 온 거니까요. 맞지요, 선생님? 선생님이 지난번에 내리신 제 병명 '통풍'이 맞다고 하시면 저는 통풍 치료약 처방전을 받고 떠날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지금 답을 안 주시고 계세요. 선생님, 제 병 뭔가요? 모르신다면 왜 지난번에는 통풍이라고 진단하신 건가요? 그리고 통풍이라면 왜 제 혈액 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나온 건가요?" 


한참을 이렇게 저렇게 말을 빙빙 돌리던 의사는 결국 나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통풍 증상을 보인 내가 왜 혈액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는지 함께 알아보자며 자신이 보던 모니터를 내쪽으로 돌리며 구글 화면을 열었다. '통풍'이라고 검색창에 타이핑을 하길래 내가 이미 알아본 결과를 쭈욱 알려줬다. 내가 뽑아 온 통풍 환자들의 모임 카페에서 얻어 온 자료와 외국의 치료 사례들과 논문들을 보여주었다. 의사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요한 대목은 받아 적을 기세였다. 대학병원 의사에게 통풍에 관하여 한 수 지도하고 나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 듯한 표정 연기를 하던 의사를 뒤로한 채 내가 있던 진료실에만 끝없이 늘어서 있던 대기자들을 남기고 병원을 떠나 나왔다. 


나는 이후로 대학병원이 아닌 동네 의원급 다른 정형외과 두 곳과 류머티즘 내과 한 곳에 가서 내 증상을 얘기하고 다시 혈액검사도 했다. 그들은 내 증상을 잘 들어주었다. 

내 병은 통풍이 맞았다. 


요산 수치는 일정한 게 아니라 수시로 변하는 수치였다. 발작을 일으킬 때 검사를 했다면 제대로 통풍 환자에 해당하는 수치가 나왔겠지만 내가 혈액 검사를 했던 시기는 이미 진통제와 요산하강제로 요산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인데 나를 통풍이라고 진단했던 의사는 요산수치가 요산하강제로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통풍이 숨겨진 장기라는 췌장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혈액질환도 아니었건만 정형외과 의사에게는 일반인인 나도 알 수 있는 정도의 의료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의사도 사람이다. 자기가 할 줄 아는 것만 할 줄 안다. 

그래서 고칠 수 있는 병만 고치고 모르는 병은 아는 사람에게 보내야 하는데 워낙 환자가 몰려드니까, 빨리 이 환자를 내보내고 다른 환자를 받아야 하니까, 서두르다 보니 나 같은 이를 만나서 개망신당하고 사과할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닌데 의사가 내 병을 알 수 있고 고칠 줄 안다면 당신은 엄청난 행운을 만난 것이다. 대개 의사들은 죽을병이나 돈이 많이 벌리는 병에 대해서만 안다. 내가 사는 반경 20킬로미터, 내 직장의 반경 20킬로 미터 내의 이비인후과 의사는 그 누구도 내 비염을 고칠 줄 모른다. 그들은 콧물, 코막힘, 재채기의 내 증상을 보고는 그냥 졸리기만 한 약을 주어 재채기와 콧물을 가라앉히는 것까지만 알고 있다. 30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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