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소통하는 법
반백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늘 골골 댔다.
환절기를 그냥 넘기지 못하고 몸살이나 감기로 며칠씩 드러누웠으며 매일 약을 복용해야 하는 만성 고질병도 몇 개쯤은 갖고 있다. 하지만 심각한 병은 앓은 적이 없고 큰 외상을 입은 적이 없으니 이 사실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병원과 의사는 몸에 이상이 생기면 누구라도 찾아가서 만나야 한다.
수재들만 간다는 의대를 나와서 수련의, 전문의 과정을 거친 의료 전문가인 의사가 하는 일은 워낙 전문적이고 독보적인 분야인지라 설사 자신이 비범한 영재라고 하더라도 어설픈 흉내도 내기가 어렵다.
그저 자신에게 나타난 증상을 소상히 밝히고 어떻게 치료하면 좋을지 분부만 내리기를 기다려야 할 뿐이다.
동네 의원급 의사들은 예전보다 심해진 병, 의원 간의 경쟁 탓에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살가워지고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병이 심상치 않아 찾아간 대학병원에서는 그 어려운 예약전쟁을 뚫고 찾아왔음에도 고명하신 의사 선생님은 늘 뭔가에 쫓기는 듯 나를 대하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더 중요한 뭔가를 고민하시느라 집중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소심한 환자가 어렵게 꺼낸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을 때가 많다. 증상을 얘기하는 환자의 말을 끊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더 들어봐야 빤하다, 내가 네 상태 다 안다' 라는 생각인듯 하다.
설령 그렇더라도 몇 주를 기다리다가 병원에 와서, 또 몇 시간을 대기하다가 겨우 만나게 된 의사인데 그 얘기를 좀 들어주면 안되는 것인가?
그리고 내가 지금 공짜로 봐달라는게 아니지 않는가?
특진비네, 뭐네 하면서 동네 의원보다 몇곱절 받아먹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아픈 심신은 잠시 잊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의사 선생님과의 일전을 치를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는다면 몇 시간의 대기시간과 병원을 찾아오는데 허비한 나의 소중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5분도 안 돼서 진료실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인 것이다.
대학병원의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응대에도 또 예약하고 또 찾아가는 것은 내 몸이 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각종 의료 다큐나 메디칼 드라마에서 왜곡하고 부풀려놓은 의사들의 모습에 소심해진다.
식사도 잠도 못 챙기면서 불철주야 뛴다는 강도 높은 현장에서 살신성인하는 의사들의 멋진 모습에 환자들은 아픈 자기 몸은 놔두고 되려 의사의 고된 환경을 동정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하느라 얼마나 바쁘시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잠도 푹 자지 못하면서 저렇게 불철주야로 환자를 돌보실까. 그러니 한참을 기다려서 얻게 된 내 순서가 되어도 나는 더 중하고 더 위태로운 환자에게 힘들게 만난 의사 선생님을 양보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도 아프지만 나보다 더 아프고, 더 위중한 다른 환자에게 얼른 이 귀한 선생님을 양보해야 한다!
젠장, 이해는 하겠는데 늘 억울하고 아쉬운 이 감정은 무얼까.
나도 아프다고!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이 게임의 '갑'은 정해져 있고 바뀌지 않는다.
환자는 의사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면 다른 병원을 가면 된다지만 순서만 더 뒤로 밀릴 뿐이다.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재판에서 판사를 대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판사는 정의로울 것이고 의사는 천재일 것이다.
저 고명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내 병을 맑은 샘물 바닥 들여다보듯이 정확하게 알아보시고 나쁜 병의 원인을 찾아내어 제거하고 상한 몸을 회복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아니면, 아니라면 뭐 어쩔 것인가. 그렇게 믿지 않으면 나만 손해다.
그래서 '생로병사의 비밀'같은 의료 다큐에서는 공공연하게 말한다.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알겠다니까, 그러니까 좀 신뢰할 수 있는 태도를 좀 보여줘!
그런데, 그런데... 의사는 정말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이건 우리가 낯선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나는 확률과 비슷할 것 같다.
번듯한 식당이고 셰프가 만든 요리이니 맛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셰프가 잘할 줄 아는 요리는 몇 가지로 제한적이다. 음식을 다루는 셰프이니 조리의 기본 과정이야 잘 알고 있다. 양파도 찹찹찹 얇게 썰 줄 알고 무도 예쁘게 깎을 줄 안다. 하지만 그 셰프의 대표 음식은 샥스핀과 양장피이다.
미슐랭 별도 따오는 그 셰프가 하지만 짜장면도 찰지게 수타면으로 내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양장피 잘하는 셰프처럼 의사도 자기가 잘 고칠 줄 아는 병이 있다.
그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명의'지만 그게 아닌 그 언저리에 생긴 병이라면 의사는 다시 책을 펼쳐보고 공부해서 고치거나 다른 의사에게 물어본다. 우리는 그가 '의사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병을 고쳐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의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임상 경험은 그 폭이 매우 좁은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의사인데,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내과'는 얼마나 큰 전공인가.
내과 전문의는 내과가 다루는 여러 질환 중 하나에 대해 정통하다는 것이지 나머지 내과 분야는 알지 못한다.
모든 내과 지식을 다 알고 있는 의사는 없다. 불가능하다.
미대를 나왔지만 평생 유화만 그린 화가에게 미술 전공자이니 목공예나 수묵화를 멋지게 그려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내가 실제로 경험한 일인데 수년간에 걸쳐서 비 정기적으로 발가락이 빨갛게 붓고 아프다가 진통제를 먹으면 이삼일 후 가라앉는 증상이 반복돼서 생활에 지장이 많았다. 몇 번을 의사에게 증상을 보이고 치료를 받아보겠다고 벼르다가 한동안 아프지 않길래 또 잊고 있었는데 복병처럼 또 증상이 찾아왔다.
이번엔 기필코 잡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아픈 발을 이끌고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토요일 아침이었지만 너무 아파서 응급으로 정형외과 의사를 찾았다. 예약 없이 왔으니 종일 대기도 감수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원인을 찾고 싶어서 작정하고 기다렸다.
예상외로 대기 시간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고 역시나 선생님은 바쁘시고 눈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없이 책상과 모니터를 오가는 것이 다른 일을 하면서 나를 진료실로 들인 것 같았다.
"어디가 아프세요?"
나는 그동안 수차례 나를 괴롭힌 이 병의 증상과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서 소상히 밝히고자 했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사실은 대기실에서 예행 연습도 했던 내 말은 중간도 못 가서 끊기고 말았다.
"그거 통풍이에요. 나가서 진통 주사 맞으시고 간호사가 반깁스 해주면 걸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약 잘 드시고 아프면 또 오세요."
3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증상을 반도 듣지않고 명쾌한 진단을 내려주시는 의사선생님 말대로 나는 곧바로 주사실로 안내되어 엉덩이 주사를 맞았고, 이어서 아픈 발에 반깁스를 했다.
그런데 좀 전까지 발을 내려두고 있기만 해도 아파서 의자에 발을 올려두어야 했던 발의 통증은 신기하게 사라지고 정말로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하, 내가 정말로 명의를 만난거로구나!
하지만 그냥 돌아오기가 너무 아쉬웠다.
나는 깁스를 해주던 간호사에게 내 증상이 통풍이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통풍이 뭔지 물어봤지만 간호사는 병에 관한 것은 의사 선생님께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의사 선생님은 이제는 다른 환자를 보고 계셨다.
아픈 게 나았으니 병원에 온 보람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내가 처음 들어본 '통풍'이 뭔지 설명을 좀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내가 다시 아쉬움을 토로하자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께 내 뜻을 전했는데 돌아온 답은 혈액 검사를 하고 다음 주 약속을 잡아줄 테니 그때 다시 한번 더 오라는 답을 주었다.
궁금증이 전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키지 않는 혈액검사를 받고 좀 기다렸다가 결과지를 갖고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