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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없는 산티아고

2023 6.30

by 이프로

1. 6.30. 금요일

5:30 알람보다 일찍 깼다. 내가 입던 옷들, 수건 등을 빨래통에 치우고.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정리한다. 늘 수면모드로 사용하던 아이맥도 끄고 책상도 비운다.


아내가 공항버스 터미널에 데려다주는 아침은 장마로 잔뜩 흐리고 축축하다.


왠지 쓸쓸.


버스에서 잠을 청하며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을 듣는다.

이번 카미노… 별 일 없이 잘 되겠지? 특히 술. 잘 견뎌야지. 아이들과 아내를 생각하자.


2. 공항에는 아이돌 그룹을 맞이하려는 팬들이 모여있고 청사 안에도 출국하려는 이들로 붐볐다. 첫 비즈니스라 뭐든지 특별할 줄 알았는데 줄 서서 짐 부치고 평소와 똑같이 출국수속을 거쳤다.


3. 라운지에서 양치, 면도를 하고 샤워를 했다.

개운하다.

디캐프 커피를 마시고 간단히 식사도 했다.

탑승하기 전 아내에게 전화했으나 전화기는 꺼져있어서 좀 맥이 빠졌다. 아내와 전화 시도에서 자주 겪던 일이지만 아직도 적응이 어렵다. 나중에 물어보니 오래간만에 구역예배 중이었다고.


그리고 프레스티지석, 즉 비즈니스석에 탑승했다. B787-9 기종 항공기는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된 구식 좌석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침부터 계속 무기력한 느낌이 이어져서 별 감흥이 없었다. 인생 첫 비즈니스석과 맞바꾼 마일리지가 아까운 느낌. 승무원은 처음부터 나를 ‘교수님’으로 불러서 깜짝 놀랐는데 생각해 보니 대한항공 홈피에 직업을 적는 난이 있었던 것 같다. 옆자리 승객에게는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기내식이 나왔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봤었던 그런 음식들. 나는 탄산수 페리에와 잘 먹었다. 처음엔 샴페인을 그리고 전채 요리가 나오면서 몇 차례 와인을 권하더니 물만 요구하자 술 권하기를 그쳤다. 디저트로 주는 아이스크림은 물리고 카모마일을 청했다. 누가 봤다면 수련 중인 수도승 같은 매우 절제하는 승객이었다.


4. 비즈니스에 누워서 가니 참 편하다. 그래도 지겹고 피곤한 건 마찬가지. 간식으로 라면을 시켜 먹었다.


5. 지겹고 지겹다. 그래도 쭉 누워서 갈 수 있으니 좋다. 도착이 두세 시간 남자 저녁식사를 준다.


해물된장찌개를 먹었다. 후식으로 과일과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다.


6. 랜딩 @ BCN

심카드는 제대로 작동하는 듯. 용량은 10기가로 대폭 하향. 사기당한 기분. 입국 수속 후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 잠시 헤맸는데 잘 찾아서 버스 탑승 후 호스텔 도착. 공항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인생’은 대단하다.

체크인후 샤워. 빨래는 미루고. 현금 관리가 애매해서 불안. 와치와 휴대폰도 불안.

빨리 순례길에 오르고 싶다.


생수 2병. 42

수건 렌탈 2.5

도시세금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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