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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에서 만난 사람

22세 서울 청년 킴

by 이프로

아라곤 길을 마치고 푸엔테 라 레이나로 합류하여 프랑스길을 걸은 지 2, 3일 지난 그날 나의 코스는 나헤라(Nájera)에서 레데시야 델 카미노(Redecilla del Camino)의 31km 구간이었다. 나헤라에서 시작하는 구간을 그론세(Gronze)는 10km 전 마을인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까지 20km를 하루 코스로 제안하고 있는데 늘 새벽에 출발하는 나에게 산토 도밍고는 너무 이른 오전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배낭을 내리고 멈추기가 곤란했고 10km쯤 더 가면 나온다는 작은 마을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는 맛있는 밥을 해주고 친절한 사립 알베르게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호기심이 발동했다.


레데시야 델 카미노(Redecilla del Camino)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정오가 안된 시간이었다. 7시간쯤을 걸었기 때문에 더 걸으면 힘도 들고 다음 마을까지는 거리도 꽤 되는지라 마음을 비우고 오후 1 시인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묵기로 마음먹은 알베르게 에센티아 (Albergue Essentia)는 호스피탈레로 호세 마누엘 라미레스 (José Manuel Ramírez)가 혼자 운영하는 소규모 알베르게로 침상 규모가 20여 개가 안 되는 크기였다. 바로 옆에는 공립 알베르게가 있었고 무슨 일인지 그론세에는 너무 안 좋다는 평으로 도배가 되어있다시피 해서 오히려 궁금증을 유발했다.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며 마을 성당을 기웃거리고 공립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는 뭘 팔고 있나 들여다보기도 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문밖에서 기다리자니 2층에서 청소 중인 호세와 눈이 마주쳤다.


"체크인 시간 기다리는 거야?"

"응."

"그럼 들어와."


마음씨 좋은 호세는 땀에 절고 피곤해 보이는 내가 하릴없이 길바닥에 주저앉은 모습을 보더니 얼리 체크인을 받아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늘 새벽에 깨고 있던 중이라 수면 시간이 부족해서 걷기를 마치고 긴장이 풀리면 졸음과 피로가 몰려와 샤워가 간절했다.


체크인을 마치자 호세는 아직 청소가 끝나지 않았으니 식당에 앉아서 좀 기다려달라고 했다. 1층은 식당과 사무실, 세탁실, 호세의 개인공간이었고 숙소는 2층에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잠시 후 청소가 끝나서 평소의 일상대로 샤워와 빨래를 마쳤다. 허기가 몰려왔다. 새벽에 출발했으니 당연히 아침을 먹지 못했고 오다가 카페나 바르도 만나지 못해서 그때까지 빈속이었다. 레데시야 델 카미노(Redecilla del Camino) 마을은 너무 작은 마을이라 식당과 바르, 상점 등 편의시설이 전혀 없고 오직 알베르게에만 의존해야 했다. 좀 전에 들렀던 공립 알베르게 자판기에서 음료수와 과자 등을 팔고 있는 걸 봤지만 별로 내키지는 않았다. 휘파람을 불며 알베르게 단장을 하던 호세가 뭔가 여전히 부족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물었다.


"배 고파?"

"응."

"옆에 알베르게에 가면 먹을 거 팔아."

"알아. 네가 점심도 팔면 좋을 텐데"


호세는 내켜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웃었다. 호세가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자기 집에 묵는 순례자들에게 저녁 식사와 조식을 주문받아서 제공하고 있었는데 나는 체크인하면서 저녁만 부탁했다. 아침은 안 먹냐고 묻길래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조식은 못 먹고 떠난다고 했다.


잠시 후 호세가 쉬고 있던 내게 와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한국사람도 계란 먹냐?"

"당근이지."


호세는 주방으로 부르더니 순식간에 계란 두 개를 깨뜨려서 오믈렛을 만들더니 바게트 빵과 함께 접시에 담아 주었다. 헐, 금방 부친 따뜻한 계란이 뱃속에 들어오자 잊고 있던 허기가 아우성을 쳤다. 바게트 빵도 꼭꼭 씹어 삼키자 호세는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뭔가를 꺼내더니 접시에 담았다. 애플파이였다. 달달하고 시원한 애플파이로 호세의 정이 담뿍 담긴 예상치 못한 늦은 점심을 마쳤다. 얻어먹은 점심을 보상하려고 나는 호세 옆에 붙어서 저녁 준비를 하는 걸 도와주려고 했는데 오랫동안 해온 일인지 느리지만 일정한 순서를 지키며 놀이하듯이 혼자서 하며 내가 구경만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호세는 짧은 영어로 아내와 이혼하고 이곳으로 돌아와 알베르게를 시작하게 된 얘기와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들려주었다.


저녁이 되었다. 호세의 알베르게에 그날 숙박하는 모든 순례자들이 식당에 모였다. 나를 포함해서 5명이었다. 수잔은 간호대 1학년인 딸과 첫 순례를 온 플로리다 아줌마였고 프랑스인 조안나는 영어를 하지 않아서 긴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와 같은 숙소에서 묵은 순례 N차 경험자로 뚝심 있게 걷는 아줌마였다. 알렉산드라는 폴란드에서 온 의대예과생으로 순례는 처음이었지만 건강하고 잘 걷는 편이었다. 수잔 역시 치과의사여서 일행 중 세 명이 메디칼 분야여서 식사하면서 화제는 자연스럽게 미국과 폴란드의 의학 교육과정과 의료 시스템에 관한 것이 되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플로리다 모녀인 수잔과 그 딸은 내가 알던 미국인들의 이미지와 편견을 깨는 아주 젠틀하고 배려심이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IMG_1113.HEIC 왼쪽부터 조안나, 수잔, 알렉산드라, 수잔 딸


IMG_1104.HEIC 호세의 알베르게

모녀는 나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나는 식사 시간 이후에도 두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스무 살인 딸은 피곤한 하루 일과를 마쳤음에도 엄마에게 매우 공손하게 대답했고 엄마도 딸의 의견을 존중하고 딸이 자기 대신 다음날 알베르게를 예약하고 이런저런 문의를 대신해주면 잊지 않고 고맙다는 답을 했다. 플로리다에서 나고 자란 딸은 스페인어가 능숙했고 수잔은 스페인어를 하지 않았다.


수잔은 그러다가 나를 보더니 잊고 있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킴을 만나셨어요?"

"킴요? 킴은 너무 많아서 어떤 킴인지 알려주어야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잔이 말하는 킴은 며칠 전에 두 모녀가 팜플로나에서 마주친 22세 한국 청년이었고 산 페르민 축제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혼잡한 시내에서 킴은 휴대폰을 도둑맞아서 황망해하면서 자신들에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영어가 서툰 킴은 이들 모녀에게 다른 한국인을 만나면 자기를 소개해 달라고, 자기를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는데 이들 모녀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한국인 청년을 더 돕지 못하고 와서 마음이 불편해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 '킴'을 알지 못했다.

그러길래 순례에 와서 왜 축제 인파에 기웃거렸냐. 관광과 순례를 결합하는 건 좀 경험이 생긴 후에 시도를 했어야지. 그 나이면 첫 순례이거나 심지어 첫 외국 여행일 수도 있을 텐데 유럽의 집시족들의 타깃이 되기에 맞춤이었을 것이다.


수잔과 딸은 여전히 킴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말했지만 그가 누군지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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