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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빠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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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Mar 27. 2024

프롤로그

달리기 입문 전, 나의 건강 상태

나는 3월 18일에 태어났다. 그날은 음력으로는 2월 8일이었다.  학교를 한 살이라도 빨리 보내서 공부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다 늦게 혹처럼 태어난 막내아들의 육아가 고단해서였을까, 내 부모님은 굳이 내 출생 일자를 음력 날짜로 바꿔서 신고하셨다. 당시에는 음력으로 생일이나 기일 등을 따르는 것이 관습이기도 해서 이상할 일 까지는 아니었지만 바뀐 생일이 2월달로 당겨지면서  나는  입학식인 3월 2일 이전 출생아들은 일곱 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하는 당시 규정을 따라서 나보다 한 살 많은 여덟 살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제대로 여덟 살에 입학한 아이들과 최대 12개월 이상이나 어린 상태에서 그들과 경쟁해야 했다. 다 자라고 난 후에야 한 살 차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동기에 일 년은 꽤 큰 차이였다. 지능이 낮거나 셈이 느린 편은 아니어서 학교 공부는 어리숙하게나마 한 살 위인 아이들을 따라갔지만 체력은 쫓아가기가 어려웠다. 제 딴에는 무진 애를 썼건만 나는 늘 달리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체육 시간이면 주눅 들어 있어야 했으며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를 올라갈 때면 유독 유난히 힘들어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면 일 년이나 큰 아이들과 다를 게 없다고 여기고 쫓아다녔으니 뒤로 처지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쯤 되어서야 비 온 뒤 죽순처럼 폭풍 성장을 했는데 이 시기에  나는 잘 먹었고 푹 자면서 무럭무럭 컸다. 금세 또래들과 견줄만한 신장과 허우대를 갖게 되더니 고등학생 때에는 훌쩍 '큰 애들'중 하나가 되었다. 키 순서대로 번호를 주는 당시 관례에서 늘 번호가 50번대 후반이었다. 한 반에 60명이 있던 때이니 나는 신장에 있어서 만큼은 '한 살 많은' 아이들에 섞여서도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였던 것이다. 


덩지가 커진 것은 힘도 세졌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는데 그러다가 여러 번 코가 깨졌다. 남자 학교 안에서는 덩지와 키라는 '액면'이 받쳐주기만 하면 암묵적으로 수컷 랭킹이 저절로 올라가는데 나는 이것을 믿고 나보다 작은 친구들을 만만하게 여기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번번이 매운맛을 경험한 것이다. 나는 다시 정색을 하고 팔씨름과 턱걸이, 팔 굽혀 펴기 등으로 같은 반 친구들과 체력을 비교해 봤는데 창피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체격에 비해서 체력이  약한 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체력장 점수 20점 만점을 받기 위해 턱걸이와 오래 달리기 같은 종목을 연습하는데 다른 친구들은 제일 마지막 종목인 오래 달리기를 하기도 전에 20점 만점을 다 채워서 달리지 않고도 체력장을 마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점수가 모자라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기 종목까지 해야 20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한 반에 한두 명씩은 체력장 20점을 못 받는 허약 체질들이 있어서 눈총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나는 체력이 동급생 친구들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체력이 내가 기대한 것보다 약했다는 것이지 비실비실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몸의 단단함이나 병에 견디는 면역력에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친구들과 농구나 씨름 등을 해도 대등한 편이었고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나 체력 훈련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나는 환절기마다 감기를 빼먹지 않았고 뼈나 근육의 질에서  무르고 약했다. 가령 나는 고등학교 때 농구를 하다가 처음으로 어깨가 탈구되는 경험을 했는데 이는 이후로도 몇 차례 더 빠지더니 습관성 탈구로 나를 지금까지도 괴롭히고 있는 만성 질환이 되었다. 턱뼈 역시도 한번 빠지고 난 후 여러 번 빠져서 치과에서 TM Joint라는 병명으로 판정받아 지금도 입을 크게 벌리게 되면 턱이 빠져버리는 위태로운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신체 조건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건장하고 또래 평균 신장보다 큰 편이어서 군대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자주 맡겨졌지만 그런 정도를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깡으로, 그리고 자존심을 지키느라 안감힘을 써서 버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나에게도 내세울 만한 장점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지구력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잘 참았고 그것은 정신적인 endurance 면 까지도 포함했다. 이런 지구력으로 나는 등산과 트레킹을 시작하여 남들보다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특히 모두 다 힘들고 싫어하는 오르막 uphill에 특히 강했다.  산을 좋아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는데 젊고 팔팔한 시절이 한참 지난 40대가 되어서 맞이한 여름 지리산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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