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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빠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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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Mar 28. 2024

달리기 전에 산 오르기

40대 초반 무렵, 나는 비대했다. 

잘 먹고, 잘 마시고, 별 걱정 없이 살았다. 신장 177센티미터 남자가 80킬로그램에 육박했지만 그 정도는 '통통'하다는 표현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풍채'가 좋으니 정장을 입었을 때도 보기가 좋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드라마틱하게 체중이 줄었다. 

80킬로그램에서 10킬로가 빠져서 70킬로그램이 된 것이다. 36인치 바지를 입다가 32인치로 사이즈가 줄어든 것은 물론 속옷까지도 다 헐렁해져서 옷을 모조리 바꿔야 했다. 중년 남자가 갑자기 살이 확 빠진다는 것은 좋은 일 일 확률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많았다. 나와 아내는 겁이 덜컥 나서 대학 병원에 갔다. 내 머릿속에도 무슨 암이나 중병이 걸린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동네 병원을 거치지 않고 한 번에 최상급 의료기관으로 왔으므로 나를 안내하는 간호사는 병원에 온 이유를 불었다. 


"갑자기 살이 빠져서요."

"얼마나 빠지셨는데요?"

"10킬로요."

"아무것도 안 하셨는데요?"

"네, 아무것도 안 했어요."

간호사는 날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정말 좋으시겠어요."

하면서 가정의학과로 데리고 갔다. 


내가 의뢰한 대로 의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검사를 해주었는데 처음엔 갑상선을 의심하더니 수치가 정상이라고 했다. 나머지 신체에서도 모두 정상 소견이 나왔다. 

다 털어놓았는데도 나오는 게 없었다. 전문가들이 정상이라는데 매달려서 비정상적인 요소를 찾아달라고 매달리기도 뭣해서 찝찝했지만 병원을 나왔다. 


나와 가족들, 특히 생화학과를 전공한 형을 포함한 우리끼리의 의견은 내가 오랫동안 혼자서 노총각 생활을 하면서 정크 푸드로 식사를 때우다가 장가를 간 후 식습관이 좋아졌고 제시간에 세끼 식사를 꼬박꼬박 했다는 것, 그리고 이때부터 나의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는 것을 살이 빠지고 건강해진 이유로 꼽았다.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불면증으로 인해서 수면 부족과 폭식, 만성 소화불량을 일상처럼 여기고 살았는데 생활이 안정적이 되고 잠도 푹 자게 되면서 몸의 불균형이 잡혀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내린 결론이든 그 어느 것도 명쾌하지 못했고 따라서 내 의혹도 해소되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내 몸을 돌보는 일에 내가 너무 무심했고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정기 검진이야 받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따끔하게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정상 수치가 한참 넘어간 간수치와 콜레스테롤 수치, 혈당에 대한 지적을 받았고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곧바로 중증 성인병 대상자로 포함된다는 말이 공연한 협박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것은 산이었다. 

산이 국토의 70%인 나라에서 그것은 참으로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처럼 보였다. 

여름방학 끝물 나는 충동적으로 지리산엘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배낭과 등산화, 버너와 코펠 등을 구입하고는 곧바로 구례구역에 내렸다. 

택시를 타고 성삼재에 내려 산행을 시작했는데 첫날은 연하천 대피소에서 잘 요량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이런 정보는 모두 네이버에 '지리산에 가려면'으로 검색한 결과로, 나는 나름 잘 준비했다고 생각하며 씩씩하게 홀로 노고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이때가 세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반대편에서도 사람들이 오고 있었고 산에서 등산객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종주 능선에 들어서서 이제 삼도봉이나 지났을까 싶은 초입에 이르자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지 시작했다. 

나도 일기예보는 확인했었고 그래서 우비도 준비를 해왔다. 배낭을 내리고 우비를 찾는데 새로 산 배낭에 새로 산 물건들을 이리저리 쑤셔 넣다 보니 우비를 찾기 어려웠다. 그 사이에 비는 장대비로 변하고 식은 몸에 찬빗물이 옷을 적시고 한기가 느껴졌다. 

결국 배낭을 다 뒤집은 다음에야 가장 손쉽게 꺼낼 수 있는 배낭 뚜껑 지퍼에서 우비를 찾아 입었지만 그땐 이미 우비가 별 소용을 할 수 없을 만큼 다 젖은 후였다. 

이제 사위는 완전히 어두워졌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헤드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번에는 무릎의 통증이 심해졌다. 처음엔 오른쪽 나중에는 두쪽 다 쑤시고 아파서 똑바로 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아픈 무릎을 질질 끌며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걸으면 아무리 신나고 좋은 상상을 해도 조바심이 나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이미 배가 고픈 시간도 지나버렸지만 초조한 마음에 식욕은 전혀 없었고 바짝 타들어가는 입이지만 물을 꺼내 마실 여유도 없었다. 잠시 주저앉아 쉬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곰출현 주의!' 현수막이 위협하듯 나를 능선으로 몰아냈다. 


결국 명선봉에서 길을 잃었다. 울고 싶었고, 그리고 울었다. 

중년 남자가 캄캄한 산속에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마음껏 소리 내어 무섭다고 울었다. 

유치원 다니던 내 아들 아이가 울 때보다도 더 크게 더 서럽게 더 불쌍하게 울었다. 크리스천이므로 기도도 하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길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내가 잃었다고 생각한 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비 뿌린 후 구름에 파묻힌 산이 길을 흐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는 아픈 무릎을 끌고 가다가 너무 고통스럽고 무서워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지리산 구조대원들은 친절하고 믿음직스러운 음성으로 나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선생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편하게 앉아서 저희를 기다려주십시오. 저희가 지금 출동하겠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응대였다.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걸리실까요?"

"네, 두 시간 안에 도착하도록 해보겠지만 날씨 때문에 좀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헉... 두 시간!

"저... 혹시 헬리콥터 구조 같은 건 어려울까요?"

"선생님 계신 곳은 헬기 접근이 어려운 곳이고 현재 기상상태로는 어디라도 헬기가 출동이 어렵습니다."


망연자실, 그 자리에서 구조대를 기다렸다. 너무 아픈 다리로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앉아서 쉬니까 좀 나아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허기와 갈증이 몰려와 잊고 있었던 먹거리를 꺼냈다. 사과 한 알을 맛있게 배어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

헉,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그리고 소리는 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생각과 판단을 멈추고 즉시 일어나 배낭을 둘러메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40대 가장 지리산중에서 곰에게 습격'

'간식 먹던 등산객 곰에게 습격당해'


이런 뉴스 기사 헤드라인이 떠오르면서 나는 무릎이 아픈 것도 잊고 연하천 대피소로 뛰다시피 걸었다. 다행히 대피소는 멀지 않았고 나는 다 늦은 시간에 간신히 도착하여 늦은 밥을 준비하며 다시 구조대에 전화를 해서 대피소까지 이동했으니 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알렸다. 


나의 첫 산행은 이렇게 어설프고 위험했으나 이후로 나는 산에 오르는 일에 재미를 느꼈고 오래지 않아서 각종 등산 동호회에 가입하고 다양한 국내 산악회에도 가입해서 전국의 산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산 좀 타는 사람'이 되었고 내 건강 상태는 그냥 살만 빠진 상태에서 단련된 하체근육과 심폐지구력이 향상된 건강한 몸으로 바뀌어 있었다. 


산행은 나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걷는 기쁨과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는 취미를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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