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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Apr 03. 2024

트레킹에서 수영, 그리고 달리기

임용된 지 10년 만에 연구년을 받았다. 

안식년이라고도 알려진 이 제도는 구약 성경에 기원을 둔 제도로 7년마다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고 땅도 한 해는 작물을 재배하지 않으면서 칠 년에 한 번 생산을 쉬게 해주는  제도인데 연구하고 공부하는 교수에게도 한 해동안 수업을 쉬면서 자유롭게 개인 연구와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라는 의미였다.  나는 그동안 출판 계약을 맺었지만 미뤄두고 있던 번역서 작업을 마무리한 뒤 출간을 하고 , 하반기에는 승진에 필요한 요건중 하나였던 논문을 집필하기로 연구 계획을 세웠고 남는 시간에는 그동안 손꼽아 기다려왔던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때가 2013년인데 당시만 해도 산티아고로 가는 카미노에는 지금처럼 한국인이 많지는 않았었고 대중에게도 덜 알려져 있었었다.  처음에는 800km를 걷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졌으나 일단 길 위에 서자 걷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아름다운 스페인 북부 풍광을 줄기면서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기면서 꽤나 인상적인 추억을 남기고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학교에 복귀하고 나서도 나에게 트레킹은 큰 여운을 남겨서 나는 이후에도 '무슨무슨 길'이라고 하면 불원천리 달려갔다. 그 결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예닐곱 차례 더 다녀왔고 히말라야의 서쪽과 동쪽 길인 안나푸르나 서킷과 쿰부 히말 트레킹을 하고 왔다. 국내에서도 알려진 길들을 걸었는데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은 여러 차례 걸었다. 길을 걸으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연령대가 대부분 나보다 연상인 그룹이어서 내게 조만간 닥칠 은퇴와 그 후의 생활들을 미리 엿볼 수 있게 되어서 의미도 있었다. 

쿰부 히말 트레킹 시작점인 루클라 공항과 에베레스트 가는 길

스페인이든 한국의 둘레길이든 트레킹은 늘 나를 설레게 했고 길 위에 서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면서 새삼스레 자여풍광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 늘 새벽에 깨어 일행 중 가장 먼저 길에 나서는 편이었는데 여명도 없는 어두운 거리를 걷다가 서서히 밝아오는 사위를 느끼며 새 날을 여는 기분은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함이었고 매일 경험해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시간이었다. 


트레킹의 상당 부분은 혼자서 했지만 일행이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아내와 아이들과 같이 걸었던 호도협, 차마고도 트레킹은 가족 트레킹이었다는 점에서 유쾌하고 즐거운 소풍 같은 느낌이었고 아내와 둘이 걸었던 지리산 둘레길 일부 구간과 삼척 근방 해파랑 길은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은 친구들과 걸었는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여서 숲 속에서 마음껏 마스크 없이 맑은 공기를 들이쉬며 도시에 갇힌 사람들을 동정했다. 


두 차례 다녀온 히말라야 트레킹은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해 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네팔 특유의 온순하고 착한 사람들을 만나서 순박하고 가난한 그들의 세상 속에서 잘 살지만 불행한 우리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고 거의 모든 네팔인들이 갈등 없이 드러내는 욕망도 경험했는데 그들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각박한 세계에 편입하고 싶은 70년대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5천 미터 이상의 고산지역에서 나는 곧 고개가 꺾여질 무거운 꽃망울을 머리에 이고 있는 말라비틀어진 백합 줄기 같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불현듯 찾아오는 소스라치는 산소결핍증세는 고산 특유의 추위와 결합하여 나를 계속 긴장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가까스로 안나푸르나 패스 정상인 5,500m 토롱라를 넘으면서 다시는 이 지역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나는 더 어려운 지역인 쿰부히말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향해 3,000m 급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가는 길에 계속 변하며 멋진 자태를 보여주었던 아마다블람 봉과 주변 산군과 빙하의 경치는 고산병의 공포와 간신히 맞바꿀 수 있을 정도의 값비싼 풍광이었다. 

두 번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내 짐을 대신 짊어지어주고 길을 알려준 포터들도 참으로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특히 쿰부 히말의 포터 고르카는 강철체력과 산에서 특히 강한 셰르파 족속의 후예임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는데 고산 지역에서 찬물로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를 감고 심지어 쿰부히말 마라톤이라는 경이적인 마라톤 경주를 별일 아니라는 듯이 완주하는 그를 보고는 나와는 전혀 다른 생태 부류의 인간종일 것이라는 확신을 강하게 갖게 했다.   

스페인 아라곤 길

그렇게 국내외를 종횡무진했던 나에게 어느 날 수영이 다가왔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집 근처의 스포츠센터에서 우연처럼 강습을 받아보기로 했는데 늦게 배워보는 수영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발차기도 어려웠지만 차츰 물에서 뜨는 법도 알게 되고 발차기와 팔젖기를 익히고 배우는 무렵 보조기구 없이도 쭉쭉 앞으로 나가는 재미에 강습이 없는 날에도 나가서 열심히 개인 훈련을 했다.  

그러다가 툭! 하고 어깨가 빠져버렸다. 


아, 어깨! 

나에게는 30년도 더 된 고질병인 습관성 탈구 증상이 어깨에 있었는데 꽤 오랫동안 빠지질 않아서 잊고 있다가 어깨를 세게 사용하자 여지없이 빠져버린 것이다. 물속에서 수영중에 빠져버린 어깨 때문에 통증도 컸지만 당황해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휴일이라 연습 중인 사람들이 가득 찬 소란한 수영장이었지만 내가 수영을 멈추고 통증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그 자리에 굳어서 서버리자 모두들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고 구조요원이 물속에 첨벙 뛰어들었다.  


나는 다가오지 말라고 그를 제제했다. 괜히 다가와서 어설프게 나를 건드리면 통증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앰뷸런스를 부른다는 것도 제지했다. 어깨 빠진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우선 어깨를 다시 끼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스스로 할 때 가장 덜 아프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물속에서 다친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이리저리 어깨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대개의 경우 저절로 자리를 찾아 들어맞기 마련이었다. 물속에서 내가 세차게 어깨를 돌려서인지 여간 들어 맞추기가 어려웠다. 나에겐 꽤 한참이었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아마도 2-3분 정도였을 시간만에 어깨는 들어맞았고 나는 여전히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물밖으로 나왔다. 

어깨를 많이 써야 하는 수영은 나와 맞지 않는 운동이었다.  


우울했다. 

배낭을 메거나 집에서 멀리 떠나지 않아도 간단하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나 찾아서 맛을 들이고 있던 참에 갑자기 찬물을 확 끼얹은 것이다. 집에서 준비하고 나가서 충분히 수영을 즐기고 다시 돌아와도 두 시간이 안 걸리는 운동인 수영은 얼마나 시간과 비용의 가성비가 좋은 운동인지 생각할수록 아쉽고 그런 운동을 포기해야만 하는 내 몸상태가 야속했다. 


그런 우울증세가 지속되던 즈음에 미국 사는 형이 마라톤을 권했다. 처음부터 마라톤은 아니었고 달려보라는 권유였다. 권유에 못 이겨서 어떤 걸까 하고 한번 뛰어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수영만큼이나 준비와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 운동이었고 뛰고 난 뒤의 상쾌함도 꽤 좋았다. 

러닝화를 샀고 내가 달리게 된걸 안 형이 미국에서 러닝화를 몇 켤레 보내주기도 했다. 

이제 물을 버리고 땅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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