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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Sep 02. 2024

개강을 하루 앞둔 교수는 무얼 하는가?

오늘이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지만 월요일이 연구일인 나는 오늘 수업이 없어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 

방학 때 만든 루틴인 새벽 달리기를 위해서 평소와 같이 새벽 4:30에 기상해서 공원에 나가 달리기 클럽 회원들과 팀을 나누어서 트랙을 돌았다. 

월요일은 빌드업 build-up 달리기를 하는 날이다. 

빌드업 달리기는 낮은 속도에서 조금씩 속도를 높여 나중에는 빠른 속도로 마감하는 달리기 훈련이다.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고 그렇게 잠을 못 잔 것도 아닌데 중반부터 힘이 들기 시작해서 예정된 10km를 마치지 못하고 9km를 넘기자 멈춰서 버렸다. 

두 바퀴 더 돌면 되는 걸 포기한 것이다. 이런 일은 몹시 드문 일이다. 


왜일까?

두 가지 스트레스가 나를 달리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첫 번째는 내일부터 수업을 시작하는 2학기 학사일정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다. 개강 무렵 예민해지거나 잠을 잘 못 이루는 건 이제 예전 같진 않지만 개강은 여전히 나에게 스트레스이다. 

또 하나는 오늘 일기예보와 다르게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이다. 

여름 내내 새벽에 달리기를 한 후 해결해야 하는 가장 큰 일은 땀에 푹 젖어서 걸을 때마다 온몸에서 뚝뚝 떨어지고 흐르는 몸뚱이를 어떻게 차에 집어넣고 이동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달리기를 하는 모든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인데 그래서 저마다 차 안에 커다란 비치타월을 챙기거나 방석, 수건 등으로 막아본다. 나 역시 수건과 여분의 티셔츠를 포개 입고 타는 방식을 이용하다가(상체를 가로지르는 안전벨트에 땀냄새가 베어 든다) 회원 중 누군가가 알려준 일회용 비닐 커버를 구해서 시트에 씌우고 그 위에 앉는 방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자전거이다.  

달궈진 몸을 차에 구겨 넣기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가로지르면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빠르게 식혀주고 뚝뚝 흐르는 땀방울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오늘은 오후에 비소식이 있어서 안심하고 자전거를 타고 온 것인데 예보가 빗나가서 새벽에 비를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기자전거인 내 자전거는 비에 취약하다. 얼마 전에 배터리 불량으로 전체 배터리를 교체하느라 무려 40만 원을 지출한 나로서는 또 배터리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늘막 아래로 자전거를 옮겨서 비를 피하게 하고 달렸으나 달리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행히 달리기를 끝마치고 나니 비가 멎어서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걱정 하나를 덜었다. 


비 맞는 자전거는 사실 개강 스트레스를 내세우고 싶지 않았던 내 속마음이었는지 모른다. 

비가 멎고 달리기 후 시원하게 샤워도 마친 나는 마렵지도 않은 똥을 싸러 화장실을 들락거리다가 하루쯤 더 버텨도 될 수염을 굳이 짐에서 정성껏  거품 면도를 하고는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왔다. 

거리에는 등교하는 아이들로 가득했고 버스 정류장에도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이제 내일부터 나도 저 무리 속에 섞여 들어가는구나.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이번학기 과목에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의 명단을 하나씩 살펴봤다. 

얼굴이 바로 떠오르는 학생들도 있고 1학년 수업에서는 이번 학기 처음 만나는 24학번 새내기들의 낯선 이름들도 보인다. 내 전공 학생들이 아닌 타 전공 학생들의 이름들도 군데군데 섞여있어서 다전공, 부전공, 복수전공 학생들과 학번이 높은 학생들은 군휴학 후 복학인지 학번과 휴학기간을 세어보기도 한다. 

매 학기 수업을 준비하면서, 또 수업 중에 기록해 둔 강의노트를 꺼내어서 이번 학기 수업에 참고할 수 있도록 확인해 둔다. 4학년 워크숍 수업의 경우 매 학기마다 시나리오가 바뀌기 때문에 나 역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시나리오 분석과 인물, 사건 분석, 서사 구조 분석을 미리 해두어야 한다. 


학사 일정이 추석 명절 연휴와 10월의 국군의 날 공휴일 지정 여부로 꼬인다. 

수요일과 목요일에 같은 수업의 분반이 있는 나는 수요일이 추석 연휴로 끝났다가 목요일이 개천절로 쉬어서 몇 주 차이를 두고 차시가 균형을 맞추었는데 다시 한글날 수요일이 공휴일이 되면서 수요일 분반 학생들이 중간고사를 치르기 전에 한 차시가 모자라게 된다. 

화요일인 국군의 날이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건지 개강 전에는 알려줘야지 이렇게 미적거리며 떡 주듯이 줄까 말까 여론 눈치를 보고 있는 건 정부가 이 나라 전체의 학사 일정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처사이다. 


2학기에는 무엇보다도 수시 입시와 면접고사가 있어서 학기의 맥을 끊는다. 우리 학교 입시도 하지만 타학교에도 심사가 잡혀있는 경우가 있어서 몸도 마음도 바쁘고 정신없다. 나라 전체에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탓에 해마다 입시에 대학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영호남 지역 대학들은 더 속이 타들어갈 것이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캘린더와 강의계획서를 번갈아 보면서 휴보강 계획을 세우다 보니 다시 몸에서 열이 나고 끈끈한 느낌이 든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오전에 찜찜하게 마무리했던 10km를 다시 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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