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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Nov 09. 2024

2024 마라톤 결산

올 한 해 나는 어떻게 달렸는가

2022년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서서히 거리와 시간을 늘려가다가 처음 10km 대회에 참가하고 이후로는 혼자 연습하기가 버거워서 지역의 마라톤 클럽에 가입하여 젊은 달리기 선배들과 함께 달렸다. 

3, 40대가 주축이고 그들도 대부분 초보였으나 체력들이 좋아서 인지 금방 서브 3 등 좋은 기량을 보이면서 기록 단축의 희열을 맛보는 것이 부러웠다. 나는 50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한 데다 체력이 젊은이들 수준은 아니어서 느리고 완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2023년이 되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산을 버렸다는 것이다. 

2022년 2월에 금주를 선언하고 술과 관련된 일련의 습관들을 정리했다. 의례히 술이 함께 하거나 술을 중심으로 했던 활동들, 술을 마시려고 만났던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 금주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산주 마시려고 올랐던 산, 그 산을 함께 올랐던 산 친구들, 산 찾아 따라다녔던 산악회들로 향하던 발길을 끊었다. 

술이 아니어도 만나면 반가운 친구들이 있었지만, 다시 잘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동안 함께 했던 자리를 생각해 보았는데 단 한 번도 술과 이어지지 않은 자리는 없었고 어떤 경우는 술을 마시려고 그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는 때도 있었다. 안타깝지만 그런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도 더 이상 참석하지 않았다. 


그렇게 야멸차게 술을 멀리하고 내가 택한 것은 달리기에 집중하는 것이었는데 효과가 좋았다. 

2023년 나는 10km 혹은 한 시간을 달리는 정도에는 익숙한 상태가 되었고 가끔씩은 그 이상을 달리고도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기의 희열을 만끽 할 수 있었다. 이제 달리기는 내 루틴이 되었고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달리지 않거나, 달리지 않은 날이 이틀을 넘어가면 몸이 근질거리고 달리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달아오르는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달리기 중독자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2023년 여름에는 40여 일간 스페인에서 1,100km의 순례길을 걸었는데 하루 평균 30km쯤을 걷는 일정이었다. 특히 '카미노 아라고네스' 구간과 '카미노 산살바도르' 구간은 산악 구간으로 피레네 산맥과 칸타브리아 산맥을 넘는 코스였는데 달리기는 아니었지만 이때 강도 높은 유산소 훈련을 한 달 이상 한 덕택에 돌아와서도 달리기 훈련에 무난하게 복귀할 수 있었다.  


2024년이 밝아오자 나는 기대와는 다르게 열심히 달릴 수가 없었는데 23년 여름부터 연일 이어지는 트레킹과 달리기 훈련으로 체중이 많이 줄었고 식사량도 줄어들면서 심각한 변비와 치질 증상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경험하기 싫고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그런 처절한 고통과 증상이었다. 항문 수술 직전까지 갔지만 차전자피 복용과 충분한 물 섭취, 그리고 의식적으로 식사량을 늘리고 체중을 2, 3kg 찌우자 변비 증상은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이후로도 나는 내가 쾌적하다고 느끼는 64kg 상태에서 일부러 2, 3kg 더 찌우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그 상태면 뱃살이 약간 나오고 손으로 복부를 꼬집으면 피하지방이 손가락에 잡히는데 이 정도 상태가 되어야 변비가 발생하지 않고 달릴 때 힘도 부족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고작 2, 3kg 차이지만 앉았다 일어설 때 핑 도는 현기증도 없어지고 얼굴살이 너무 빠져서 환자 같다는 소리도 덜 듣게 된다.   


2024.1.7 18회 여수 해양마라톤 대회 하프 2:05:48

2024.3.17  동아마라톤 풀 4:39:19

2024.4.28 서울 하프 마라톤 1:45:08

2024.5.4 화성 효 마라톤 대회 10km 51:04:00

2024.5.12 인천 국제하프 마라톤 하프 1:46:31

2024. 5.18 TNF100 노스페이스 트레일런 10K 56:26:00

2024.5.25 롱기스트런 10K  48:07:00

2024.9.8 철원 DMZ 평화마라톤 하프 1:58:00

2024.9.28 청원 생명쌀 대청호 마라톤 4:46:31 

2024.10.13  서울레이스 1:54:53

2024.11.3 JTBC 서울 마라톤 DNF

2024 한해 열심히 달렸다고 자평한다. 사진은 이제까지 달렸던 대회에서 얻은 15개의 메달들. 11개가 올해에 얻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2024년 무려 11개의 대회에 출전했고 특히 3월에는 동아 마라톤 첫 풀코스를 완주하고 9월에는 두 번째 풀코스로 청원 대청호 마라톤도 완주하는 데에 성공한다. 지난주에 있었던 세 번째 풀코스 마라톤인 JTBC 서울 마라톤 대회에서는 40km 지점에서 DNF로 중단하게 되어서 아쉽긴 하지만 이로써 한 해에 세 번의 풀코스를 '거의' 완주했다. 

실패한 JTBC 마라톤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대회 운영을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과 나에게 풀코스 마라톤은 서브 4나 기록 단축이 아니라 '즐겁고 안전하게 완주한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욕심이 결승점을 코 앞에 둔 나를 자빠뜨렸고 양쪽 종아리와 허벅지에 꿈틀거리며 뭉치는 근육이 유발하는 쥐를 보면서 나의 달리기 철학을 돌아보게 했다. 


실패였지만 그간의 내 달리기 마음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대회였다. 


반면에 4월 말부터 5월 말의 한 달 기간은 나의 달리기 인생에 황금기였다. 

치질과 변비에서 해방된 나는 매주 연달아 대회에 참가하여 한 달만에 무려 다섯 개의 메달을 따오는 기염을 토했다. 대회 참가만 많이 한 것이 아니라 기록도 좋아서 10km 최고 기록인 48분 기록도 챙겼고 하프 최고 기록 1시간 45분도 이때 만들었다. 많이 달리면 기록도 좋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자 내 달리기 기록은 대회 후반부에 눈에 띄게 속도가 줄어드는 현상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달리기 총량 마일리지 부족과 평소 10km 단거리 훈련만 되풀이해서 장거리 훈련에 몸이 익숙해져 있지 않은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밖에 인터벌이나 TT 훈련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기량이 쇠퇴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올해 대회는 마무리했고 내년에는 2월 대구를 시작으로 3월 동아마라톤으로 이어진다. 올 한 해 훈련과 실패 경험을 토대로 내년에는 내실 있는 훈련과 성장하는 기록으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욕심부리지 말고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지혜롭게 생각하며 달려야 안 다치고 즐겁게 달릴 수 있다. 


술 마시는 것보다 백배도 더 재미있는 달리기는 2025년에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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